"노숙인·난민·전과자 일거리 주자"…'파격 주장' 나온 英 속사정
"노숙인, 난민, 초범(경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도 적극적으로 노동 시장에 끌어들이자"
영국 런던 자선단체 리제너레이트(ReGenerate)의 주장이다. 9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 3일부터 영국 베이커리 체인 그렉스, 영국의 유명 신발 수선·시계 수리 업체 팀슨 등이 참여한 '굿 잡 프로젝트(Good Job Project)'를 진행하고 있다. 노숙자나 신경 발달 장애가 있는 사람,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 난민 등 소외계층은 물론 심지어 (경)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까지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편입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활동이다.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지난 2021년 미국에서는 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을 채용한 경험이 있는 회사들이 서로 채용 모범 사례를 공유하는 연합체인 '또 한번의 기회 비즈니스 연합(Second Chance Business Coalition)'을 결성했다. 결성 당시 29개였던 참여 기업 수는 현재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 체이스, 아메리칸 항공, 미국 통신·미디어그룹 AT&T 등 40개 이상으로 늘었다. 미국 최대 철도기업 유니언퍼시픽은 지난해 봄부터 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고용, 열차 유지 보수 등의 업무를 맡기고 있다.
인력난 해결하는 역발상
경범죄 전력의 전과자까지 노동 시장에 끌어들이는 움직임은 다양성·포용성(D&I) 등 기업 문화 조성에 관심이 많아진 시대상에 발맞춘 듯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요즘 영국 등에서 호응을 얻는 데는 속사정이 있다. 인플레이션의 압박 속에 인력난을 해결해야 하는 정부·기업 입장에선 '아직 손대지 않은(untapped)' 이들의 노동력을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EU 근로자가 대거 영국을 떠났다. 와중에 터진 팬데믹은 고용 부문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대규모 봉쇄(록다운)가 이어지며 조기 퇴직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어났고, 장기 병가 후에 아예 직장을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기업들은 '사람 부족'에 시달렸고, 팬데믹 국면이 점차 벗어났어도 일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서비스 부문에서 구인난이 심하다. 영국 의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영국 경제의 총 생산량 가운데 금융·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79%에 달한다. 고용의 82%를 이 분야에서 책임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분야 노동력 공백이 제일 컸다. 영국 통계청(ONS) 집계를 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110만 5000개에 달하는 일자리 공백이 발생했다. 10명 이상의 직원을 둔 영국 기업의 4분의 1 이상이 인력 부족을 경험하고 있다는 ONS의 올해 1분기 설문조사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리제너레이트는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이해 관계자, 기업, 정부, 투자자, 자선단체 등이 협업해 노숙인, 난민 등 소외층에게 일할 기회를 마련해주면 노동력 부족이라는 국가적 문제 역시 해결해 진정한 포용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 잡는 핵심은 노동 시장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이 몸살을 앓고 있는 인플레이션도 배경이다. 영국에서 물가를 올리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노동력 부족과 이에 따른 임금 상승이다. 앤드류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서비스 산업 전반에 걸쳐 임금이 계속 치솟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신경 쓸 수 밖에 없는 새 압력이 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영국의 평균 근로자 임금의 연간 증가율이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근로자들은 살인적인 물가에 임금 인상 압력을 높이고 있다. 임금을 높여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득 손실을 만회하려 한다. 기업 입장에선 필요한 직원을 채용하고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한다.
자칫하면 임금이 생산성보다 빠르게 상승해 인플레이션에 압력을 가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마지막 핵심은 노동 시장"이라며 "근로자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더 나은 균형을 이루지 않고는 지속적으로 2%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짚었다.
현재 영국 기준금리는 5%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금리를 7%까지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JP모건은 오는 11월까지 기준금리가 5.75%로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일부 시나리오에서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6%으로 인상, 기준금리가 7%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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