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시 "방류 아닌 다른 방법? 세계를 '실험실 쥐'로 만들건가"
라파엘 그로시(62)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상 방류하지 않고 다른 방식을 동원했어야 했는지에 대해 “지금까지 사용된 적 없는 방법을 사용해 전 세계인을 '실험실 쥐'로 만들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일부 단체들이 “해상 방류가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한 입장이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지난 8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 국민들이 후쿠시마 상황에 대해 가진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거듭 강조했다.
Q : 일본이 해상 방류가 아닌 육상 저장 등 다른 방식을 썼어야 했다는 주장도 있다. 해상 방류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나.
A : “실제로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 없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다른 옵션들은 아직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방법들이다. 이번 후쿠시마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인을 ‘기니 피그’(실험실 쥐와 같은 실험 대상을 비유하는 표현)로 만들 수는 없었다는 의미다.”
Q : 일본 정부도 증기로 대기에 방출하는 방식을 고민했다고 한다.
A :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방안을 제외하면 현실적인 선택지는 증기 방류와 해상 방류 두 가지의 옵션이 있었다. 그런데 증기로 방출할 경우에 대기 중에 퍼진 위험 물질이 비의 형태로 퍼져 오히려 환경 오염을 유발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해상 방류는 상대적으로 환경 오염 가능성이 낮고, 과거에도 더 많이 사용돼 왔기 때문에 통제가 용이한(controllable) 방법이었다. 동시에 일본이 이미 해상 방류 결정을 내린 뒤 그 계획을 IAEA에 검토해 달라고 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일본이 IAEA에 '어떤 해결책이 있느냐'고 질문한 게 아니다. 일본은 이미 계획을 세워뒀고 IAEA에는 '이 계획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Q : IAEA의 보고서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A : “IAEA는 방류 계획을 평가해 달라는 일본으로부터 ‘학교 숙제’를 받아 든 학생과 같았다. 일본은 이미 해상 방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숙제를 받은 우리는 일본의 계획을 과학적 분석에 기반해 꼼꼼히 평가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 방류 이후 발생할 일에 대해서도 현장에 상주하면서 수십 년간 검증할 계획이다. 최후의 한 방울까지 ‘안전하게’ 방류될 때까지 IAEA가 함께 하겠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지난 4일 일본을 방문해 IAEA의 최종 보고서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에게 전달한 뒤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곧장 방한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관련해 IAEA가 한국 내 여론의 움직임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이와 관련 향후 방류 과정 전반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도 "한국의 참여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Q : IAEA는 후쿠시마 지역에 상설 현장 사무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한국 전문가가 상주하는 방안은 어떤가.
A : “IAEA는 국제기구이고 나를 포함한 우리 직원들은 국제공무원이다. 한국인이 오더라도 출신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 기구인 IAEA 멤버로서의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나 역시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IAEA 사무총장으로서 나의 국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있었지만, 그는 한국인이기에 앞서 세계인 모두의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Q : IAEA 활동에 한국인이 포함되면 한국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다.
A : "최근 최종 보고서를 낸 IAEA 태스크포스에는 김홍석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박사가 IAEA 멤버로 포함됐고, 시료 채취 및 분석 작업에도 한국의 실험실이 포함돼 있다. 한국의 동참은 지금까지 계속돼 왔고, 한국이 IAEA의 중요한 회원국이란 말로 대신 하겠다."
그로시 총장은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결정에 대해 “한국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계획대로 방류가 이뤄진다면 앞으로 수산물 오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입 금지, 한국 정부가 결정할 일”
Q : IAEA의 최종 보고서가 한국 정부를 향해 수입 재개를 압박하는 근거가 될 거란 우려가 있다.
A : "수입 금지 조치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결정이자 책무다. IAEA의 권한 밖의 일이라고 말하겠다.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계획대로 방류가 이뤄진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어류 등 수산물이 오염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란 점이다. 그 누구라도 '일본의 방류 때문에 수산물이 오염됐다'고 주장하더라도 이는 과학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Q : IAEA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수산업계의 우려는 여전하다.
A : "일본의 수산업 종사자들을 만나봤다. 그들도 한국 국민처럼 우려가 크다. 이는 12년 전 사고(2011년 동일본 대지진)로 인해 이미 생계가 무너졌던 경험을 해봤고, 이번 방류 결정으로 인해 또다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나의 책무는 그런 분들을 찾아 과학적 근거와 안정성 등을 설명하는 일이다. 그런 분들의 정당한 우려는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 다만 정치적 의도를 가진 주장과 비난이라면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될 것이다."
그로시 총장은 IAEA 최종 보고서에 대해 여러 차례 "방류로 인한 오염은 유의미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보고서 첫 페이지에 "보고서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결과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문제 삼으며 "IAEA의 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안 그래도 해명하고 싶었다"며 입장을 밝혔다.
Q : 야당에서는 "IAEA가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가 면책 조항이라고 비판한다.
A : "오히려 그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 솔직히 처음에 그런 지적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재밌다(amused)'는 생각까지 했다. 해당 문구는 IAEA가 발간하는 여타 출판물에도 형식적으로 넣는 면책 조항(disclaimer)일 뿐이다. 당연히 다핵종제거설비(ALPS) 시스템의 안정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해당 문구를 활용해 정치적 의미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우스운 일이다."
지난 7일 입국한 그로시 사무총장은 입국을 반대하는 시위대로 인해 공항 입국장에서 2시간 넘게 발이 묶였다. 이날 인터뷰가 진행된 호텔의 주변에도 일부 단체들이 현장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그로시 사무총장의 방한 일정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솔직히 좋지는 않았다"면서도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선 당연히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고, 나는 (논쟁에) 숨거나 이견을 무시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야당도 IAEA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것”
단 야당의 방류 반대 주장에 대해선 "야당 역시 집권을 원하고 있고, 집권을 한다면 야당 또한 IAEA를 스스로 상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집권을 바라는)야당 역시 IAEA가 중요한 기구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북핵 위협과 관련해 “북한이 오판으로 인해 실제로 핵을 사용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Q : 북한의 핵 개발과 관련된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A : “북한은 핵 실험을 위한 모든 준비가 이미 다 돼 있다. IAEA는 이미 2009년에 북한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지만, 위성 사진과 정보원 등을 통해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파악하고 있다. 최근 포착된 동향은 북한의 핵 무기 프로그램이 엄청난(massive) 수준으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특히 과거 영변 핵단지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하던 것에 더해 우라늄 농축 기술까지 발전시키고 있다. 더 많은 핵무기를 생산하게 된다는 의미다.”
Q : 북한이 실제 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A : “오판으로 인해 핵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전 세계에 대한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
Q : 현실적으로 북한을 막을 방법이 있는가.
A :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특히 더 우려되는 것은 현재 북한과 어떠한 형태의 대화나 접촉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IAEA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의 안정성과 관련한 대화를 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등의 모종의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북한의 완전한 고립은 ‘오판 가능성’의 측면에서도 굉장히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가까운 미래에 북핵 시설 등에 대한 사찰 가능성이 있는지”를 묻자 “당장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사찰이 가능해진다면 IAEA는 역할을 할 준비가 언제나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가 자칫 실제 전술핵을 사용할 수도 있을 거란 우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Q : 러시아가 핵을 쓰면 기존의 ‘핵 문법’이 깨지면서 북한에도 영향을 줄 거란 우려가 나온다.
A :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희망하고, 그렇게 믿고 싶다. 이와 함께 IAEA는 우선 러시아 침공 과정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어마어마한 핵사고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현재 전쟁의 최전선에 자포리자 원전이 노출돼 있다.”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은 유럽 최대의 원자력발전소로 현재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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