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열벌 갖고와라"…50만원짜리 수상한 '사회복지사 실습'
“현장실습 인증 사진용으로 옷 열 벌만 챙겨오세요.”
서울 소재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A씨는 지난 겨울방학에 한 노인복지시설로 실습을 나갔다. 사전에 안내받은대로 챙겨간 옷을 갈아입으며 시설 곳곳에서 인증용 사진을 찍었다. 원장은 미리 작성된 실습일지를 건네면서 “예시를 보고 요령껏 소감만 바꿔쓰라”고 했다. A씨가 시설에 도착한지 불과 10분만에 160시간짜리 실습 출석부가 완성됐다.
원장은 학교에서 불시 점검을 나올 경우를 대비해 “교수들이 방문 점검했을 때에는 어르신에게 선물을 가져다 드리러 잠시 나가 있었다고 하라”고 일러주기까지 했다. 이날 만들어진 가짜 실습 출석부의 대가는 50만원이었다. ‘가짜 현장실습’을 위해 이 시설을 찾는 학생은 한 달에 10명이 넘는다. 나중에 문제가 될까 걱정하는 학생에게 원장은 “편법인 건 알지 않느냐. 대신 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느는데 실습기관은 부족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가짜 실습 기관을 찾는 학생이 늘고 있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관련 과목을 이수한 후 160시간 이상 현장실습을 수료해야 한다. 최근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코로나19 기간 문을 닫은 실습 기관이 많아지면서 가짜 실습 사례가 많아졌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 따르면 올해 가짜 실습 제공으로 고발당한 업체가 11곳이 넘는다.
사회복지사가 될 생각은 없고 실습 시간만 맞추려는 학생 수요와도 맞물렸다. A씨는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처우가 좋지 않은 사회복지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이곳을 선택했다”며 “실습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나 공부를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 한 사립대의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25)씨는 “코로나19 이후 실습 기관들이 문을 닫아서 모집인원이 줄거나 아예 받지 않는다”며 “인서울 상위권 대학 학생들은 사회복지사를 진로로 삼지 않아 편하고 빠르게 실습을 마칠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실습 시간을 채우고 싶은 학생들과 사회복지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업체가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직장인에게도 가짜 실습이 퍼지고 있다. 가짜 실습을 제공하는 기관을 찾은 한 50대 직장인은 “직장을 다니면서 실습을 하기가 어려워 60만원을 내고 실습 인증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뿐 아니라 현장실습을 요구하는 보육교사 등의 직종에서도 돈을 내고 인증을 받는 가짜 실습 사례가 있다. 보육교사 자격을 얻기 위해선 평가 인증된 어린이집에서 240시간 이상 실습을 받아야 하는데, 실습비와 식대를 내고 실습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2018년 한 어린이집 원장은 학생들에게 실습하지 않고도 허위로 서류를 작성해줘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실습기관 7000여곳을 한 명이 감시”
실습기관을 관리할 인력이 부족한 문제도 있다. 사회복지시설 중 현장실습기관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선정하고,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서 관리를 맡는다. 협회에 따르면 현재 실습기관으로 선정된 업체는 7229개에 달하지만 이를 관리하는 인력은 한 명 뿐이다. 협회 관계자는 “올해 가짜 실습 제공 업체가 있다는 제보가 크게 증가했지만 인력 한계로 선제적 감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적발된 업체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일일이 고발장을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충남의 한 사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실습지도 교수는 약 30명의 실습생을 관리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실습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데 현실적 여건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은 가짜 실습이 많은 지역아동복지센터나 재가복지센터에서 실습을 자제하도록 학생들에게 권고했다.
가짜 실습을 막기 위해 사회복지사 2급 자격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는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이 교과목 이수만으로 부여돼 사회복지사 과잉 공급 우려가 커졌다”며 “사회복지사 2급 국가 시험제를 도입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정상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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