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어떤 드라마, ‘아무튼 가격 인하’

문수정,산업2부 2023. 7. 10.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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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 라면, 가격 인하.' 썩 어울리지 않는 이 세 조합이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13년 만의 가격 인하, 라면값에 무슨 일이?' 호기심을 자아내려고 노력해본다.

'아무튼 가격 인하'라는 이 드라마에는 요컨대 감동이 없다.

이를테면 신라면 가격 50원 인하는 산술적으로 전 국민에게 1인당 연간 388원의 혜택을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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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정 산업2부 차장


‘경제부총리, 라면, 가격 인하.’ 썩 어울리지 않는 이 세 조합이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이 드라마를 한 줄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정부 주도로 펼쳐진 라면·빵·과자·통조림 등등의 가공식품 가격 인하라는 희대의 드라마. 너무 구구절절하다. ‘13년 만의 라면값 인하’는 어떨까. 임팩트가 없다. ‘13년 만의 가격 인하, 라면값에 무슨 일이?’ 호기심을 자아내려고 노력해본다.

어떤 표현을 들이민다 한들 이 드라마는 ‘핵노잼’이 예상된다. 이유는 분명하다. 사이다 반전, 시원한 액션, 소소한 유머 등등 드라마의 재미를 자아내는 요소가 도통 발견되지 않는다. ‘아무튼 가격 인하’라는 이 드라마에는 요컨대 감동이 없다. 물론 세상에는 재미없는 드라마도 많다. 재미는 없어도 ‘의미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의미 부여도 어렵다.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에 드라마틱하게 도달한다면 사이다 반전을 선사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라면, 과자, 통조림 등 일부 가공식품 가격이 50~100원 내린다고 물가가 안정될 리 만무하다.

이 드라마가 핵노잼일뿐더러 무의미한 이유를 다섯 가지로 꼽아봤다. 첫째, 스토리에 개연성이 없다. 둘째, 미스 캐스팅이다. 셋째, 시대착오적이다. 넷째, 진부하다. 다섯째, 일말의 감동도 없다.

개연성 얘기부터 해보자.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라면값 인하’를 언급한 배경엔 국제 밀 선물가격 하락세가 있다. 기후위기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겹치며 지난해 국제 밀 선물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그러다 올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라면은 밀에서 뽑아내는 기적의 음식이 아니다. 누군가 밀을 사서 그걸로 뚝딱 라면을 만들어낸다면 연금술에 가까운 일이다. 밀은 밀가루로, 밀가루는 라면으로 ‘가공’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공정엔 전기료·가스료·인건비·세금 등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여건이 대부분 무시된 채 가격 인하가 강행된 것이다.

개연성은 이렇게 뭉개졌다. 주연을 맡은 기업도, 조연이자 시청자인 소비자도 모두 의아해한다. 소비자 혜택이 미미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를테면 신라면 가격 50원 인하는 산술적으로 전 국민에게 1인당 연간 388원의 혜택을 줄 뿐이다. 대신 농심은 연간 120억원의 손해를 입게 됐다. 계획에 없던 마이너스 수익에 기업은 ‘긴축 경영’으로 대응하게 돼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투자를 줄이는 식이다. 임직원과 주주가 영향권에 들어선다.

캐스팅도 엉망이다. 거시경제를 진두지휘하는 경제부총리가 라면값 ‘50~100원’ 인하에 앞장섰다는 것은 블랙코미디 장르가 아닌 이상 미스 캐스팅이 분명하다. 경제부총리는 물가 안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그 답을 라면값에서 찾으려 하면 안 된다. 추 부총리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테다.

정부 주도의 가격 압박도 놀라운 일이다. ‘13년 만의 라면값 인하’는 대단히 기록적이어서 그리 표현하는 게 아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맥락이다. 가격이 시장과 무관하게 관료의 입김에 휘청거렸다는 점에서 탄식이 동반된다. 시대착오적이고 진부하다. 무엇보다 감동이 결여돼 있다. 폭염 속 전기료 걱정에 에어컨 한 번 마음껏 못 트는 많은 이들이 고작 ‘50원 인하’에 감화받으리라 예상했던 것일까. 이럴 순 있겠다. “라면값 50원을 억지로 내려야 할 만큼 국가 경제 상황이 절박한 모양이다.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겠다. 지갑을 닫자.”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다 디플레이션까지 초대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문수정 산업2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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