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여의도 증권가를 흔드는가… 타오르는 리서치 불신론
‘밧데리아저씨’ 등 유튜버들 선봉
증권사 리포트 신뢰성에 의문 제기
관행·박리다매식 생산, 불신 키워
증시에서 ‘애널리스트 불신론’이 퍼지고 있다. 증권사 소속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분석 자료보다 유튜브 등에 출연하는 자칭 주식투자 전문가인 유튜버들에 대한 신뢰가 더 커지는 모습이다. 일부 개인 투자자들은 최근 자신의 기대와는 반대되는 의견을 낸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대한 민원을 금융당국에 제기하기도 했다. 애널리스트들이 신뢰를 얻으려면 근본적으로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독립성이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증권사들의 평가 대상인 동시에 주요 고객인 기업(상장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먼저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사 리포트를 믿으면 바보가 된다는 불신의 배경에는 매수 일색인 증권사 리포트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증권사가 기업과의 관계를 신경 쓰느라 다양한 투자의견을 내지 못하는 행태가 투자자들 불신을 키웠다는 것이다.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증권사 35곳의 매도 의견을 낸 리포트 비중은 전체 리포트의 0.1%에 불과했다. 중립 의견까지 포함해도 7%에 그쳤다. 매도 의견의 리포트를 낸 증권사는 유진투자증권(1.7%), 미래에셋증권(0.7%), DB금융투자(0.7%), 한화투자증권(0.6%) 4곳뿐이었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들은 매도 의견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다. 홍콩계 증권사 씨엘에스에이코리아 증권의 매도 리포트 비중은 26.1%에 달했다. 메릴린치인터내셔날엘엘씨증권 서울지점, 모건스탠리인터내션라증권 서울지점 등 외국계 증권사들의 매도의견 비중은 10~20%를 유지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해외 증권사의 매도 의견 비중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항변한다. 투자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증시에서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비교적 많은 반면, 국내 증시에선 주가 하락으로 수익을 얻으려는 투자자 비중이 낮다는 얘기다. 게다가 현재 국내 증시에선 코스피200, 코스닥150 외에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A씨는 “외국계 증권사 자체 포트폴리오 내에선 공매도로 수익을 보려는 비중이 국내 증권사 포트폴리오에 비해 크다”며 “외국계 증권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매도 주문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인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주가 하락으로 수익을 보려는 투자자들 수요가 낮다 보니 매도 리포트를 낼 만한 동력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보다는 지식재산권이 보호되지 않는 환경이 불신의 씨앗으로 지목된다. 과거 업계 내에서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소위 ‘박리다매’ 식으로 보고서를 쏟아내다 보니 보고서가 오남용되는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증권사 리포트는 무료로 유통되는 과정에서 서로 짜깁기되고, 투자 정보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유통된다. 이는 증권사 리포트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독립리서처 ‘리서치알음’에서는 “애널리스트 보고서가 10원만도 못하다”라는 취지로 보고서의 무분별한 유통관행을 지적한 바 있다. 또 다른 리서치센터장 B씨는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는 저작권 문제로 소송에 걸릴까 봐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반면 국내 리포트는 유튜브 등지에서 마음대로 긁어가는 게 태반”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리포트 가치 보호에 대한 증권사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교보증권은 이달 중으로 리서치센터에서 작성하는 보고서의 전문 공개를 제한하기로 했다. 투자 정보가 실제로 필요한 고객에게 양질의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한국투자증권, DB금융투자 등도 보고서 전문 공개를 제한했다.
애널리스트들이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자정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리포트로 커버하는 범위가 소위 기업 가치가 비교적 큰 코스피, 코스닥 일부 종목에 편향돼 있고, 이들 종목에서마저 매도 의견을 찾아보기 어려운 관행이 굳어져 있다.
특히 일부 애널리스트는 최근 자신이 매수 의견으로 리포트를 낸 종목 주식을 미리 사들여 수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기는 사례도 적발된 바 있다. 불공정 거래 행위 등으로 애널리스트들 신뢰가 갈수록 떨어지다 보니 일명 ‘밧데리 아저씨’라 불리는 박순혁 전 금양 홍보이사 등은 공개적으로 “여의도 리포트를 믿지 말라”는 취지의 의견을 수차례 밝혔다.
금융당국도 최근 리서치문화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증권사 리서치부서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애널리스트에 대한 성과 평가와 예산 배분, 공시방식 개선 뿐 아니라 독립리서치 제도 도입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리서치센터장 C씨는 “정부가 매도 의견을 낼 수 있게 판을 깔아주면 우리로서도 나쁠 게 없다”면서 “기업들이 애널리스트들을 압박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대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제도 문제보다는 개인투자자의 니즈를 따라가지 못한 게 불신의 주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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