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줄줄이 ‘보석 석방’, 제도 개선해야
때문… 인신 구속 신중해야
하지만 기형적 운용도 곤란
“돈만 내면 다 석방되는 거야? 법이 뭐 이래.”
얼마 전 아내가 한 형사 사건 피고인이 보석으로 풀려나게 됐다는 뉴스를 보고 한 말이다. 수사 단계에서 구속돼 1심 재판을 받던 사람이 보석으로 석방됐다는 뉴스는 최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관련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경찰 지휘부 등 6명이 모두 재판부 보석 결정으로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전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은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지만 역시 1심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났다.
보석은 법원이 보증금 납부, 주거지 제한, 증거를 인멸하지 않겠다는 서약서 제출 등의 조건을 붙여 피고인을 석방하는 것이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의 피고인이 보석으로 풀려나면 기사에는 “죄가 없으니 나오는 것” “판사들이 봐주려고 작정했다” “전관예우 아니냐” 등의 댓글이 달린다. 수사 단계에서의 구속 수감이 곧 유죄는 아니다. 하지만 구속 피고인이 1심 판결 전 줄줄이 풀려나는 게 대다수 국민 눈에 의아하게 비치는 것도 현실이다. 일부 국민은 보석 결정에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구속 피고인이 보석으로 석방되는 것은 판사가 피고인을 봐주려는 것과는 무관하다. 이면에는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구속기간 제한제도가 있다. 현행법은 1심 법원의 경우 최대 6개월, 항소심·상고심은 최대 8개월까지 피고인 구속기간을 제한하고 있다. 기간이 만료되면 구속이 취소되는데 이 경우 피고인은 아무 제한 없이 석방된다. 이 때문에 피고인의 구속기간 만료가 다가오면 법원은 주거지 제한, 사건 관계자들과의 통신 제한 등의 조건을 달고 보석을 결정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어차피 구속 만료 6개월 안에 재판을 못 끝내면 피고인이 제한 없이 풀려나게 되니 고육책으로 보석을 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6개월 안에 재판을 빨리 마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10년 전 법조를 출입할 때만 해도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주요 사건 피고인이 보석으로 풀려나는 사례는 거의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최근 주요 기업 범죄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부패 사건은 쟁점이 많고 다수 증인이 출석해야 하는 데다 범죄의 지능화·고도화로 재판은 점점 더 장기화하고 있다. 특히 2022년부터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의 경우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쓸 수 없는 등 공판중심주의도 강화되는 추세다.
서초동에서는 ‘최대한 1심을 길게 끌어 보석으로 나오는 전략을 요구하는 의뢰인들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법원 내부에서도 보석으로 인한 국민적 오해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다.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석방하는 것인데, 공정성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는 등 사법 신뢰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강력범죄 피고인의 보석에 피해자가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법원 구속기간을 6개월로 제한한 형사소송법 조항은 일제강점기 장기간 구금의 폐해로 인한 경험 등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 대부분의 해외 선진국은 재판 개시 후 구속기간에 별다른 제한이 없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 2월 발간한 ‘법원의 구속기간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판사 770명 중 93.9%인 723명이 현행 ‘6개월 구속기간’을 연장 혹은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인신 구속은 신중해야 하지만 법원이 혐의가 소명돼 구속영장이 발부된 피고인에 대한 재판을 쫓기듯 진행하다 6개월이 임박해 보석으로 풀어주는 식의 기형적 제도 운용이 계속돼선 곤란하다. 구속기간을 늘려 여유를 갖고 충실한 심리를 하면 오히려 피고인 방어권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법원이 허가하는 경우 피고인 구속기간을 1년에서 2년가량 연장할 수 있는 식의 법 개정을 논의해볼 시점이다.
나성원 사회부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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