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환경·의학 연구의 근간 ‘해양시료’를 확보하라
지구 평균기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6일 미국 해양대기청(NOAA) 데이터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3일부터 4일간 섭씨 17도 선을 넘어섰다. 종전까지 지구 평균기온 최고 기록은 2016년 8월의 16.92도로 알려져 있다. 지구 평균기온은 인류가 관측을 시작한 1880년 이후 세계 평균 표면온도 변화를 기록한 것이다. 평균은 대략 14도라고 하니, 17도면 현재의 이상기온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측 이전인 1880년 이전엔 17도를 넘는 이상기온이 없었을까? 지금의 이상기온은 그저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면 지속적인 산업 활동에 의한 것일까.
이런 문제에 해답을 내놓으려면 지구 기온의 장기간 변화를 알아야 한다. 온도계도 없던 시절의 지구 기온을 도대체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몇 가지가 있는데 바다에서 답을 찾는 방법이 자주 쓰인다. 기온이 변하면 바닷속 생명체 비율도 변화하며 플랑크톤, 유공충 등의 사체(死體)가 바다 밑에 퇴적된다. 즉 바다 밑을 뚫어 그 흙을 분석해 보면, 깊이에 따라 퇴적돼 있는 지질의 성분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이를 역으로 환산해 보면 어느 정도 과거 기온을 유추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지구 기온은 과거 수천년간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지는 않다가 산업혁명 이후 유독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다에서 얻은 ‘시료’가 지구의 역사, 더 나아가 지구온난화 연구의 근거로 쓰이는 것이다.
바다는 지구 표면적의 70%를 차지한다. 해양 연구를 등한시하는 건 지구에 관한 연구 그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다. 특히 환경이나 의학, 생활 과학 등의 연구에서 해양시료는 없어선 안 될 보고로 꼽힌다. 기초과학뿐 아니라 환경, 의학 연구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연구진은 매년 3~6월 중 남해안 일대에서 자주 일어나는 식중독 증상의 원인으로 ‘마비성 패류독소’라는 물질을 지목했다. 원인은 ‘알렉산드리움’이라는 이름의 식물성 플랑크톤이었는데, 조개류가 이 플랑크톤을 섭취하기 때문에 덩달아 독성을 띠게 된다. 연구진은 플랑크톤을 채취해 연구한 결과, 수온 변화에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있는 종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말은 마비성 패류독소를 원인으로 하는 식중독이 봄철뿐 아니라 다른 계절까지 확대돼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수산업 관계자들의 적극적 대비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셈이다.
해양자원에서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한 사례도 적지 않다. KIOST 연구진은 노무라입깃해파리의 유전체 정보에서 확인한 ‘독 펩타이드’ 성분을 확인하고 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했는데, 이 성분이 류머티즘 관절염, 제1형 당뇨병, 건선 등의 치료제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임상실험을 거쳐 신약 개발로 이어지면 그 경제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 설명이다.
만일 해양 생명체 중 기존에 없던 ‘신종’이라도 발견되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 동물의 단백질, 유전자 등을 조사하면 신약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새로운 동물의 생태를 연구할 수 있어 인류에게 없던 다양한 지식을 얻을 가능성 역시 커진다. 미국은 열수공(심해온천) 인근에서 찾아낸 신종 생물로부터 10여종의 항암 및 면역 관련 신물질을 찾아내 화이자, GSK 등 다국적 제약기업에 기술을 이전한 바 있다.
해양시료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해양생물시료다. 박테리아나 플랑크톤 등 미생물을 비롯해 어류, 갑각류, 패류 등을 모두 포함하는 생명체 저장고를 뜻한다. 둘째는 해양지질시료로 바다 밑 땅속에서 채취한 흙이나 모래, 돌 등을 의미한다. 이 모든 시료는 항온항습 시설이 갖춰진 전용 공간에 각별하게 관리한다. 시료 성격에 따라 영하 수십도에서 영상 2~3도 정도를 유지한다. 이 같은 관리 시설을 통틀어 보통 해양시료관이라고 부른다.
해양시료의 가치가 큰 만큼 각국은 저마다 큰 비용과 전문인력을 투입해 해양시료관을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대표적 시설에는 미국의 우즈홀 코어퇴적물 저장고,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의 생물시료저장고, 영국 국립해양연구소의 코어퇴적물저장고(BOSCORF), 일본의 코치코어센터(KCC) 및 해양플랑크톤 배양주 저장고(NIES) 등이 꼽힌다. 모두 수백억원 이상의 비용과 수십명 이상의 박사급 인력이 투입되는 중요 시설이다.
한국의 해양시료관은 KIOST가 2012년부터 경남 거제도에 설치·운영 중인 해양시료도서관이 대표적이다. 2009년부터 총사업비 158억원을 투입해 건설한 약 5000㎡ 면적의 시설이다. 해양시료 저장고와 실험실, 첨단 분석장비 및 장비실이 들어서 있다. 신현호 KIOST 해양시료도서관장은 “투자 면에서는 해외보다 부족할 수 있지만, 국내 수요에는 대응할 수 있을 만한 규모와 시설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해양시료관의 운영과 관리에는 굉장한 노력이 들어간다. 생물시료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관리를 실패하면 죽어버릴 수 있고, 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변이가 생길 우려도 크다. 플랑크톤 등의 미생물은 같은 종을 시험관 안에서 장기간 계속 배양하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얻어온 시료를 해양시료관 등에 공유하지 않고 직접 관리하곤 하는데, 그 때문에 실험의 신뢰성을 해치는 사례가 적잖이 발견된다. 신현호 관장은 “해양시료도서관은 철저한 시료관리로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장기간 보관 문제를 해결하고, 실험의 신뢰성을 한층 높이기 위해 액체질소로 시료를 동결·보관하는 ‘냉동 보관시설’ 도입을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해양시료의 수집과 보관은 남이 대신해 주기 어려운 분야다. 우리가 수집한 해양 시료는 우리가 직접 관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는 국가 연구개발 역량을 뒷받침할 기반 시설로 여겨진다. 여기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 아닐까.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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