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재판과 인신 구속
심급별로 6개월 내지 8개월로
규정된 구속기간 제한 완화
방안이 법원에서 논의 중
공판중심주의가 정착하려면
불구속 수사 및 재판 확대가
필수적 요소… 이런 지속적인
노력으로 형사재판 발전해
재판 오래 걸리므로 구속기간
늘리자는 것은 역사적 퇴행
불구속 상태로 재판 진행하되
다른 제도 개선책 고민하길
최근 대규모 금융범죄 등 자금 흐름과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건이 늘어남에 따라 현재 심급별로 6개월 내지 8개월로 규정된 구속기간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이 법원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사건이 복잡하고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미부여 등 제도 변화로 증인신문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6~8개월의 구속기간 내에 재판을 끝내기 어려우니 일정한 경우 구속기간 제한을 1년으로 늘이는 등 완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에는 도저히 동의하기 어렵다.
2005년 이전에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면,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에 수사기록 일체가 재판부에 제출됐다. 법관들은 제1회 공판기일 전에 수사기록을 검토하고, 유무죄에 관한 결론을 가진 채 법정에 들어갔다. 공판기일 전에 수사기록을 충분히 검토하고 재판에 임하는 재판부가 ‘좋은’ 재판부로 인식됐고, 수사기록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거짓말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2006년 9월 이용훈 대법원장은 수사기록에 의존하는 당시 형사재판의 현실을 비판하며, 형사사건에서 유무죄 판단은 판사실에서의 수사기록 검토가 아니라 법정에서의 증거조사 결과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적 법정심리 방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에 공소장과 구속 관계 서류 외에 재판부에 예단을 초래할 수 있는 수사 관계 서류의 제출은 허용되지 않았고, 재판을 통해 증거 능력을 갖춘 증거들만이 법정에 현출되고 재판부에 제출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검사의 수사실을 밀실로 표현하거나, 재판에서 수사기록을 던져버리라는 강연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수사기관은 반발했고, 법원 내부에서조차 그동안의 재판은 모두 잘못된 재판이냐며 혼란스러워했다.
재판에 소요되는 시간은 점점 증가했고, 재판부당 주 1~2회 진행되던 형사재판이 주 2~4회 이상으로 확대됐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을 2배 이상 늘리고, 법원 복도까지 막아서 형사법정을 만들었다. 오래된 법원에 흔히 보이는 복잡한 미로 구조는 당시 법정 증설 결과로 보아도 무방하다. 법관들도 동참했다. 주 2~4회 이상 법정에 매여 있으면서 야간과 주말에 기록을 보고 판결문을 작성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사법부, 나아가 법관들의 ‘재판다운 재판’을 위한 의지와 헌신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고, 국민은 이런 법원을 지지해 줬다.
공판중심주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불구속 수사 및 재판의 확대가 필수적 요소로 이해됐다. 1997년 영장실질심사제도가 시행돼 인신 구속에 즈음해 법관이 피의자를 심문함으로써 구속 필요성을 직접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는 이미 마련돼 있었다. 과거 당직 판사에 의해 처리되던 영장 업무를 전담하기 위해 영장전담판사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됐고, 법원별 영장심사기준이 수립돼 공개되는 등 제도적 보완이 이뤄졌다. 2002년 9만9995명에 달했던 수사 단계 구속자 수는 2005년 5만1990명으로 줄었고, 2011년에는 2만8960명으로 감소하는 등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정착됐다.
신병이 구속된 상황에서 변론 초점은 조속한 석방이 될 수밖에 없고, 변호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한 변론 준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불구속 재판 확대와 공판중심주의 정착은 필연적으로 무죄 사건 증가를 불러왔다. 2002년 1436명에 그쳤던 1심 무죄 선고 인원은 2006년 2314명, 2019년 6868명으로 증가했다. 불구속 수사 및 재판이 확대되면서 방어권 보장이 더 강화됐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형사재판은 이런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 변화하고 발전해왔다. 구속기간이 모두 경과했음에도 재판을 마치지 못했다면 보석을 허가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면 된다. 도망이나 재범의 우려가 있다면 전자발찌처럼 그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을 고안하고 추진해야 한다. 업무가 과중하다면 법관과 재판부를 증설하고, 복잡한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심리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 검사의 공판 관여가 적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 구속기간을 늘리자는 가장 편하고 손쉬운 해결책으로 돌아가는 것은 역사적 퇴행일 뿐, 사법부가 먼저 나서서 이야기할 주제는 아니다.
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범죄자가 키즈카페 취업 제한 제외된 ‘황당한’ 이유
- 우성해운 창업주 별세… 아들 차인표 “천국에서 만나요”
- 잠깐 졸았는데…女손님 옷 속으로 손 넣은 마사지사
- ‘바가지 안돼, 관광객 못 잃어’ 명동 가격표시제 추진
- 운동화 구멍 보여주더니…김남국 “가난 코스프레 안했다”
- 음주車에 환경미화원 다리 절단… 운전자는 징역 2년
- [관가뒷담] 대통령실 도청 의혹에 ‘도청방지 필름’ 설치하는 기재부
- ‘2년 유예’ 끝나는 생활숙박시설, 이행강제금 폭탄 터진다
- ‘쌍방폭행?’…주차시비女 침뱉고 폭행한 보디빌더, 그후
- 원희룡 “양평道 尹정부 끝나면 하자…어차피 또 野선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