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나, 최경주야 성실히 걸어온 한 길… 참 자랑스럽고 장하구나”
‘한국 골프 전설’ 최경주의 꿈
2010년 마스터스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 13번홀(파5). 오거스타 내셔널GC 아멘코너(11~13번홀)의 마지막홀인 이 홀에서 티샷을 하던 최경주(53·SK텔레콤)가 백스윙 톱에서 다운스윙을 하려는 순간 뒷 조에서 거대한 함성이 들렸다.
필 미켈슨(미국)이 버디를 잡자 갤러리들이 내지른 함성이었던 것. 갑작스런 소음에 집중력이 떨어진 최경주의 티샷은 그만 러프 깊숙이 날아갔고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이후 급격한 샷 난조에 빠지면서 최경주는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다.
12번홀(파3)까지 선두를 달리며 동양인 최초로 대회 우승에 한 발 바짝 다가섰기 때문에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만약 대회 마지막날 극성스런 팬들을 몰고 다니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같은 조에서 경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변했을 지 모른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최경주 본인은 당시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커리어 중 어떤 대회가 가장 아쉬움이 남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 최경주는 “마지막날 12번홀까지 선두를 달리다 우승을 놓친 2010년 마스터스”라고 했다. 아쉬움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그는 “열성적인 팬들 때문에 마지막날 타이거를 만나지 않길 바랬는데 그러지 못했다”라며 “타이거와 동반 플레이를 하면 팬들 때문에 어느 정도 경기에 방해를 받는 걸 감수해야 한다. 그날도 진행이 더뎌 미켈슨이 속한 뒷 팀과 거의 맞붙은 상태가 돼 함성을 가까이서 들을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최경주가 올해로 미국 진출 24년째를 맞았다. 그가 한국인 최초로 2000년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진출한 이후 많은 후배, 이른바 ‘경주 키즈’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경쟁을 하고 있다. 현재 PGA 투어 국가별 선수 분포도를 보면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다.
최경주는 통산 8승으로 마쓰야마 히데키(일본)와 함께 공동으로 동양인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불모지나 다름없는 척박한 국내 골프 환경에 굴하지 않고 거의 독학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가치는 마쓰야마의 8승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는 2020년에 만 50세 이상 선수들의 무대인 챔피언스 투어 진출해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에서 열린 퓨어 인비테이셔널에서 한국인 최초로 챔피언스 투어 우승을 차지한 것.
그렇다고 그가 PGA 투어에만 전념하는 건 아니다. 2007년에 최경주재단을 설립해 골프 꿈나무 육성에 앞장 서고 있고 2011년 부터는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건 대회(현 현대해상 최경주인비테이셔널)를 개최하고 있다.
그에게 지난 23년간의 소회를 물었다. 최경주는 “하나님 은혜다. 올해로 24년째 건강한 몸으로 투어를 뛰고 있다는 건 기적”이라며 “나도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이건 분명 사람의 능력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PGA 투어 한국인 첫 우승이었던 2002년 컴팩클래식을 꼽았다. 최경주는 “PGA 투어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는데 우승까지 하게 됐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챔피언 퍼트를 마친 뒤 그린으로 뛰어 들어온 아내(김현정씨)를 향해 가는데 발걸음이 떼지지 않을 정도였다”면서 “아내와 포옹했을 때 느낀 평안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22년전 감격을 떠올렸다.
2004년에 자신이 수립한 마스터스 동양인 최고 성적(단독 3위)을 ‘멘티’인 후배 임성재(25·CJ)가 2020년 대회서 2위로 경신했고 동양인 최초 우승 영예는 2021년 대회서 마쓰야마가 가져 갔지만 최경주가 여전히 우승하고 싶은 대회는 마스터스다.
그는 “이제는 더 힘들어진 소망이 됐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스터스서 꼭 우승하고 싶다. 그런 꿈을 꾸고 오늘도 열심히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지금도 챔피언스 투어와 PGA 투어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 보다도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그의 평소 건강관리가 궁금했다. 최경주는 한 마디로 생활 습관이라고 했다. 일단 잘 자고 잘 먹는다. 체력 훈련을 겸한 강도 높은 훈련을 매일 한다고 전했다. 최경주는 “신앙인으로서 기도 시간은 필수다. 휴식은 음악감상, 영화관람, 명상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것들을 유효적절하게 잘 배분하는 선수가 롱런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금욕주의에 가까운 철저한 자기관리로 정평이 나있는 최경주 스스로가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그래서 ‘PGA 투어 데뷔 해였던 30세의 최경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는 “넌 참 잘 이겨냈다. 성실히 한 길을 걸어서 자랑스럽고 장하다.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아무 탈없이 온 것에 박수를 보낸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최경주에게 골프란’이라는 질문을 던져 봤다. 그는 “인생이라 생각한다. 플레이어 자신이 심판이 되어야 하는 골프는 절대 속이면 안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골프를 인생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4년 투어 생활을 하면서 우즈, 미켈슨 등 수많은 동료들을 만났다. 문득 그 중 어떤 선수와 가장 친분이 좋은 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다름 아닌 ‘레전드’ 잭 니클라우스(미국)였다. 최경주는 “잭이 쓴 ‘골프 마이웨이’라는 책을 보고서 골프를 배웠다. 그리고 잭이 주최한 2007년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면서 “당시 대회 마지막날 18번홀 그린 밖에서 챔피언을 영접하기 위해 나와 있던 잭에게 ‘당신이 쓴 골프 마이웨이’를 보고 골프를 시작했고 오늘 우승까지 하게 됐다”고 하자 무척 기뻐했다. 이어 “그 이후부터 잭이 나를 아들처럼 여긴다. 물론 나도 그를 만나면 아버지 같은 포근함과 따뜻함을 느낀다. 가족들과도 자주 만나는 것은 물론 매년 대회 때 나를 초청해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경주는 몸은 미국에 있으면서도 어려운 여건하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후배들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실히 훈련하고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마라. 끝까지 하다보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라며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좋은 습관을 몸에 장착하도록 해라. 그러면 좋은 결과가 틀림없이 온다”고 조언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설립한 최경주재단도 오롯이 미래의 후배들을 위한 몫이다. 그는 “재단 골프 꿈나무들이 성장해 PGA 투어에서 나와 연습 라운드를 하는게 소망이다. 그런 맥락에서 꿈나무 육성은 계속될 것”이라며 “여러 후원자들과 함께 꿈나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바람으로 재단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주말 골퍼를 위한 팁을 청했다. 최경주는 “골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다. 골프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마음을 내려 놓고 즐기라는 얘기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선 물론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을 하지 않고 머리로만 생각하는 골프를 해서는 안된다. 특히 스코어를 먼저 생각하는 골프, 다시 말해 목표에 지나치게 매몰된 골프를 하지 마라. 즐기는 골프가 결과도 좋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어라”고 조언했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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