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칼럼] 윤석열 정부가 가는 길, 신발전국가

2023. 7. 1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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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미리 당겨서 걱정하는 것은 우리의 습관이자 취미이다. 아직 9개월이나 남은 내년 총선에서 정부·여당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진작부터 뜨거운 관심거리다. 이에 몇몇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았다. 임기 15개월 차인 윤석열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반응은 이러했다. “정부의 정책이 어디로 가는지는 대강 알겠다. 동의하는 부분도 많다. 문제는 국정이 향하는 방향을 압축할 개념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 탈세계화 시대, 국가 역할 커져
전략산업 지원 등 큰 방향 옳아
추진 방식에는 개선 여지 많아
옛날식 통제와 감독 벗어나야

#1 필자는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을 탈세계화 시대의 ‘신(新)발전(neo-developmental) 정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풀어서 말하자면 그동안 개방과 통합의 길을 달려왔던 세계는 분리된 두 세계로 급선회하고 있는데, 이 흐름을 재빨리 포착한 것이 윤석열 정부 국정 방향의 핵심이다. 분리된 세계, 탈세계화의 흐름은 우리에게 기회와 도전의 양날이다. 윤 정부는 탈세계화가 진행되는 세계 안의 우리 위상을 4차산업 제조업 대국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적 대응을 주도하는 리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1970·80년대 냉전 시기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했던 국가를 발전국가라 불렀듯이 윤석열 정부는 탈세계화의 환경 속에서 또 한 번의 대도약을 조율하는 감독이라는 점에서 신발전 정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 태생적 반(反)시장주의자를 제외한다면 여기까지는 대체로 동의하리라. 문제는 신발전 전략을 추구하는 방식에 있다. 신발전 정부가 핵심 파트너인 기업과 민간을 대하는 태도에 필자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대기업, 중소 기업인들과의 만남에서 격의 없는 장면들을 종종 보여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책 집행 방식은 엄숙하다 못해 가끔은 권위적으로까지 비친다. 최근 경제부총리가 라면 제조사들을 공개적으로 압박하여 가격 인하를 유도한 것이 한 예다. 달리 말해 정부가 독려하는 신성장 섹터는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 등으로 탈바꿈했지만, 발전을 독려하는 방식은 한강의 기적을 주도하였던 발전국가 시대의 모습을 다 털어냈다고 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큰 방향은 타당한데 일을 꾸려가는 방식에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나 할까.

#3 윤 정부가 주도하는 탈세계화 신발전 국가의 면모를 핵심 숫자 몇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19.6%, 15%, 5%.

먼저 19.6%가 가리키는 탈세계화 질서. 지난 4월 기준으로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비중은 19.6%를 기록하면서, 대미 수출과 대중 수출 비중이 20년 만에 재역전되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임기 첫해에 대중 수출이 대미 수출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선 지 20년 만에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미국 중심으로 항로를 급선회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역 구조의 변화를 넘어서는 일이다. 1위 수출국의 변화는 2001년 중국의 WTO 가입과 1989년 냉전 붕괴를 기점으로 개막된 중국 개방과 세계화 개방 시대의 종언을 가리킨다. 지난 20년 우리는 중국 경제의 굴기를 타고 G10 국가로 도약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의 물줄기가 대선회하는 시점이다.

#4 2022-23년을 거치면서 변곡점의 양상은 분명해졌다. 세계는 자유 세계와 권위주의 세계로 급격히 분리 중이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분리와 재편의 주역은 정부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공을 들였던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인플레감축법(IRA), 인프라법 등은 결국 국가가 적극적 산업발전 정책을 들고 수십 년 만에 전면에 재등장하는 현실을 집약해 보여준다.

신발전 국가로서의 윤 정부를 상징하는 두 번째 숫자는 15%다. 야당 반대를 뚫고 지난 3월 통과된 K-반도체 법에서 정부는 대기업, 중견기업의 반도체 생산설비 투자에 최대 15%의 세액 공제를 부여했다. 8%냐 15%냐의 지루한 논쟁이 15%로 귀결된 것은 윤 정부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5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신발전 정부의 주도자 역할이 전략 산업 선정과 지원에 그치지 않고 있다. 탈세계화 시대의 난제인 인플레와의 전쟁에서 정부는 발전국가 시대를 연상케 하는 관료적 지도를 감행하기도 한다. 경제부총리는 라면의 주재료인 밀가룻값이 인하되었는데 라면값 인상이 계속된다며 라면 제조사들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제조사들은 결국 라면값을 5% 인하했다. 물론 생활 물가와의 전쟁은 민생과 직결되는 승부처다. 하지만 예전 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물가지도 외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6 이제 결론. 탈세계화, 경제안보 시대에 윤 정부의 신발전 전략은 공감할 만하다. 관건은 정부의 작동 방식에 있다. 기업들에 대한 지원과 협력, 소통이 중심 역할이 될 것인가? 기업들에 대한 통제와 지도가 주력이 될 것인가? 전자가 신발전국가의 길이라면 후자는 관료적 발전국가의 길이다. 윤 대통령은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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