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건축으로 그린 산수화, 의재미술관
추사 김정희로 대표되는 사대부 문인화의 전통을 남종화라 하여 직업 화원들의 전문적인 북종화와 구별한다. 진도 출신의 허련·허형·허건 3대의 허씨 가문은 전라도 남종화의 큰 줄기가 되었고, 그 일족이며 허형의 제자인 의재 허백련(1891~1977)은 남종문인화의 마지막 봉우리를 이루었다.
해방 직후 의재는 광주 무등산에 차밭을 가꾸며 작품 활동에 몰두하는 한편, 농업고등학교를 열어 새 나라의 인재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무등산 증심사 계곡 양편에는 의재의 주택인 춘설헌, 농업학교, 춘설차밭, 의재 묘소 등 그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의재의 후손과 동호인이 힘을 모아 2001년 이 지역에 의재미술관을 개관해 마지막 점을 찍었다.
현상설계를 통해 당선한 건축가는 조성룡과 김종규의 협업팀이었다. 그들은 이 땅의 역사적·지형적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건축 개념의 출발로 삼았다. 경사지에 자리한 미술관 내부를 반층 차이의 4단 수평면으로 만들고, 계단과 경사로로 그 면들을 연결해 전시공간을 이루었다. 보통 미술관이 독립된 방들의 집합체라면 의재미술관은 등산로를 연장한 한줄기 길로 이루어진 전시장이다. 이 전시의 길이 외부로 나오면 예의 농업학교와 춘설차밭으로 연결된다. 산에서 시작해 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의 한 부분을 미술관으로 삼았다.
기존 농업학교의 표면을 아연판으로 감싸 차문화교실로 바꾸었고 사무동을 별도로 지었다. 본관을 포함해 건물 3동을 길게 배열하고, 형태를 단순화하며 재료를 절제해 의도적으로 존재감을 약화했다. 건물보다는 선비들의 문인화같이 미니멀한 여백의 공간이 돋보인다. 로비 내부에 들어가면 전면 창을 통해 보이는 무등산의 풍경에 압도된다. 건물은 오로지 풍경을 담는 액자일 뿐, 의재가 즐겨 그렸던 산수화와 같이 풍경과 땅이 주인공이다. 건축은 스스로 희미한 점경이 되기를 자처했지만, 역설적으로 의재의 유적과 무등산을 하나로 묶는 지형적 공간의 중심이 되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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