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생성형 AI인 '달리'와 함께 공간 디자인 화보에 도전했다
〈엘르 데코〉 북 에디션 여름호에 게재된 기사 ‘Dall · E’S Decoration’은 작성된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형하도록 훈련된 AI 모델 ‘달리’에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주문해 만든 데커레이션 화보다. 달리를 통해 공간 디자인의 꿈을 이뤄보겠다는 주제넘은 창작욕에는 많은 고통이 따랐다. 원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얻기 위해 달리에게 제시한 문장은 사실 단순했다. ‘가에타노 페세(Gaetano Pesce)의 미학에 따라 실내 디자인을 리모델링한 방, 큰 창문이 있고 컬러플한 레진 침대와 의자, 테이블이 놓인 장면.’ 달리는 몇 초 만에 그럴싸한 색감을 지닌 장면을 펼쳐냈다. 가에타노 페세 특유의 컬러 웨이가 묻어나오는 방을 보고 곧장 휘둥그레진 눈은 금방 실망으로 변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비극이었다. 콜라주와 3D 디자인의 어설프고 조악한 혼종이랄까. 완두콩색 2인용 소파의 팔걸이는 한쪽 끝이 잘려 있고, 불에 타서 녹은 듯 휘었다. 벽에는 난데없이 일그러진 비눗방울 같은 것이 누에고치처럼 널려 있었다. 어떤 이미지를 생성한 것인지 알기 힘든 부분은 자세히 볼수록 더욱 속수무책으로 발견됐다.
다음 주문도 마찬가지. ‘18세기 프랑스 오두막을 개조한 산업디자이너 마크 뉴슨의 모던 프로방스 아틀리에. 책상과 의자가 놓인 실내공간.’ 딥 러닝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신경망이 출력해 낸 마크 뉴슨의 프로방스 아틀리에는 초창기 애플 아이맥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모니터, 맥락 없이 천장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스페이스 실버 컬러의 굴뚝,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된 듯하지만 윤곽이 무너져 있는 민트 컬러의 의자가 놓인 작업실의 모습이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마크 뉴슨의 디자인과 연관 있는 작은 디테일이 적용돼 있긴 하지만, 달리는 내 주문을 어떤 이미지로 구현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다. ‘빨간색 책상과 의자가 놓인 초록색 방’보다는 조금 복잡한 주문이 달리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 같았을까? 공간 디자인은 이미지 생성 AI 모델에게 아직 무리일까? 그렇다면 과연 달리는,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그 힌트를 달리를 가장 잘 아는 이복형제, 오픈AI사가 개발한 또 다른 AI 모델 ‘챗GPT’에게 얻어보고 싶었다. “달리를 아니?” 챗GPT는 0.1초 만에 3개 문단으로 이뤄진 대답을 쏟아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달리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달리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픽셀을 예측해 해당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법을 학습합니다. 일반적인 사물과 동물에서부터 추상적 개념과 초현실적 장면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죠. 여러 개념을 혼합해 참신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각 자료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명령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자세한 속성이나 구성을 제시할 수 있어요.”
달리를 통해 가에타노 페세와 마크 뉴슨풍의 방을 디자인하려다 처참한 실패를 맛본 나는 의문스러웠다. “그렇다면 이미지 생성 AI로서 달리의 한계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놀랍게도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앞선 질문보다 수 초가 더 걸렸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을까. “달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지만, 맥락이나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죠. 훈련 데이터에서 학습한 패턴만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하기에 시각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개념적으론 부정확하거나 무의미한 출력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달리는 상식 추론과 외부 지식이 부족하다. 정확도 높은 기술과 뛰어난 처리 속도로 어딘가 이상한 의미를 지니거나 비현실적 이미지를 생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맥락이나 세계에 대한 통찰이 없다면 과연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단지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 이상의 활동이다. 누군가의 선호도와 취향, 그만의 미학, 사용자 경험 등 한 디자인이 사용될 다채로운 맥락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물론 달리는 시각적으로 충분히 매력 있고 창의적인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하지만 설계 원칙이나 인간 중심 설계를 위한 고민, 디자인의 주관적 특성에 대한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이해를 갖고 있지는 않다. 이미지 생성형 AI 모델이 보편적 인간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해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만일 지금 내가 달리에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주문하고 싶다면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좋은 품질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지켜야 할 가이드가 있을까?
다시 한 번 챗GPT에게 물었다. “달리에게 효과적인 지침을 제공해 고품질의 결과를 얻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지침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원하는 요소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가구의 종류나 색상, 재료, 질감, 조명 배치 및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전할 것. 둘째,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언어를 사용할 것.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언어를 사용해 당신의 디자인 선호도를 설명하세요.” 예를 들어 “나는 아늑한 거실을 원한다”는 말 대신 “따뜻한 색상 팔레트, 편안한 단면 소파, 벽난로, 부드러운 주변 조명이 있는 거실을 원한다”는 주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달리는 아직 가상 모델이다. 실제 응용 프로그램이나 디자인 업계에서 거둔 실적이 없다. 하지만 완성한 디자인을 변형하거나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을 굉장한 속도로 처리해 내기 때문에 인간의 디자인에 영감을 제공하는 독보적 도구가 될 자질은 충분하다. 디자이너가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디자인 프로세스의 초기 단계에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이미지 생성 AI가 인간 수준의 직관이나 디자인 전문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달리의 ‘어시스트’로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면 최종적 결과를 큐레이션하고 다듬기 위해 자신만의 디자인 지식과 판단력을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사람들은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둘 모두 인류의 생산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지 않았나. 그러니 또 모르는 일인 것이다. 심상치 않은 AI 모델 달리가 동시대 디자인 신을 한 차원 끌어올릴, 역사상 가장 거대한 혁명을 일으킬지. 그 시작은 기대보다 조금 미약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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