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서 뭐가 보이십니까…'우주의 신비' 풀어낸 뜻밖 소재
화약이 폭발하며 발생한 에너지가 화폭에 고스란히 담겼다. 소멸한 불꽃의 흔적은 그을음이나 색채 문양으로 종이·유리·거울 위에 방사형으로 퍼진다. 화약이 빚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작품이 인간과 우주를 고찰하게 한다.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 신국립미술관(NACT)에서 개막한 차이궈창(66·蔡國強·사진)의 개인전 ‘우주 속의 산책-원초적 불덩이 그 이후’의 작품들이다.
차이궈창은 1980년대부터 화약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중국 출신 현대 예술가다. 그는 풍수·천문학 등 고전 동양철학과 반전(反戰) 등 사회문제에 천착했고, 야외 불꽃 퍼포먼스, 대규모 설치미술 등으로 작품 분야를 확장했다.
이번 전시의 공간 활용은 그가 직접 구상했다. 약 2000㎡ 규모의 전시장에 50여 작품이 그의 일대기 순으로 전시됐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한 발짝 떨어져 조망하면 반전이 있다. 1991년 도쿄에서 예술가로서 탄생을 알렸던 개인전 ‘원초적 불덩이’에 내놨던 작품들과, 불꽃놀이를 LED(발광다이오드)로 재해석한 최근작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 같은 작품이 나란히 배치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차이궈창의 삶의 궤적을 좇다 보면 그가 오랫동안 탐구한 ‘시공 초월’을 경험할 수 있다.
다음달 2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패션 브랜드 생 로랑과 NACT가 주관했다. 생 로랑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가 주도해 시각예술·영화·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엔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에서 한국 현대 미술가 이배 작가와 협업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프란체스카 벨레티니 생 로랑 최고경영자(CEO)는 “차이궈창의 대담함과 집념, 호기심, 혁신이 이번 전시 작품에 잘 드러났다”고 말했다.
차이궈창이 화약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선택한 건 시대적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1957년 중국 푸젠성(福建省) 취안저우(泉州)에서 태어난 그는 문화대혁명 등 60~70년대 정치·사회적 격변을 목격하며 자랐다. 그는 “화약은 사회 통제에 반발심을 품고 있던 젊은 시절과 파괴와 재생, 반전 등을 표현한 도구였다”고 설명했다.
상하이 연극아카데미에서 무대 연출을 공부한 그는 1986년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처음엔 좁은 아파트 부엌에서 어린이용 불꽃놀이 화약으로 실험했다고 한다. 1990년대부턴 야외 설치 미술에도 몰두했다. 1993년 중국 만리장성의 서쪽 끝에서 고비 사막까지 약 10㎞ 거리에 화약을 폭발시킨 ‘만리장성을 만 미터 연장하다’와, 2015년 화약 사다리를 하늘 높이 올린 ‘스카이 래더’가 대표작이다.
그는 199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2006년)과 구겐하임 미술관(2008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2012년 미국 국무부 예술훈장 등을 받았다.
전시 개막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 요츠쿠라 해변에선 불꽃 퍼포먼스 ‘하늘이 벚꽃으로 물들었을 때’가 진행됐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피해를 입었던 이와키 주민들을 위로한 작품이다. 해변 위 너비 400m, 높이 150m의 공간에서 색색의 불꽃탄이 터졌다. 이와키는 차이궈창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1988년 이와키에 온 젊은 외국인인 그를 주민들은 환영했고, 작품 활동도 도왔다. 그는 “‘하늘이 벚꽃으로 물들었을 때’는 정치·역사를 초월한 이와키 사람들과의 우정을 표현한 작품”이라며 “세상에 믿음과 희망을 불어넣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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