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이 옥상 문 잠그기? '청소년이 살아남는 한국' 되려면 [세컷칼럼]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달리 말하면 자살하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낮은 나라다. 그중에서도 미성년자가 심각하다.
2021년 0~17세 아동·청소년 자살률은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통계청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2 보고서'). 인구 10만명당 2.7명으로 2015년(1.4명)의 2배가 됐다. 15~17세는 9.5명에 이른다. 대학 입시에 시달리는 나이다.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학업성적으로 인한 불안과 우울감으로 자해나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이 25.9%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말해준다.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 학생 5176명과 학부모 185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쯤 되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한 윤석열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시점은 좋지 않았으나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6년 전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입시경쟁, 사교육비, 심화하는 교육 격차”라며 사교육비 절감을 지시했다. 결과는 민망하다. 사교육 시장은 더 번창했다. 2018년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자살자를 대폭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청소년의 자살률은 상승 중이다.
토요일인 지난 2일 오후 10시쯤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차로 돌아봤다. 평일보단 덜하지만, 주말인데도 학원 간판이 붙은 빌딩 앞마다 비상등을 켠 승용차들이 늘어섰다. 건널목에 교통 안내 요원들이 분주하다. 비슷한 옷차림에 불룩한 배낭을 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와 제각각 부모의 차를 찾아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대통령이 지시한 ‘공교육 정상화’
심각한 청소년 자살 해법 될 수도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 상위권에 올라도 우울감을 물리치기 어렵다. 자사고·특목고·영재고 학생들에게 학업이나 성적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이유를 묻자 ‘자신에 대한 실망과 자신감 상실(73.8%)’이라는 대답이 나왔다(유기홍 의원 등).
최근 세종시에서 상가 옥상 출입문 개폐 장치 설치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학생 투신이 잇따르며 생긴 일이다. “소용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자살 위해 수단에 대한 접근 제한은 국내외 많은 연구에서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2016년엔 같은 이유로 아파트 옥상에 자동개폐 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학생들이 옥상으로 향하지 않게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문이라도 잠그자는 고육책이 초라하다.
악순환에 빠진 입시와 자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해결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망갈 뒷문이 마련돼 있다. 자살을 줄여야 하는 정부 부처들 사이엔 자살 관련 정보가 실시간 공유조차 안 된다. 그러니 자살이 늘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입시는 사교육이 좌우한다는 인식이 만연해 공교육 담당자들은 오히려 부담을 덜었다. 명문대나 의대 진학은 학원 책임이 됐다.
킬러 문항을 앞세워 1등부터 50만 8030등(2022년 수능 응시생)까지 줄은 세웠지만,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이도 조정조차 서툴러 학생을 물수능과 불수능에 번갈아 밀어 넣는 출제위원들이 무슨 재주로 완벽한 평가를 하겠는가. 킬러 문항을 없애 변별력 확보가 어려워진다고 해도 공교육 정상화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그게 학생을 살리는 길이다.
옥상문 폐쇄보다 우울 차단 시급
현 상황에선 킬러 문제 하나를 틀려 12년 공부가 허물어지면 극단적 상황에 몰릴 수 있다. 휴일에도 밤 10시까지 사교육에 갇혀 우울과 싸워야 한다. 비싼 학원 등록이 필수인데 돈이 없어 좌절한다면 학생뿐 아니라 부모까지 위태해진다. 이런 시스템이 자살률 1위의 한 축이다.
앞으로 입시 제도를 결정할 때 청소년 자살률에 미칠 영향을 따져 보자. 사교육 비중이 커지면 경제적으로나 일상생활 측면에서나 위험요소가 많아진다. 공교육 틀 안에서 출제해 수능이 쉬워진다면 정시에 보완책을 마련하면 어떨까. 수시와 논술 역시 한계가 드러나는 마당에 현행 체계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결국 대학과 사회가 함께 변해야 하는 사안이지만 입시 현장부터 달라지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날 수 없고 비극을 멈추지 못한다. 삶을 포기하는 청소년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입시가 절실하다. 킬러 문항 개수보다 청소년 자살률이 교육 당국의 진정성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일지 모른다.
글=강주안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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