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여행에 100만 원, 어째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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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화 기자]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지인들을 초대해서 여행을 하게 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한국에 처음 와보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명소를 관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문화를 체험하며 감탄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뿜어져 나오며 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번 회차의 초대손님은 뉴질랜드에서 온 가족이었다. 부모와 4형제가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수영장까지 있는 고급 독채 풀빌라에서 묵고, 갖가지 서비스 반찬들이 한상 가득인 대게 요리를 먹고, 스릴 넘치는 액티비티를 즐겼다. 우리나라에 저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멋진 곳이 많았는데, 만족해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며 마치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융숭한 대접을 한 것처럼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난주 다녀온 우리 가족여행이 떠오르며 '저렇게 여행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러운 마음과 동시에 씁쓸한 기분이 느껴졌다.
오랜만의 바캉스 준비, 입이 떡 벌어졌다
그동안 코로나와 아이의 입시 때문에 미루어왔던 가족여행을 4년 만에 다녀왔다. 아이들이 크고 나니 네 식구가 시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평생 아무 데도 못 갈 것 같은 우리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려면 여행의 모든 계획과 준비는 온전히 내 몫이다.
평소 내 스타일대로라면 시간대별로 계획을 세워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하지만, 편안하고 느긋한 여행을 선호하는 가족들의 취향에 맞춰 이번에는 고급스런 호텔에서 여유 있는 휴식을 즐기기로 했다.
여행 전 숙소를 알아보는데 그동안 물가가 많이 올랐음을 실감했다. 내가 예상했던 비용보다 거의 30% 이상은 더 들 것 같아 망설여졌지만, 이번 여행은 좋은 숙소를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잡은 만큼 비교적 비싼 호텔들 위주로 알아보았다. 넓고 쾌적한 객실은 기본이고, 전망이 좋고, 각종 편의시설에 프라이빗한 수영장과 스파까지 갖추고 있는 고급 호텔들은 하나같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비쌌다.
오랜만의 여행이니 이번만큼은 돈을 좀 쓰겠다 마음 먹었지만 거의 한 달 치의 식비에 맞먹는 요금 앞에 결국 편의시설을 하나씩 포기하고 객실의 사이즈를 점점 줄여 적당한, 그래도 평소보다는 훨씬 더 비싸고 고급스런 호텔로 예약했다.
먼발치에서 부럽게 바라만 보던 호텔에 드디어 발을 들여놓으니 마음이 한껏 들떴다. 화려한 호텔 로비에서부터 살짝 주눅이 들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애썼다.
평일이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호텔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행 전 예약 사이트에서 이미 빈방이 거의 없이 예약이 꽉 차 있는 것을 보고, 또 호텔의 투숙 후기가 쓰여있는 많은 블로그들을 찾아보면서, 나는 몇 번을 망설이고서야 올 수 있었던 이곳에 다른 사람들은 참 쉽게도 오는구나 싶어 씁쓸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은 즐거웠다. 점점 바빠지는 아이들과 앞으로 얼마나 이런 시간을 더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하지만 여행의 즐거움만큼이나 내 머릿속에는 여행 경비에 대한 부담감도 점점 쌓여갔다.
4인 가족이 함께 움직이려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비싼 숙박비만이 아니라 매 끼니 식사비에 차와 디저트 비용, 관광지의 입장료까지 가는 곳마다 죄다 돈이었다. 결국 최상급 스위트룸에 묵은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전복이 서비스로 나오는 대게요리 한상을 먹은 것도 아닌데, 2박 3일간의 여행에 경비가 백만 원을 훌쩍 넘어버렸다. 여행을 하는 동안 행복했던 추억만큼이나 다음 달 결제해야 할 카드값에 대한 걱정이 점점 쌓여갔고, 생활비에서 여행 경비를 메꿀 생각에 마냥 즐길 수가 없었다.
TV에 넘쳐나는 여행 프로그램들, 블로그와 SNS를 도배하는 여행 후기들을 보고 있자면 이렇게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여행을 남들은 참 자주, 또 쉽게 하는 것 같아 보였다. 휴가철에 북새통을 이루는 인천공항의 모습을 보면 공연히 심술이 나기도 했다. 우리의 여행이 충분히 즐거웠고 행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여행이(그리고 그들의 삶까지) 훨씬 더 화려하고 행복해 보였다.
▲ 남의 행복을 구경하느라 놓쳐버렸을지 모를 나의 행복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
ⓒ 심정화 |
여행에서 돌아와 내 블로그에 여행 후기를 썼다. 가족과 함께 했던 좋은 추억들을 기록해 두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문득 어쩌면 누군가는 내 블로그를 보며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여행 후기에는 근사한 배경의 사진들과 재미있고 행복했던 얘기들만 있을 뿐, 내 글 어디에도 여행 경비 때문에 노심초사하던 마음은 담겨있지 않으니 남들에게는 우리 가족의 여행도 화려하고 행복하게만 보일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볼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가려서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 인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즐거웠던 지난 여행을 돌아보며 혹시라도 남의 행복을 구경하느라 놓쳐버렸을지도 모를 나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시 되짚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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