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응급의료, 처참한 현주소... "지방·중증환아 어디로 가야 하나"
[윤은미]
지난 4일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보건복지부와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아 응급의료체계 붕괴 책임을 묻는 공익감사청구를 실시하면서 유선으로 개별 조사한 전국 45개 상급종합병원의 소아응급환자 수용 현황도 공개했다. 조사 결과 '소아응급환자를 365일 24시간 받는다'는 상급종합병원은 전국에 12곳에 불과했다.
아울러 전국 10곳의 복지부 지정 24시간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중 3곳에 대해 소아응급환자 진료 거부 제보가 있었다. 인천 길병원의 경우 총 병상 수 대비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현저히 부족해 24시간 소아 전담응급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의심되는 상황이다(전수조사 결과 보기).
▲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들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소아 응급의료 체계 붕괴 책임을 묻는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에서 소아 응급의료 체계 정상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연합뉴스 |
"지역 아이들은 갑자기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하나"
전라남도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A씨는 지난 3월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아이가 독감에 걸려 고열에 시달릴 때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A씨가 사는 곳에서 20~30분 거리 내에 3차병원 ㄱ병원과 ㄴ병원이 있고, 그중 ㄱ병원은 어린이병원까지 별도로 운영 중이지만 응급시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A씨는 "소아응급실이 없어 성인 응급환자가 가는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ㄴ병원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 소아응급실은 따로 없다. 성인응급실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를 보지만, 오후 10시가 지나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호출이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병원은 소아환자의 진찰부터 소아청소년과가 맡아 내원 전에 반드시 전화로 진료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A씨는 "집에서 날을 새우고 새벽에 줄을 서서 아동병원 번호표를 뽑아 대기하다가 진료를 받는 게 우리 지역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A씨는 저체중아인 둘째 아이를 키우고 있어 지역의 소아응급의료 상황에 더욱 불안함을 느낀다. 둘째가 생후 6개월일 때 장기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을 때도 전남에서 서울까지 가야 했는데, 이는 A씨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다. 아이가 정기진료를 보던 지역 내 종합병원에선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면서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 의뢰서를 써줬다. 현재까지도 지역에 유전학과 전문의가 없어 3개월마다 서울까지 정기진료를 다니고 있다.
그는 "요즘 소아과 전공의가 없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 아이들은 갑자기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하나"며 "정부는 어느 지역에서든 아이들이 병상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게 보건의료 정책부터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지난 4월, 경기도에 사는 중학교 3학년 아이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아이의 보호자 B씨는 "중3은 소아과 의사가 봐야 하는데 지금 없다" "우리 병원은 뇌쪽은 안 본다" 등의 이유로 내원한 소아응급실에서 모두 거절 당했다. 119의 안내를 받아 방문한 한 소아응급실은 "CT를 찍고 뇌 쪽을 봐야 하는데 지금은 일반 소아과 진료밖에 안 된다"고 안내했다.
B씨는 "결국 아동병원에 갔고, 2시간 대기 후 겨우 진료를 받았다. 기립성 저혈압 진단을 받았다"며 "가는 곳마다 뇌 문제라면서도 받아주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되는 질병이기라도 할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 병원의 모습(자료사진). |
ⓒ pixabay |
지역에서 아픈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에게 현재의 소아응급 의료 공백은 생명이 달린 문제다. 지역에서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C씨 "아이가 지난해 여름 대발작 경련을 일으킨 지 3시간 40분이 되도록 '뺑뺑이'를 돌았다"며 "아이가 거품을 물고 눈이 돌아가 온몸이 다 꺾일 때까지 받아주는 병원을 못 찾아 구급차에서 아이를 잃을까봐 정말 많이 울었다"라고 털어놨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크고 작은 경련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다. 주사 한 번이면 항경련제를 투약할 수 있지만, 뇌질환에 대한 처치를 할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상시 당직 중인 응급실을 찾기는 쉽지 않다.
C씨는 당시 아이가 구토하며 사지가 뻣뻣해지는 증상을 보이자 하던대로 경련약을 먹이고 아이가 놀라지 않게 눕혀뒀다고 한다. 구급대원이 왔을 때도 경련이 빠르게 퍼지진 않아 신속하게 이송만 하면 주사제를 적게 쓰고도 경련을 멈출 수 있어 뇌에 타격이 적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3차병원에서부터 거절 당하면서 '뺑뺑이'가 시작됐다.
아이가 경련을 멈추지 못하자 정기진료를 보는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옮기지도 못한 채 무려 3시간 40분간 아이와 엄마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거절 사유는 37.5도라는 아이의 체온이었다. 당시는 코로나가 수그러들던 시점이었고, '경련으로 인한 정상범위의 체온일 뿐 발열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2차병원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역시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고, C씨는 조금 큰 의원급까지 의료전달체계를 거슬러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3차병원에서 거절 당한 아이를 작은 병원은 더욱 받아줄 수 없었다. 결국 처음 구급대원이 전화를 건 3차병원으로 C씨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소아병상이 꽉 찼고 이곳에 있는 환자들도 응급인데 잘못되면 엄마가 책임질 거냐"고 반응했다.
구급대원은 마지막으로 3차병원에 전화를 걸고, '병상도 필요 없으니 구급차에 탄 채로 주사 한 대만 놔달라'고 했다. 그제야 해당 병원은 오래 기다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병원 앞에 구급차를 대고 기다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구급차에서 내려 응급실에 접수를 하니 들어갈 수 있었다.
C씨는 "내원 당시 소아병상 한 곳에만 환아가 있었고 성인병상에도 응급환자는 없었다"며 "의료진이 기도부터 확보하려 했지만 혀가 말려 석션도 불가능했고 주사제로 경련약을 투여했지만 이미 경련한 지 수 시간이 지나 잘 잡히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결국 수차례 항경련제를 투여한 뒤 아이는 잠이 들었지만, 산소포화도와 뇌파상으로 여전히 경련이 감지되고 있었다. C씨는 30분이면 끝날 일을 3시간 30분동안 겪어야 했다.
'서울'로 몰리는 소아응급의료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조산아를 출산했던 D씨는 지난 4월 사는 곳에서 3시간 가까이 떨어진 출산병원으로 응급실을 다녀왔다. D씨가 사는 지역에는 3차병원이 있었지만 그곳에선 응급실 내원 첫날만 아이를 받아줬다. 아이는 생후 6개월께, 교정개월 수로 3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이 체온은 38.5도였는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고열에 속해 해열제를 먹이고 가까운 3차병원 내 응급의료센터를 찾았다. 그곳엔 신생아중환자실도 있었다. 병원은 아이가 내원한 첫날 입원 처방을 내리지 않고 퇴원시켰고, 아이는 다음날 상태가 악화돼 다시 내원했지만 응급실 입구에서 거절 당했다. 그런데 아이는 출산한 병원에서 두 달간 소아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상세불명의 바이러스 감염이 있었고, 조산아인만큼 신속한 치료가 필요했었다.
D씨는 "아이가 아팠을 때 아이의 모든 진료 기록지를 들고 내원해 '조산아로 태어났다'고 얘기했음에도 응급실은 결정을 부모에게 미뤘고 심지어 다음날은 받아주지도 않았다"며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출산율 걱정 말고, 있는 아이들부터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을 만드는 게 더 시급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난 4월 경기도에선 생후 7일차였던 신생아가 응급실로 가라는 의료진의 처방에 따라 조리원을 나선 지 3시간 30여분 만에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이송됐던 사례도 있었다. E씨는 처음부터 구급차를 타고 '뺑뺑이'를 돌진 않았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산모였지만 부부는 아기를 안고 자차로 가까운 3차병원부터 찾았다가 거절 당했다. 체온은 37.4도의 미열이었지만 기초체온이 낮았던 신생아라 응급실로 갈 것을 권유한 건 의료진이었다.
아기의 상태와 생후 7일된 신생아라는 사실을 모두 밝히고 접수했지만 20~30분을 대기한 뒤 "신생아는 발열 시 무조건 신상아집중치료시설에 가야 하는데, 우리 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시설은 공사 중이라 이용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 아기는 인근 대학병원(2차병원)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내원 당일은 휴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E씨 부부가 3차병원에서 다른 병원에 가라고 했다고 하자 병원 측은 119를 이용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구급대원들은 복지부 지정 24시간 소아응급의료센터를 포함한 인근 대학병원에 전화를 돌리며 신생아를 받아줄 병원을 찾아헤맸다. 종착역은 서울이었다. E씨가 구급차 안에서 수유를 하며 3시간을 넘게 달리는 사이 아기 체온은 38.4도까지 올랐다.
전화를 돌린 끝에 '확신은 못하지만 기다리면 진료는 가능하니 오라'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을 찾았다. 아기는 각종 검사를 진행한 결과 당시 유행 중인 RS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신생아집중치료실에 가야 했지만 자리가 없어 소아중환자실에서 겨우 치료를 받았다.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6월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
ⓒ 연합뉴스 |
경남 지역의 대도시로 꼽히는 부산과 울산엔 3차병원 내 소아응급실이 없다. 부산에서 21개월 아이를 키우는 F씨는 며칠 전 아이의 고열이 잡히지 않고 구토까지 해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외상 외에는 소아환자의 진료가 불가하다고 안내 받았다.
결국 타 도시의 3차병원 소아응급실로 가야 했는데, 아이는 구내염으로 인한 탈수 증상을 보여 먹는 수액과 항생제를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와 아동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봤다. 119에서 타 지역 소아응급의료센터를 안내 받기까지 부산에서 내과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 몇 곳을 더 내원했지만, 21개월 아이에 대한 수액 처방이 불가능해 타 도시의 중증환아 소아응급실까지 가서야 복용약을 처방받았다.
F씨는 "최근 소아과 진료를 받을 때 어려움이 많은데 병원에 계신 선생님들도 늘 피곤해 보인다"며 "아이가 위급상황에 신속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외래도 대기가 길고 소아병상도 부족하니 보건복지부가 어떤 형식으로든 신속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 소아의료체계를 정상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어린이 각자도생의 나라인가? 아픈 아이를 끌어안고 응급실에 들어가는 것은 양육자들이 재주껏 할 일이 돼버렸다. 대한민국에서 어린이 안전은 어느 정도 대우를 받고 있는가. 현재 상황으로 봐선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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