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개에 2달러 잊어라…정의선도 주목한 차량용 반도체 ‘쑥쑥’
차량용 반도체가 반도체 시장의 헤게모니를 흔들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늘고, 자율주행 기능이 발전하면서 자동차 한 대가 ‘거대한 반도체 기판’처럼 인식되면서다. 차량에 탑재되는 반도체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향상, 본격적으로 성장성 높은 고부가가치 시장이 활짝 열렸다.
9일 자동차 업계와 관련 분석기관 등에 따르면 2030년 차량용 반도체는 서버·모바일과 함께 3대 반도체 수요처로 올라설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매출 시장은 올해 760억2700만 달러(약 100조2000억원)에서 2028년 1298억3500만 달러(약 171조1200억원)로 커질 것이라 분석했다.
다품종 소량 생산, 성능보단 안전성이 핵심
그동안 자동차에 탑재되는 반도체 평균 단가는 2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그만큼 수익성도 낮았다. 반도체 업계는 여기에 더해 안전성 기준 때문에 시장 진입을 꺼려왔다. 승객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특성상 다른 반도체보다 높은 신뢰성을 갖춰야 하는 데다 결함 발생과 안전사고, 리콜 등의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반도체 업계에서는 ‘돈 안 되는 시장’으로 통하며 그간 주목받지 못했다. 2021년 글로벌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의 용도별 매출 점유율에서 차량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3%에 그쳤다. 스마트폰용은 51%였다.
‘움직이는 컴퓨터’ 되면서 시장 격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대격변은 전기차·자율주행 기술 발달과 함께 시작됐다. 차량 곳곳의 전자장치를 단순 제어하는 역할만 하던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은 테슬라의 등장과 함께 어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통합 운영체제(OS)를 통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컴퓨터’로 다시 태어났다. 자율주행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를 뒷받침해야 할 중앙처리장치(CPU), 이미지센서, 인포테인먼트용 칩셋 등 차량에 탑재되는 반도체 종류도 늘고 성능도 비약적으로 뛰어올랐다.
이에 TSMC와 인텔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에 차량용 반도체와 이미지센서 생산을 위한 파운드리 공장을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독일 드레스덴에도 100억 유로(약 14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이 공장은 차량용 반도체 공장으로, 28나노(㎚·10억 분의 1m) 파운드리 라인을 통해 유럽 내 자동차 및 차량용 반도체 고객사의 위탁생산 주문 수주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현지시간) 대만 3위 파운드리 기업인 PSMC도 일본에 이미지센서와 차량용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세계 1위 첨단운전자보조장치(ADAS) 기업 모빌아이를 인수한 인텔 또한 차량용 반도체 분야 수주를 늘리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7일(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방문한 인텔의 아일랜드 공장 역시 ADAS에 탑재되는 CPU 등을 생산하는 유럽 내 핵심 기지다.
TSMC와 인텔은 NXP·인피니언·르네사스 등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기업이 모여 있는 유럽과 일본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해 향후 확대되는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꺼내 들었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하는 최선단 공정은 미국과 대만 등 자국 핵심기지에 두고, 상대적으로 구형(레거시) 공정으로도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 공장을 유럽과 일본에 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진출 선언 당시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가 10년 뒤 두 배인 1150억 달러(약 138조원)로 늘어나고, 프로세서 비중은 현재의 4%에서 20%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CPU,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고성능 반도체들이 차량용으로 더 많이 쓰이면서 관련 시장의 수익성도 크게 뛴다는 의미다.
김광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예상보다 많은 업체들이 더는 스마트폰에서 큰 성장동력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자동차에 자원을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며 “2025년쯤 전기차 교체 시기가 돌아오면 내년부터 관련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부족…설계 역량 키워야”
마찬가지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삼성전자는 최근 차세대 전력반도체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탄화규소(SiC)나 질화갈륨(GaN) 등 다양한 신소재를 적용한 전력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웨이퍼(원판)보다 내구성과 전력 효율이 우수해 자동차용으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고성능 저전력 GaN 전력 반도체 양산을 위한 파운드리 서비스를 오는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각각 세계 상위권에 올라있는 반도체, 자동차 산업 수준과는 달리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는 설계 역량과 제품 포트폴리오가 사실 매우 취약하다”며 “고부가가치 차량용 반도체 품목을 중심으로 미리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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