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정책에 네덜란드 연정 붕괴…유럽 부국에 부는 극우 바람
네덜란드 최장수 총리 마르크 뤼터(56)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가 난민 정책을 둘러싼 의견 충돌로 붕괴했다. 외신은 난민 이슈가 부유한 유럽 국가를 어떻게 붕괴하고 극우 포퓰리즘의 세를 불려주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짚었다.
네덜란드, 이민 문제로 연정 붕괴
8일(현지시간)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뤼터 총리는 이날 헤이그에서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을 만나 연정 붕괴에 관해 설명했다. 알렉산더르 국왕은 그리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연정 붕괴 소식을 듣고 귀국한 상태였다.
앞서 뤼터 총리는 전날 "연립정부 동반자 사이에서 이민 정책에 관한 의견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전체 내각의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국왕에게 전달했다. 지난 1월 출범한 연정에는 뤼터 총리가 이끄는 우파 성향의 자유민주당(VVD), 중도 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CDA), 진보 성향인 D66, 중도 성향인 기독교연합당(CU) 등 4개 정당이 참가했다.
뤼터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네덜란드는 오는 11월 중순 조기 총선을 치르게 된다. 뤼터 총리는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과도정부를 이끌게 된다.
네덜란드 연정 붕괴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망명 신청자가 급증하면서 촉발됐다. 지난해 네덜란드 망명 신청자는 4만6000여 명, 올해는 올해는 7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등 폭증세가 이어지자 난민 시설과 주택 부족 등의 우려가 커졌다.
뤼터 총리는 이 같은 상황에서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 다소 강경한 이민 정책을 추진하려 했지만 연정 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특히 뤼터 총리가 전쟁 가족들의 입국을 매달 최대 200명으로 제한하고, 어린 자녀를 데려오려고 할 경우 최소 2년을 기다리게 하자고 제안하자, 진보와 중도 성향인 D66과 CU는 "부모와 자식을 갈라놓는 조처"라고 강력히 반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네덜란드 연립정부의 붕괴는 유럽 정치에서 이민 정책의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전했다.
조기 총선을 앞둔 네덜란드에선 현재 반(反)이민 정책을 강조하는 보수 성향의 우파 정당이 유리한 상황이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의 이달 여론조사에서 신생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농민-시민운동당(BBB)이 27%로 1위를 차지했다. 창당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BBB는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19% 득표율로 승리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뤼터 총리의 VVD는 21%로 2위, 반이민 정책의 선봉장인 극우 성향 자유당(PVV)이 14%로 3위에 올랐다.
유럽에 반이민 극우 정당 득세
이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반이민 기치를 내건 극우 정당의 부상을 경험했다. 이탈리아와 핀란드에는 극우 정권이 들어섰고, 스웨덴에서는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스웨덴민주당이 원내 2당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극우 성향 자유당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극우 야당 복스(Vox)가 제1야당인 중도우파 국민당(PP)과 연합해 승리하면서 1975년 사망한 독재자 프랑코 이후 처음으로 스페인에 우파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생겼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프랑스에선 지난달 알제리 이민자 출신인 17세 소년이 경찰 총격에 사망한 사건으로 대규모 폭력 시위가 일어났는데, 프랑스인 40%가 이민자를 비난하는 등 이민법 강화를 찬성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민에 대해 엄격한 규정을 선호하는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이 차기 대선에서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독일도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이 최근 소도시 2곳에서 지자체장에 당선되면서 내년 주요 도시에서 치러질 주 선거에선 모두 승리를 거둘 것이란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유권자들이 AfD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로 반이민 정책을 꼽았다.
한·미·일도 반이민 바람 거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뿐 아니라 북미·아시아의 부유한 국가에서도 반이민 바람이 거세다고 진단했다. 캐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 4명 중 3명꼴로 이민자 과다 유입이 주택·의료 등 복지서비스 수요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여론조사에도 이민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지난 2월 28%를 기록하면서 10년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한국·일본 등은 정치권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민 문호를 개방하자는 제안이 나오지만, 국민 반대가 높아 이 같은 정책을 고수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한편 WSJ 자체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부유한 국가의 노동력 부족이 심화하고, 개발도상국의 경제 문제가 악화하면서 전 세계에서 부유한 국가로 이주한 이들은 전년 대비 약 500만 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이전보다 80% 정도 증가한 수치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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