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장애로 세상 뜬 ‘그림자 아이' 27명…수사의뢰 1000건 넘길듯

심석용, 손성배, 이영근 2023. 7. 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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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하루 된 딸을 암매장한 혐의를 받는 40대 여성이 지난 6일 오후 경기 김포시 대곶면 한 텃밭 입구에서 현장 검증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생 미신고 아동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한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전수조사가 지난 7일 일단락됐다. 지난달 22일 감사원 발표로 촉발된 이번 전수조사는 경찰 수사로 이어졌는데, 전국 지자체가 수사 의뢰한 867건 가운데 아동 163명의 소재는 확인했지만 677명은 여전히 소재 불명이다. 또 아동이 사망한 27건도 있다. 이 중 14건은 출산과 동시 또는 직후에 아기가 사망하는 등 이유로 수사가 종결됐지만, 13건은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13건 가운데 8건은 아기를 살해한 뒤 유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 냉장고 영아살인(2명), 거제 암매장 사건, 김포 텃밭 매장 사건, 광주 쓰레기봉투 유기 사건, 대전 하천변 유기 사건, 부산 기장 암매장 사건, 용인 야산 암매장 사건 등이다.


아기 677명 소재 불명…27명 사망


정근영 디자이너
경제적 요인과 출산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 등이 범행 동기인 것으로 파악됐다. 딸을 살해한 뒤 모친 소유 김포 텃밭에 매장한 정모(40대)씨도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양육하기 어려웠다”고 진술했다. 지난 7일 구속영장실질심사 전엔 “원하지 않았는데 딸을 임신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제적 이유, 임신·출산이 알려지는 게 두려웠다’고 조사된 경우가 5건으로 가장 많았다. 과천과 용인 암매장 사건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게 범행 이유로 파악됐다. 과천 사건은 아기가 사망한 뒤 시신을 유기한 건이다.

용인 사건은 친부 이모(40대)씨와 아기의 외할머니 손모(60대)씨가 6년 전 아기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살해한 뒤 유기한 사건이다. 임신 상태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 아기가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돼 범행을 계획했다고 한다. 이씨는 아내에게 “아기가 아픈 상태로 태어나 바로 사망했다”고 알렸는데, 경찰이 지난 6일 이씨와 손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하면서 거짓인 것으로 파악됐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윤신 조선대 의대(법의학) 교수는 “영아유기·치사 판례 20건을 분석한 결과, 부모에게 출산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아동을 유기한 사례가 7건으로 가장 많았다”며 “원치 않게 임신해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 대한 조치가 미흡한 게 범행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경남 사천경찰서, 진주경찰서(2건), 전북 전주덕진경찰서가 수사 중인 4건은 사실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영아매매, 대리모 출산 범죄도 드러나


이번 수사로 영아매매, 대리모 출산 등 아동학대 범죄가 드러나기도 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는 친모 이모(20)씨와 친부 김모(20)씨를 영아유기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이들은 미성년자였던 2021년 12월 25일 낳은 딸을, 서울의 한 카페에서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성인 남녀 3명에게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강제수사에 나섰지만, 아기를 데려간 사람들을 특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은 또 3500만원을 받고 대리모 역할을 하며 2016년 10월 29일 남아를 출산한 강모(38)씨를 아동매매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생명윤리법상 단순 대리모 출산은 공소시효가 5년이지만, 매매가 이뤄진 경우 아동복지법상 아동매매 혐의가 적용돼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한편 수사기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 1주일간 매일 200건씩 수사 의뢰가 들어온 점을 볼 때 앞으로 의뢰 건수가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사건마다 서로 다른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점도 걱정거리다. 경남경찰청은 7년 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아이가 출생신고되지 않은 채 숨진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숨진 아이는 2016년 6월 충남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출산기록만 남아 있는데, 사체유기의 공소시효(7년)가 끝났을 가능성이 있다.

부산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와 기동대, 과학수사대 등 50여 명이 지난 5일 오전 8년 전 영아 시신이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산 기장군의 한 야산에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유기시점이 오래된 경우도 문제다. 광주광역시에서 영아학대치사와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수사를 받는 30대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2018년 4월 생후 6일 된 딸을 집에 홀로 둔 채 외출했는데 숨져 쓰레기봉투에 담아 수거함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광주경찰청 관계자는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미 5년이나 지난 사건이라 시신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경찰청도 40대 여성이 생후 8일 된 아이를 매장했다고 지목한 야산을 수색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 영아유기 사건을 수사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다음 주 최종 집계가 끝나면 수사 의뢰가 1000건을 넘을 것 같다”며 “최소 8월 말까지는 수사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지난달 22일 출생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생존 여부를 알 수 없는 2015~2022년생 아이들이 2236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8일 질병관리청 예방접종 통합관리시스템에 입력된 아동 가운데 ‘임시 신생아 번호’로 남아 있는 2015~2022년생 아동 2123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되면 종결하고, 아이를 찾을 수 없거나 학대를 당하고 있으면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방식이다.

심석용· 손성배· 이영근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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