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세계관만 따로 사기도…'마당집' 임지연도 꽂힌 이것

나원정 2023. 7. 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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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소설 눈돌린 영화·드라마들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 사진 지니TV

채널 ENA에서 방영 중인 지니TV 오리지널 8부작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이 11일 종영을 앞두고 자체 최고 시청률(유료플랫폼 수도권 가구 3.1%)을 경신했다. 넷플릭스에서도 비영어권 TV 부문 2주 연속 톱10에 올랐다.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동명의 원작 소설 판매도 역주행했다. 2018년 출간된 김진영 작가의 원작 소설 『마당이 있는 집』은 최근 교보문고의 7월 1주차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한국소설 부문 6위까지 진입했다.

‘마당집’은 제작 단계부터 원작의 힘이 구심점이 된 작품. 연출을 맡은 정지현 감독은 “대사 아닌 지문으로 선명하게 표현한 원작소설의 심리묘사가 매력적이었다”고 밝힌 바다. 원작자인 김진영 작가가 한예종 영화과 출신에 영화감독으로 데뷔(‘미혹’ 연출)한 점도 영상화에 적합한 소설이 나온 요인으로 꼽힌다.


K소설, 새로운 한류 광맥 될까


문학작품의 영화‧드라마화는 이뿐이 아니다. ENA 수목 드라마 ‘행복배틀’은 치열하게 행복을 전시하던 엄마들 사이에 의문사가 발생한다는 내용의 동명 소설이 토대. 다음 달 KBS2가 방영할 월화 드라마 ‘순정복서’는 사라진 천재 권투선수의 승부조작 탈출기를 그린 소설이 바탕이다.
소설 '마당이 있는 집'. 사진 엘릭시르
극장가에서는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을 옮긴 하이틴 퀴어 로맨스 애니메이션 ‘그 여름’(6월 7일 개봉)에 이어 지난 5일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감독 김희정)가 개봉했다. 김애란의 단편은 중학생 제자를 구하려다 남편이 죽은 주인공이 외국에 사는 사촌 언니의 빈집을 잠시 봐주며 상실감을 이겨내는 내용. 각본을 쓴 김희정 감독이 원작에는 주인공이 받는 편지글에만 나오는, 사망한 학생의 반신마비 누나와 그 친구 이야기를 더해 두 세대 간 위로의 여정으로 확대했다.

소설·에세이…OTT·채널 경쟁 속 판권 문의 급증


출판업계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순문학‧에세이의 2차 판권 문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웹툰‧웹소설 화제작이 웬만큼 판권이 팔린 데다 자기복제적인 경향을 띠면서, 출판 문학으로 눈을 돌린 영화‧드라마 제작사가 늘어나면서다.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사진 디스테이션
과거에도 소설의 영상화는 있었다. 『태백산맥』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도가니』 등 묵직한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 주목받았다. 요즘에는 젊은 세대의 감성을 사로잡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재조명된다. 『7년의 밤』의 정유정 등 과거 장르 소설이 소수 유명 작가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추미스(추리‧미스터리‧스릴러)를 중심으로 장르문학 공모전이 다채로워지고, 출판과 영상 기획을 겸하는 안전가옥‧고즈넉이엔티 등 장르문학 브랜드의 등장으로 신인 작가가 대거 유입되는 현상도 보인다. OTT의 등장으로 신선한 IP를 찾는 제작사들과, 책만 팔아선 생존이 어려워진 출판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출판사·대형서점도 사내에 IP 전담인력을 두는 추세다.
지난 5월 6일 오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폐막작에 선정된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김희정 감독과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문학동네 이현자 편집국장은 “작가들도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계획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 정세랑 작가는 시나리오를 직접 쓰며 장르(출판‧영상) 구분 없이 활동한다. 또 "한국 소설도 이제는 SF‧판타지 등 장르가 다양해진 데다 해외 원작보다 판권 절차가 덜 복잡하고 한국인의 정서에 더 맞는 부분이 있어 선호한다”고 했다. 한석규 주연의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에세이가 원작이다. 최근 영상화 판권이 팔린 이슬아 작가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작가의 실제 생활에 기반한 내용이다.

소설 속 세계관·캐릭터만 판권 구매


강창래 작가의 에세이집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사진 문학동네
캐릭터·세계관 등 매력적인 요소만 따로 떼어내 구입하는 사례도 생겨난다. IP 판권 전문가 정길정씨는 “단편소설 속 캐릭터 하나만 구매해 OTT 시리즈로 개발 중인 사례도 있고, 종이책은 물론 영상화 판권 잘 팔린 경우 기존 스타일을 바꿔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기성 작가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문화평론가 강유정(강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독특한 여성 서사의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2021)이나 동성애 소재 ‘그 여름’처럼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소재를 문학 작품이 먼저 다룬 것도 제작사‧창작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소설서 먼저 꽃핀 SF 인기작 판권경쟁


특히 SF 장르는 5, 6년 전부터 인기 작가 작품들의 판권 구매 경쟁이 치열하다. 『천개의 파랑』의 천선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 작가는 발표만 하면 단편까지 판권이 팔려나간다고 알려졌다. 김초엽의 단편 ‘스펙트럼’은 ‘벌새’로 주목받은 김보라 작가가 SF 대작영화로 준비 중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D.P’ 등을 만든 SLL 산하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제작한다.
한쪽에선 IP 확보 경쟁이 과열되며 신인 작가들이 부당 계약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판권 수익이 적게 돌아오는 불리한 계약서를 출판사가 내밀어도 신진 작가의 경우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은 유보라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다. 사진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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