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섭의 금융라이트]광복에도 들이닥친 ‘뱅크런’ 괴물
'위기'가 아니라 '불안'에서 시작된 뱅크런
뱅크런 막는 3박자는 제도·감독·건전경
새마을금고 뱅크런(예금대량인출)을 막기 위해 정부가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새마을금고의 연체율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며 충분히 안전하니 믿어도 된다고 발표했죠. 정부가 뱅크런을 예의주시하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뱅크런은 한 번 시작되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고, 경제에 끼치는 부정적 파급효과도 매우 큽니다. 과거에도 종종 뱅크런이 있었고 그때마다 큰 사회적 혼란이 발생했죠. 뱅크런은 언제부터 발생하기 시작했을까요? 또 어떻게 예방하고 막아낼 수 있을까요?
1945년 한국에도 불어닥친 '뱅크런' 공포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뱅크런은 17세기 스웨덴에서였습니다. 1656년 네덜란드 상인 출신의 요한 팜스트루흐는 국왕에게 ‘스톡홀름은행’ 설립허가를 받아냅니다.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왕과 귀족들을 설득해낼 수 있었다고 하죠. 그렇게 만든 스톡홀름은행은 환전부서를 만들고 구리 동전을 가져오면 보관증을 내줬다고 합니다. 일종의 예금업무를 했던 거죠.
그런데 1660년 국왕이 죽고 등극한 새로운 왕이 동전의 구리함량을 줄여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값어치가 큰 옛 동전을 찾기 위해 보관증을 들고 스톡홀름은행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팜스트루흐는 뱅크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사기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투옥됐습니다. 스웨덴은 스톡홀름은행을 국유화하고 ‘스웨덴 왕립 재정 은행’을 만드는데, 이곳이 바로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입니다.
가장 유명한 뱅크런으로는 1907년 니커보커 신탁회사 사태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니커보커는 뉴욕에서 세 번째로 큰 신탁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소유주가 구리 투기에 실패해버리는 바람에 다른 은행들이 니커보커의 수표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죠. 이러한 소문이 니커보커 일반 국민들 사이에 퍼지게 됐고, 예금자 1만8000명이 동시에 몰리는 뱅크런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은 ‘1907년 공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 날 경성일대에서 뱅크런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인의 항복이 공식화되자 조선은행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을 떠나며 예금을 대거 빼내 갈 거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죠. 조선은행권은 당시 일본화폐와 1대1 교환이 가능했는데, 조선총독부는 지급유예를 선언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내 대응했습니다. 결국 화폐발행량이 급등해 물가가 단기간에 폭등해버렸죠.
뱅크런은 '위기'가 아니라 '불안'에서 시작된다
현대에서도 뱅크런은 경제위기와 함께 발생하고 있습니다. 글로벌금융 위기로 영국 모기지 은행이었던 노던록에 뱅크런이 발생했고요, 2015년에는 그리스가 구제금융 협상에 실패하면서 예금자들이 하루 만에 15억 유로를 인출해가는 일이 있었죠, 한국에서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 뱅크런이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유동성 위기대책 발표 이후 예금자들이 대량으로 돈을 인출해가면서 SVB가 파산하는 사건이 있었고요.
뱅크런이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요? 은행에 돈이 부족해서일까요? 사실 전 세계 은행 중에서 모든 예금인출에 대응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모든 고객이 돈을 전부 빼내 버린다면 이를 버텨낼 금융사가 없다는 뜻이죠. 그럼에도 우리가 은행에 돈을 맡기는 건 ‘언제든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신용 덕분입니다. 즉 뱅크런은 ‘은행이 망하기 직전’이라서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은행이 망하는 거 아냐? 내 돈 못 돌려받으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이 퍼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죠.
그럼 뱅크런에 대응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강제로 은행의 문을 닫아버리는 ‘뱅크 할리데이’가 있습니다. 수일간 은행의 업무를 정지시키고 강제로 예금자의 인출을 막아버리는 거죠. 뱅크 할리데이가 있어야 한다는 학자들은 어떠한 제도도 금융위기와 뱅크런을 완전히 뿌리뽑을 수 없다고 주장하죠. 그리스 정부도 뱅크런을 막기 위해 은행의 영업을 중단시키고 현금인출기(ATM) 출금을 하루 60유로로 제한해버리는 극약처방을 내린 적 있습니다. 한국은 1950년 6월 6·25 전쟁에 따라 뱅크런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특별조치령을 내리고 예금인출을 막았죠.
가장 좋은 방법은 뱅크런의 조짐이 보일 때 불안감을 조기에 차단하는 겁니다. 실제 뱅크런을 예방하려면 ‘창구에 현금다발을 가득 쌓아두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지급여력이 충분하다는 걸 고객에게 보여줌으로써 고객의 불안감을 차단하라는 거죠.
지금 정부 관계자들이 잇따라 새마을금고에 돈을 맡기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은 지난 6일 종로구 교남동새마을금고 경희궁지점을 찾아 정기예금통장을 개설했고, 바로 다음날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새마을금고 본점에 방문해 6000만원을 예금했습니다. 정부 고위관리들이 직접 돈을 넣으면서 ‘새마을금고는 안전하다’는 신호를 주는 거죠.
뱅크런 막는 3박자…제도·감독·건전경영
무엇보다 제도적으로 뱅크런 불안감을 차단해줄 제도가 필요합니다.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이 예금지급에 어려움을 겪을 때 긴급자금을 빌려줍니다. 국가는 예금보험제도를 만들어 은행이 파산해도 어느 정도의 금액까지는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요. 한국에서는 1인당 5000만원까지 보호를 받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디지털화로 인해 뱅크런을 막기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은행 창구에서만 돈을 뽑았던 과거에는 뱅크런에 대처할 시간이 있었지만, 이제 스마트폰으로 몇 분만에 돈을 옮겨버리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정보의 확산속도도 더욱 빨라졌고요. 미국에서는 SVB 뱅크런이 불안감을 조장하는 정보들이 트위터로 확산되며 시작됐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에서 뱅크런이 일어나면 미국보다 예금인출 속도가 100배는 빠를 거라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현대사회에서 뱅크런을 막기 위해서는 잘 갖춰진 금융제도와 금융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엄격한 감시, 민간 금융사들의 건전경영이 조화롭게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편집자주 -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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