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퍼즐, 어딘가에 분명 맞추어질 조각[개척자 비긴즈]
나는 개척자 Y다. 지난해 겨울 만났던 기자님이 지어주신 별명이다. 참 마음에 든다. 개척의 여정에 물음표를 던지는 와이(Why), 출발선(A)에서 목적지(Z)로 향하고 있는 와이(Y), 그리고 영어 이름 이니셜 중에도 Y가 들어가서 개척자 Y가 됐다.
교회 개척 현장에서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는 숱한 목회자 중 1인으로 살다가 개척자 Y란 이름이 덧대어진 채 살아온 6개월여 시간을 되돌아보니 하나의 단어로 정리가 됐다. 바로 감사다.
매주 일기장 한 페이지씩 펼쳐 놓듯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정리되는 생각들. 그 속에 자리 잡은 얼굴들. 그 상황을 계획하셨던 하나님의 숨결이 매 순간 벅찼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 담아 두는 시간이 없었다면 천국에 가기 전까지 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개척을 준비하고 있는 목사님들께 ‘개척 일기’를 써보시라 권하고 싶다. 매일의 일상이 같아 보이지만 기록하면 의미를 발견하게 될 때가 반드시 오게 된다. 퍼즐의 조각은 작다. 그러나 도통 어디에 들어가는 게 맞는지 모르는, 때로는 퍼즐 자체가 불량품이 아닐까 싶기까지 한 그 조각으로 그림은 완성된다.
개척자 Y를 준비하면서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것을 경험했다. 퍼즐은 다양했다. 가정 감사 한숨 노래 만남 눈물 루틴 커피 환대 등의 조각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이 이 현장에 무엇을 보여 주시고 싶은지를 기대했다.
지금도 생각지 못한 퍼즐 조각들이 추가로 만들어지며 그림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작은 그림의 윤곽만으로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났고, 작은 퍼즐 하나가 자리를 찾으면서 그림이 선명해질 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손길 앞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는 경험도 했다. 하나님의 크고 세심한 손길이 초보 목사에게 간증이 되고 만나는 이들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셨다.
개척하기 전에는 퍼즐은 내가 맞추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척자의 하루하루를 이끌어 가셨고 그림을 준비하며 퍼즐 조각도 준비해주셨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선배 목사님들의 말씀이 맞았다. ‘개척을 하면 진짜 목사가 된다.’
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오전 10시30분. 기자님과 연락을 주고받은 뒤 처음 만났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개척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이들과 많이 만났던 동네 카페. 내겐 일상과도 같은 그 공간에서였다. 마음의 온기를 나누며 과거 이야기, 현재의 삶, 가정, 관심사, 사역 등에 대해 나눴다.
말씀드리는 것들마다 100%, 아니 200% 이상의 반응을 해주셨다. ‘내가 뭐라고.’ 취재라는 말보다는 만남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감사라는 말이 참 많이 등장했다. 사람을 좋아하셨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있음을 봤다. 이 또한 개척을 준비하는 초보 목사에게는 배울 점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안으로 기울 수 있는 시선이 밖으로 균형을 잡아갔고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함께라는 가치가 자리 잡을 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다. 그래서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보다 흩어지기 위해 모이는 교회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온정의 손길과 응원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개척자 Y만 개척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시는 개척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자녀들이 있는데, 분에 넘치는 응원과 감사, 온정의 손길을 받아도 괜찮을까. 마음이 무겁고 어려웠다. 하나님께서 연결해주신 좋은 기회에 좋은 분들을 만나 일화들을 전했을 뿐인데 삽화와 글을 보고 마음을 보내주셨다.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었던 그간 생활을 기억하며 에피소드를 소개했을 때였다. 제목이 ‘번역기가 고장 나면 마음이 닫힌(다친)다’였다. 이 글을 보시고 한 가정이 우리 가정을 경기도 용인에 있는 놀이동산으로 보내주셨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오래전에 가봤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는 그곳에 딸의 손을 잡고 있다니 꿈 같았다.
딸 나이 정도 되었을 때 부모님과 함께 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한 가정에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현재와 과거를 한번에 선물로 주셨다. 이대로 받기만 한다면 평생 받는 것에만 감사하고 익숙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미래를 선물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인스타그램에서 한 목회자 가정을 보게 됐다. 자전거를 사달라고 하는 딸과 돈을 모으고 있다는 목사님의 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곳에 미래를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족과 상의해서 우리의 마음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고 연락이 왔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말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갈 때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데, 흘러가는 모든 곳에 꽃이 피어나고 생명이 살아난다. 놀라웠다.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이와 사랑을 경험했다.
내가 속해 있는 목회자 단톡방에 개척자 Y의 이야기가 담긴 링크를 몇 차례 보냈다(물론 내가 개척자 Y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분들이다). 국민일보 ‘더미션’을 통해 개척자 Y와 같은 지면에 실리는 개척 목회자들을 위한 지침서 ‘플랜팅 시드’도 함께 띄웠다.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플랜팅 시드는 갈 길을 제시해주었고 개척자 Y는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개척을 준비하시는 목사님들을 생각하며 무릎을 꿇었고 기도했고 응원했다.
계획이 다 있으신 하나님께서 왜(why) 이 시간을 걸으며 개척 이야기를 전하게 하셨는지 이제야 조금은 실감이 난다. 그래서 더욱 ‘Y’라는 철자 하나를 성찰하게 된다. 앞으로도 개척의 여정은 목적지인 Z를 향해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과 태도는 Y로 고정시킬 것이다. 자리를 잡고 안정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때도 에피소드를 읽고 응원해주셨던 독자들과 함께 내게 주어진 별명처럼 개척자 Y로 평생 목회를 할 것이다. 오늘은 하늘을 향해 독백하고 싶다. “하나님, 왜(Why) 이런 감사의 여정을 걸어오게 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계속 걸어가겠습니다.” (※그동안 ‘개척자 비긴즈’를 애독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전체 내용은 더미션 홈페이지(themission.co.kr)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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