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권경애' 이러니 계속 나온다...'불량 변호사'에 눈감는 변협

이병준 2023. 7. 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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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한변호사협회 건물. 뉴스1

동생이 사기 혐의로 입건됐던 A씨는 2017년 9월 모 법무법인 대표였던 김모(77) 변호사에게 2200만원주고 사건을 의뢰했다. A씨는 동생이 구속되지 않으면 1000만원을, 징역형 집행유예 판결을 받으면 2000만원을 더 내겠다는 약정도 했다. 하지만 동생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신문) 당일, 김 변호사는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전날부터 A씨가 수 차례 “동생이 꼭 변호사님 접견을 원한다” “영장심사가 오늘이라고 한다”고 알렸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A씨의 동생은 구속됐다.

A씨는 동생이 구속된 후에도 김 변호사에게 전화해 사건 진행 상황을 물었지만, 김 변호사는 “추석 연휴에 해외여행을 가니 열흘 뒤에 연락을 주겠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A씨는 김 변호사를 해임하고, 경비 200만원을 제외한 2000만원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김 변호사는 거절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내리자 김 변호사는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했고, 행정소송을 거쳐 지난 3월 정직 3개월이 최종 확정됐다.

학폭 피해자 유족의 손해배상청구 사건을 대리하면서 재판에 무단 불출석해 패소한 권경애(58) 변호사에 대해 지난달 대한변협이 정직 1년의 징계를 결정하자 유족은 “우리 주원이를 두 번 죽이고 나를 죽인 것”이라며 주저앉았다. 그러나 무책임·비양심 변호사에 대한 변협의 솜방망이 징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한 중견 변호사는 “‘먹튀 패소’로 권 변호사나 김 변호사 정도의 징계를 받은 건 중징계라 할 만한 게 현실”이라며 “일반인들의 법감정과는 괴리가 크다”고 말했다.


절반 이상이 과태료…251만원 내면 넘어간다


지난달 19일 학교폭력 소송에 무단 불출석해 패소한 권경애 변호사의 징계위원회가 열린 변협에서 이기철 씨가 권 변호사의 영구 제명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변협 월간지 ‘인권과 정의’ 2018년 1월~2023년 6월호에 실린 법무부와 변협 변호사징계위원회 결정사항 공고를 전수 분석한 결과, 총 징계 580건 중 절반 이상인 333건(57.4%)이 과태료 처분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다음으로 많은 건 견책(28.8%, 167건)이었다. 중징계로 분류되는 정직은 76건(13.1%)에 불과했고, 제명(영구제명 포함)은 단 네 건에 그쳤다.

변호사법은 변호사의 정직 기간과 과태료 액수 상한을 각각 3년과 3000만원으로 두고 있지만, 실제 같은 기간 동안 처분된 최장 정직 기간은 12개월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태료 최고 금액도 1000만원에 그쳤다. 평균 정직 기간은 2.8개월로, 정직 처분을 받은 변호사 대부분(73.6%)은 단 한두 달만에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평균 과태료는 251.4만원, 500만원 이상 과태료가 부과된 건 43건(7.4%)뿐이었다.

2018~2019년 필로폰을 불법 구매해 7차례에 걸쳐 투약해 형사처벌을 받은 모 변호사는 단 1개월의 정직 처분을, 2021년 3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만취 상태(혈중알코올농도 0.184%)로 차를 운전하던 한 변호사는 과태료 100만원의 경징계를 받았다. 가장 빈번했던 징계 사유는 ‘품위유지의무 위반’(165건, 전체의 28.4%)이었고, ‘변호사업무광고 규정 위반’(116건), ‘성실의무 위반’(74건) 등이 뒤를 이었다.

변호사가 범죄행위에 협조한 사례도 14건에 달했지만, 정직 5개월 처분을 받은 한 건을 제외하곤 모두 경징계(견책~과태료)를 받았다. 공직 퇴임(판·검사 등 출신) 변호사가 수임제한 기간이나 수임 자료 제출 의무를 위반한 사례(62건) 중엔 중징계가 한 건도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특히 고위공직자 출신 변호사가 수임 신고를 누락하거나, 몰래 변론을 하는 등 전관 비리와 관련해선 징계가 매우 가볍다”며 “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별도로 없는 만큼, 변협에서 더 엄격하게 심사해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경애 판박이’는 정직 6개월…기준도 깜깜이


변협. 뉴스1
변호사시장이 과포화(6일 기준 개업 변호사 2만8119명)되면서 징계를 받는 변호사 수는 늘고 있다. 2010년만 해도 단 29명만이 변협 변호사징계위에 회부됐지만, 지난해엔 징계 처분이 결정된 건만 68건이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경쟁이 과도해지면서 징계 건수가 급증했다” “과거보다 변호사 비위에 대해 변협이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전 변협 간부)는 게 변협의 시각이지만, 솜방망이 징계와 징계의결의 폐쇄성이 ‘불량 변호사’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변호사법이나 변협 변호사 징계규칙 등에도 구체적 징계 기준이 나와 있지 않아, 유사한 사안이더라도 징계위의 판단은 그때그때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B(41) 변호사 역시 수임한 사건에 상습적으로 불출석해 패소하게 한 혐의로 징계위에 넘겨졌지만, 권 변호사보다 짧은 정직 6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광고 플랫폼인 로톡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최대 1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 것에 비하면 의뢰인들에게 직접 피해를 준 변호사에 대한 징계가 지나치게 가볍다는 게 변호사 집단 안팎의 시선이다.

한 서초동의 변호사는 “징계 기준은 변협 징계위에서 자체적으로 정한다. 똑같은 사안인데도 (징계위 판단에 따라) 징계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로톡에 가입했다가 변협에 징계 처분을 받은 한 변호사는 “징계 전에 사전 통지와 의견 청취 기일이 있었지만 이미 징계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절차는 형식적이었다”고 떠올리기도 했다. 변협 관계자는 “협회 내에는 오랜 기간 축적된 선례들이 있고, 이를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으로 양정을 한다”며 “변호사에 대한 징계는 판사·검사·교수 등으로 구성된 독립된 징계위원회가 엄정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 등 해외보다 국내의 변호사 징계율은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라며 “징계 양형 기준이 없고, 징계 절차가 주로 변호사들에 의해 진행되다 보니 외부적 감시나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시민사회가 이를 감시할 수 있도록, 그리고 피해자가 징계 결과에 대해 이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회엔 변협에 변호사 징계기준을 마련하게 하고, 정직 기간 상한을 7년으로 높이는 것 등을 골자로 한 변호사법 개정안(정성호 의원안)이 발의돼 있지만 이 법안은 3년째 ‘상임위 계류중’이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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