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식 "대공수사권 이관은 넌센스…'갈라치기'에 국가조직 무너져" [4류 정치 청산 - 연속 인터뷰]
69년생 북한·통일·인권 분야 전문가
"민주당 주도 21대 국회, 선거공학적
유리한 국면 만들려 국가조직 혼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1995년 '베이징 발언'으로부터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과연 그 사이에 우리 정치는 4류에서 조금이라도 랭크가 올랐을까. '헌정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1대 국회의 모습을 보며, 일말의 기대마저 내려놓는다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과연 우리 정치, 우리 국회, 우리 정당은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야 '4류 정치'를 청산하고 선진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데일리안은 '4류 정치 청산'을 주제로 하는 연속 인터뷰를 통해 그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여섯 번째 순서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와 법무부 통일법무과장,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 등을 지내 북한·통일·인권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는 1969년생 최기식 국민의힘 경기 의왕·과천 당협위원장을 만났다.
2006년 '일심회 사건' 주임검사 맡아
민변 변호인단 맞서 간첩단 일망타진
"'아무 얘기 말라'는 말만 하는 변호사
보다 총책의 신뢰 더 얻었던 검사"
"최 검사, 이 사건은 자백 못 받으면 수사 끝이야."
노무현정권 때였던 2006년, 갓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로 옮겨온 최기식 국민의힘 경기 의왕과천 당협위원장에게 국가정보원에서 보따리에 싸인 채 넘어온 사건이 배당됐다. 386 운동권 세력이 주축을 이룬 간첩단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당시 원내 9석 민주노동당을 친북정당화 하려 한다는 혐의였다.
'공안부에 가면 바보'라는 소리 듣던 노무현정권 시절의 분위기에서 자백을 받지 못하면 수사는 동력을 잃을 판이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는 20명의 공동변호인단을 투입했다. 최 위원장은 "요일마다 정해진 변호사가 검사실을 돌며 '저 방에서도 얘기(진술) 안하고 있다. 당신도 얘기하지 않으면 된다'고 쫙 전파하고 가더라"고 회상했다.
최기식 위원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관계를 형성한 다음에 설득을 해서 자백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열흘 동안 가난하게 자랐던 이야기들, 눈물 흘렸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니 그분(총책)도 초등학생 때 가난해서 운동장 수돗물 마시고 담임이 도시락을 두 개 싸와 하나를 건네주던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간첩단 총책의 모친이 면회를 오면 최 위원장이 직접 꼬박꼬박 커피를 타드리고,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면 항상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서울중앙지검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피의자와 피의자의 모친, 그리고 피의자가 구속되자 미국으로 떠나버린 피의자의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난 어느날 밤, 최 위원장을 마주한 총책이 "담배 한 대만 피고 나오겠다"고 했다. 10분 뒤 돌아온 총책은 "시작하자"며 입을 열었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 총책의 973쪽에 달하는 자백조서는 그렇게 마련될 수 있었다.
최기식 위원장은 "'저 방에서도 아무 얘기 안하고 있으니 당신도 얘기하지 말라'는 말만 해놓고 돌아가는 변호사보다 자기 어머니를 걱정해주고 옛날에 아팠던 얘기도 스스럼없이 하는 검사를 더 신뢰하게 됐던 것"이라며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자백을 받은 (간첩단) 사건이 거의 없다. 그 옛날에 있었던 그런 수사의 방식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수사를 했는데 운 좋게 내가 피의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겸양했다.
2006년 일심회 사건에 이어 2008년 실천연대(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건 주임검사를 연달아 맡은 최 위원장은 당시 수사 경험을 계기로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을 균형 있게 바로잡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최기식 위원장은 "(일심회 사건 때) 북한에서 내려온 지령문 50개, 남한에서 사업보고했던 것들, 그리고 북한에서 지령이 내려왔을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 봤다"며 "민노당에 관한 오더가 내려오면 포섭된 사람들이 여기서 오더대로 뭔가를 만들어서 민노당 간부나 규약·정책에 반영하려 올리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천연대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빌미로 만들어진 단체가 8년 동안 국고보조금을 받아가면서 우리나라를 해롭게 하는 이적단체(利敵團體) 노릇을 했던 사건"이라며 "두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것, 장난이 아니구나'라고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해서 통일 쪽으로만, 굉장히 나이브한 생각을 갖고 있던 내가 균형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며 "북한이라는 게 대화의 상대방이자 동반자적 교류·협력 관계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반(反)국가단체로서의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중국내 북한 아지트 옆집서
몇 달씩 잠복해 사진 찍어 증거 수집,
경찰만으로 바로 이렇게 할 수 있겠냐
대공수사권 공백 생기고 무력화될 것"
본인의 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최 위원장은 21대 국회에서 강행된 대공수사권(對共搜査權)의 경찰 이관에 대해서도 극히 우려하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심회'를 일망타진할 수 있었던 것에는 국정원의 수사 노하우가 컸는데, 하루아침에 경찰이 대응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최기식 위원장은 "포섭이 되면 중국 내의 북한 아지트로 가서 3~4일 정도 교육을 받고 공작금을 수령해 남한으로 돌아온다"며 "그것을 국정원 수사관들이 아지트 근처에 집을 구해서 몇 달씩 잠복하면서 드나드는 것을 사진으로 다 찍었다. 증거자료를 다 수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에서 이메일이 두 개가 온다. 중국의 북한 아지트에서 교육받을 때 받아온 CD를 집어넣고 돌려야 두 개의 이메일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지령문이 된다"며 "국정원이 그 암호를 푼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경찰만으로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 경찰로 대공수사권을 완전 이관한다는 것은 내 경험에 비춰볼 때 넌센스"라며 "국정원의 해외기능과 노하우가 굉장히 중요한데, 국가의 대공수사권에 공백이 생기고 무력화될 수 있어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라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을 합해 183석을 만들었던 21대 국회, 그 21대 국회의 대표적 산물로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 외에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있다. 최 위원장은 이 모든 것들을 다수 표에 구애하기 위해 국가조직을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무너뜨려놓은 사례로 적시했다.
최기식 위원장은 "민주당은 21대 국회 동안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검찰수사권을 완전히 형해화시킨 것"이라며 "나도 변호사를 하고 있지만 사건이 처리되는 속도가 굉장히 늦어졌다. 고소인들로서는 피해 구제가 안되는 것이고, 피의자 입장에서 봐도 사건이 1년 넘게 기소가 될지 무혐의가 나올지 확정이 되지 않는, 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게 됐다"고 말했다.
나아가 "민주당은 21대 국회 내내 검찰과 경찰을 싸우게 만들고, 의사와 간호사를 싸우게 만들고, 다수의 표를 위해 소수를 배제하면서 선거공학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데만 집중하는 '갈라치기'만을 해왔다"며 "그 과정에서 국가 전체적으로는 조직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놨다는 게 21대 국회 4년"이라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인생 3쿼터' 후회 없이 살겠다는 다짐
"정치하면 아이가 좋아할줄 알았는데
…다름을 존중하며 국민들의 나뉘어진
마음을 모으는 '통합의 정치'가 숙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정치를 '4류'라 평했던 1995년, 최 위원장은 그 때와 비교하더라도 정치가 오히려 더욱 퇴보했다고 단언했다.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품격 있게 상대하던 문화가 사라지고 오로지 지역으로, 세대로, 경제사정으로, 직역으로 갈라치기에 골몰해 남북으로 쪼개진 것도 모자라 우리 대한민국 내부조차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이다.
최기식 위원장은 "내가 정치를 하기로 결심하니 아이가 지지하고 좋아해줄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아빠 정치하는 것 어때' 하니까 '싫어' 그러더라"며 "현수막에 아빠 사진이 걸린 것을 보고 욕하는 친구들이 있다더라. '정치를 안하면 아빠는 90% 이상의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사람인데 최소한 40%는 아빠를 욕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 같아 나는 싫다'고 하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어떻게 국민들의 나뉘어진 마음을 모으는 통합의 정치를 할 것인가가 우리나라가 당면한 숙제"라며 "나는 오늘도 아침에 산악회에서 등산 가는 버스 환송하고 왔는데, 그 자리에 민주당 시의원들도 나왔기에 한 명씩 손을 꼭 잡고 서로 '열심히 하신다'고 토닥거려주고 격려하고 왔다"고 전했다.
최 위원장은 밭 70평이 전재산인 집안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누나 두 명은 초등학교만 나오고 둘째형은 어려서부터 철공소와 방앗간에 가서 일을 해야 했던 가정환경 속에서 어렵게 대학을 나오고 사법시험 1차도 더 이상 군 입대를 미룰 수 없는 벼랑에까지 몰린 끝에 합격했다.
'검사 출신 당협위원장'이라는 타이틀 뒤에 온갖 인생의 부침과 굴곡이 있는 셈이다. 최 위원장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인생의 1쿼터, 검사 시절을 2쿼터라면, 정치는 3쿼터, 자신이 이뤄내고 싶은 통일대한민국에서의 삶은 4쿼터가 될 것이라며, 지금의 '3쿼터'를 최선을 다해 노력해 후회 없는 시간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천명했다.
최기식 위원장은 "의왕은 길게 남북으로 내려져 있어서 교통 인프라가 가장 큰 문제"라며 "GTX-C, 동탄인덕원선, 월곶판교선 등의 광역철도 노선들이 준비되고 있으니, 계획대로 잘 진행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천은 지식정보타운, 의왕은 IT밸리를 만들어 첨단산업과 신재생산업·바이오산업으로 수도권에서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지, 베드타운의 기능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며 "3기 신도시 개발과 관련해서도 지역주민이 원하는 것과 LH가 계획하는 게 서로 이견이 있으니, 조율해가면서 하나씩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지역을 다니다보면 '참 검사스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사실 실제로 그렇게 잘났던 사람도 아니다"며 "가난했던 시절 울었던 이야기들, 슬프고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시민들께 오픈하고, 친근하면서도 겸손한 모습을 시민들께 꾸밈없이 보여드리면서 신뢰를 드리는 게 중요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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