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배경이 된 마을에 사는 흰머리 소녀들
[이돈삼 기자]
▲ 한복입고 이팔청춘 패션쇼. 관음마을 어르신들이 패션한복을 차려 입고 마을회관에 깔린 레드카펫을 걷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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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에서 열린 패션쇼
지난 6월 중순,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관음마을에서 열린 '한복 입고 이팔청춘 마을 패션쇼'에서다. 패션쇼에는 서울에서 유학 온 학생의 학부모와 청년 활동가들이 도우미로 참여했다. 어르신들의 옷과 머리의 매무새를 만져주고, 화장도 해줬다. 어르신들은 '젊은 날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며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멈춤 줄 몰랐다.
"처음엔 어르신들이 손사래를 쳤어요. 다 늙어서 무슨 패션쇼냐고? 근데, 한복을 가져와서 회관에 걸었더니.... 아따 이쁜 거 하시면서, 서로 입어 보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르신들이 한복을 골라 입어 보면서 좋아하셨어요. 이 나이에 패션쇼를 해본다면서, 모두가 깔깔깔 웃으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박오남 관음마을 이장의 말이다.
▲ 한복입고 이팔청춘 패션쇼를 마친 관음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6월 중순의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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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성 관음마을 풍경. 마을이 단아하고 깨끗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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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서 패션쇼가 열리게 된 배경을 물은 데 대한 박 이장의 대답이다. 군청과 면사무소를 자주 찾아다니면서 '발품'을 판 덕분이라는 것이다.
▲ 청이마을 흰머리소녀 갤러리. 관음마을회관 벽면을 활용해 갤러리를 꾸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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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어르신들이 추억이 담긴 청이마을 사진관. 관음마을회관 벽면을 활용해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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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의 벽면을 갤러리로 꾸민 것도 눈에 띈다.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부채에다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다. 어르신의 이름도 빼먹지 않았다. 갤러리의 이름이 웃음을 짓게 한다. '청이마을 흰머리 소녀 갤러리'다. 관음마을을 '청이마을'로, 어르신들을 '흰머리 소녀'로 불렀다.
갤러리 한쪽에 '관음마을 규약'도 걸려 있다. 웃으면서 인사하기(반갑습니다, 반갑소), 상대방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아∼ 그렇구나), 쓰레기가 보이면 무조건 줍기 등 세 가지다. 관음마을은 전라남도의 '청정전남 으뜸마을'로, 산림청의 '녹색마을'로 지정돼 있다.
▲ 박오남 관음마을 이장의 집.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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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삿갓을 닮은 돌탑. 돌 위에 접시를 뒤집어 씌웠다. 관음마을에서 만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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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는 고전소설 <심청전>의 모태가 된 절집이기도 하다. '성덕산관음사사적기'에 나오는 홍장 설화에 근거한다. 장님 아버지를 둔 효녀 원홍장이 불사를 위해 시주됐고, 스님을 따라 나선 홍장은 중국 진나라 사신을 만나 황후가 됐다.
고국을 잊지 못한 홍장은 불탑과 불상을 만들어 보냈고, 그 가운데 금동관음보살상을 옥과에 사는 성덕보살이 발견해 모셨다. 그 절집이 관음사라는 얘기다. 홍장의 아버지 원량은 딸 덕분에 눈을 떴고, 95살까지 살았다는 것이다.
▲ 관음마을의 느티나무 고목. 마을과 주민을 지켜주는 나무로 통한다. 관음마을에서 관음사로 가는 길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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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마을에서 관음사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연지. 수련과 노랑어리연이 피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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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는 국도에서 산자락으로 10리쯤 들어가서 만난다. 관음마을에서 절집으로 가는 길이 세 갈래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과 숲속 옛길이 있다. 새로 낸 숲속 산책길도 있다. 옛길에는 벚나무가 줄을 지어 있다. 벚꽃 피는 봄날에 환상경을 이루는 숲터널이다.
▲ 관음사 원통전 앞 어람관음상. 석불이 큰 물고기를 팔에 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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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사 금랑각. 작은 계곡 위로 놓여 있다. 다리를 겸한 누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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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관음사는 큰 절집이었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엔 전각이 70여 채가 넘었다고 한다.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쪼그라져 작아졌다. 전해 내려온 유물도 사라졌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국군이 빨치산을 소탕한다는 미명아래 산을 통째 불태워버린 탓이다. 국보로 지정된 원통전과 금동관음보살상도 불에 타버렸다. 나중에 발견된 금동관음불의 불두만 원통전에 모셔져 있다.
원통전 앞에는 큰 물고기를 팔에 끼고 있는 어람관음상(魚籃觀音像)이 있다.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어람관음석불이라고 한다. 작은 계곡 위로 놓은 금랑각(錦浪閣)도 별나다. 태안사의 능파각처럼 다리를 겸한 누각이다. 바다가 아닌, 산골 절집의 누각에 '금빛 파도'를 가져다 붙인 이유를 짐작해 본다.
▲ 곡성 관음마을 풍경. 성덕산골을 따라 밭이랑이 유연하게 뻗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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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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