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구조했어요"
[장슬기]
백수혜 공덕동 식물유치원 원장은 2년 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으로 이사 왔다. 마침 길 건너편 골목은 재개발 공사 직전이었다. 주민들이 버리고 간 물건 중에 쓸 만한 것이 많아 종종 찾아갔다가 죽어가는 식물을 발견했다. 식물을 집으로 데려오기 시작했고 작은 마당은 어느새 식물로 가득찼다. 백 원장은 초록 시야가 생겼다고 표현했다. 그의 집은 '공덕동 식물유치원'이 됐고, 사람들이 화분을 데려가는 날은 '졸업식'이 됐다.
"다육이는 상태가 나쁜지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초록별로 떠나 어디에 말하지도 못했었다. 그럼에도 계속 키워보는 이유는 앞으로 구조하는 식물들을 잘 살리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다. 이번에 내 손에서 살아남은 기특한 다육이에게 얻은 자신감 덕분에 다음 도전은 한결 수월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의 책 44쪽)
▲ 백수혜 공덕동 식물유치원 원장 |
ⓒ 박상환 |
지난 6월 14일 '식물구조 활동가' 백 원장을 만났다. 그는 "(장기적으로) 공덕동 식물유치원은 없어지고 이 일을 국가나 지자체에서 해야 한다"며 "사람들도 이사 가면서 식물을 버리기보다는 벼룩시장을 열든 사람들과 나눠 식물이 필요한 곳으로 가도록 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와 나누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사람이 떠나면서 버려진 식물들
– 식물구조 활동을 시작한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듣고 싶다.
"동네를 오가다 길 건너편이 재개발 구역이라는 걸 알게 됐다. 괜찮은 의자가 버려져 있어 물건을 가지러 몇 번 갔다. 그러다 시멘트 바닥에서 알로카시아를 발견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얘네는 어떻게 되는 거지?' 살펴보니 몇몇 식물은 그냥 비닐봉지에 버려져 있었다. 재개발 구역에 오래 살던 사람들은 어르신들이 많은데 중고거래 앱을 잘 모른다. 또 이사 가면서 자녀들과 집을 합치거나 요양시설에 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식물이 방치되는 상황도 많더라. 사람이 떠나면서 식물이 버려졌다."
– 구조한 식물을 무료로 분양하는 것인가.
"화원에서는 상품으로 팔리는 종류의 식물이기 때문에 사실 팔아도 된다. 하지만 돈을 벌겠다는 마음은 아니고, 오토바이로 식물을 구조해 오는데 음료 한 잔은 마셔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그 정도의 분양 비용만 받았다. 올해는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물꼬'라는 공모사업 지원을 받게 되어서 무료로 나누고 있다. 예전에는 중고거래 하듯이 1:1로 만나서 나눠주다가 이제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에서 졸업식 날을 정하고 참가자를 선착순으로 모집해서 구조한 식물을 나눈다."
– 한두 번이 아니라 꾸준히 구조(입학)와 분양(졸업)을 하고 있다.
"식물을 데려가 주는 분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활동하지 못했을 거다. 구조를 하는 건 좋지만 나 혼자 계속 식물을 키울 수도 없고 집의 공간도 한정돼 있다. 그래서 분양을 하는데, 내가 구조한 식물들은 희귀하거나 특이한 종도 아니고 식물 전문가들처럼 예쁘게 키워서 화분에 담아 판매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다행히 '제가 한번 키워볼게요'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유지되고 있다. 최근 식물유치원 졸업식에도 300화분 이상이 졸업했다."
– 함께 구조하는 사람들도 있나.
"아무래도 동거인이 가장 많이 함께 구조한다. 하지만 비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다. 한번은 '큰 식물을 봤는데 내가 스쿠터로 이동하기 때문에 (옮길 수가 없다 보니) 구조를 못 해 아쉽다'고 트위터에 올렸는데 '저는 사륜구동차를 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라며 같이 구조하러 가자는 연락이 왔다(웃음)."
– 관심 있는 독자들이 식물구조 활동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
"편하게 연락해도 된다. 인스타그램, 트위터가 있고 네이버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게 나 혼자만의 활동은 아니고. 사실 누구든 할 수 있다."
"'잡초를 뭐 하러 구조하냐' 같은 악플이 잊히지 않더라.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식물 분류에는 '잡초'라는 개념이 없다. 잡초라고 하지만 이름이 다 있다. 인간 이익에 반하는 식물을 잡초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장미를 키우는데 옆에서 상추가 장미 영양분을 빼앗아 먹으면 잡초가 된다. 상대적이다."
▲ 공덕동 식물유치원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식물들 |
ⓒ 박상환 |
백 원장은 책에서 식물구조 방법을 소개했다. 일단 버려진 식물이 맞는지 확인하고, 손이나 작은 삽으로 뿌리 주변의 흙을 살살 판다. 그는 되도록 목장갑을 끼고 하는 걸 추천했다. 식물을 캐내자마자 물에 젖은 키친타월이나 손수건 등으로 감싸 뿌리를 촉촉하게 유지한다. 집에 데려가서는 물이 담긴 병에 담아두거나 흙에 바로 심는다.
– 초보 식집사로서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 같다.
"인터넷에 키우는 방법도 물어보고 조금만 관심 가져주면 빨리 죽진 않더라(웃음). 비비추라는 식물을 구조해왔는데 겨울에 잎이 다 떨어졌다. 죽어가는 줄 알고 흙에서 꺼냈는데 뿌리가 너무 튼튼한 거다. 혹시나 해서 물에 담가놨다. 식물이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살려야 할지 모를 때는 일단 물에 담가놓는다(웃음). 그런데 겨울이 지나니 싹이 나왔다. 알고 보니 이파리를 다 떨어뜨리고 뿌리만으로 월동하는 식물이었다. 그걸 모르고 식물을 버릴 뻔했다."
키우다 죽여도 괜찮다
– 집에 반려동물도 있고 반려식물도 있는데, 둘은 어떻게 다른가.
"상호교류의 느낌이 다르다. 고양이는 나를 때리기도 하고 내게 안기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자기 상태를 표현하는데, 식물은 그렇지 않다.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관심을 줘야 잘 자라는지 알 수 있다. 벌레 먹었는지 잎 뒷면도 들여다보고, 분갈이 할 때가 됐는지 화분도 들어보고. 그래서 뿌리를 보면서 '너 이제 여기가 좁구나' 이런다든지.
그리고 식물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니까 수동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다. 햇볕 드는 쪽으로 줄기를 뻗고 물과 양분 있는 곳으로 뿌리를 뻗고. 어떤 식물은 햇빛을 잘 받으라고 볕에 두었는데 막 죽으려는 거다. '아, 얘는 햇빛이 싫구나' 하고 그늘 밑으로 숨겨주면 굉장히 잘 자란다."
– 식물구조 활동을 하면서 배운 삶의 지혜도 많을 것 같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것, 그리고 나만의 속도를 찾기. 몇 살에는 뭘 해야 하는지 그런 삶의 형태가 정형화된 한국 사회에 사는데, 나는 학교도 늦게 갔고, 결혼도 안 했다. 틀에서 벗어나 사는 것이 가끔 걱정될 때가 있다.
▲ 백수혜 공덕동 식물유치원 원장 |
ⓒ 박상환 |
– '반려식물', '식집사' 같은 말도 생기고 가드닝 제품도 많아지는 등 식물을 키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장비도 다양해졌는데 나는 장비에 큰 관심은 없어서 처음에는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구조를 시작했다(웃음). 원래 사람들이 식용이나 관상용 식물을 주로 키웠는데 요즘은 더 다양한 식물을 키운다. 그리고 동물에게 그렇듯이 식물도 아프면 어떻게든 살리려고 한다. 화원에 찾아가 '분갈이해달라', '예쁜 화분에 키우고 싶다'면서 세심하게 신경 쓰는 분들이 많아졌다. 서울시는 지난 4월 반려식물병원(반려식물병원은 서초구에 있고 종로·동대문·은평·양천구 등 4개 자치구에서 '반려식물클리닉'을 시범 운영하는데 이후 전체 자치구로 확대될 계획이다)을 개원했다. 식물이 아프면 데려가고 상담받을 수도 있다."
– 반려식물 문화와 관련해 아쉬운 부분은 없나.
"분재(작은 화분에 키 낮은 나무를 심어 거목의 특징과 정취를 축소해 가꾸는 것)는 나무를 인위적인 모양으로 키우기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준다. 모양을 잡는다고 철사로 감고 또 뿌리는 비대하게 키우고. 어찌 보면 인간 욕망의 집합체다. 식물에 전자기기를 달아 신경호르몬을 측정했는데, 이파리를 찢었던 사람이 공간에 들어오면 부정적인 호르몬이 나왔다고 한다. 식물과 함께 공존할 때 어떻게 해야 피해를 덜 줄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 하나는 한국 환경에 맞는 식물을 키우면 좋겠다. 몬스테라가 동남아에서는 3~4m 이상 자라는데 한국에서는 아담하게 큰다. 동물 좋아하는 사람이 동물원 가면 슬프듯이, 식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는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운 한국 날씨에서 살아가는 열대 식물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라벤더밭, 허브 농장에 가서 좋아한다. 나도 허브를 진짜 좋아하지만, 허브 역시 건조하고 뜨거운 곳에서 잘 자란다. 장마가 있는 한국에서 키우기 힘들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방아나물을 관상용으로 키운다고 하더라. 한국에서 자생하는 식물, 한국 기후에 잘 적응한 식물에 관심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싶다. 구조하면서 알았는데 개똥쑥도 향기가 좋더라. 씀바귀·돌나물 등 먹을 수 있으면서 꽃이 예쁜 식물들도 있다."
– 식물을 좋아하지만 키우다 죽일까 봐 걱정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죽여도 괜찮다(웃음). 경험이라는 거름이 된다. 하나씩 키우다 보면 나에게 맞는 식물을 알게 된다. 다육이가 키우기 쉽다고들 하지만 나는 진짜 어렵더라. 그리고 수경으로 키우면 자라는 건 조금 더디지만 더 쉽게 키울 수 있다. 그래도 화분에 키우고 싶다면 저면관수(화분 아래 화분 받침이나 마음에 드는 그릇을 두고 그곳에 물을 주는 방식)가 좋다. 식용 식물은 비료도 많이 줘야 하고 햇빛도 많이 봐야 하고 병충해도 생기다 보니 손이 많이 가서 내 취향은 아닌데, 바질 같은 경우는 꽃도 예쁘고 잘 자라는 편이라서 가성비가 최고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공덕동 식물유치원이 문을 닫는 거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이런 사업을 해줬으면 좋겠다. 개인이 활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사 가면서 식물을 버리기보다 사람들을 초대해서 필요한 곳에 보내주는 문화도 생기길 바란다. 동주민센터에서 지원해주고 재개발 조합에서 협조하면 좋겠다.
식물 하나하나를 다 소중하게 인식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이민자 등 소수자 문제와 마찬가지다. 인간이나 자본을 중심으로 '생명에도 우선순위가 있다'고 여기는 건 차별이다.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치부하는 잡초도 사실 다 역할이 있고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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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사진 박상환.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7-8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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