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말 한마디에 사라진 세금 그리고 사회적 비용 [박장식의 환승센터]

박장식 2023. 7. 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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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개통식 축제를 정쟁판으로, 주민 숙원사업은 신기루로... 교통엔 여야가 없건만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기자말>

[박장식 기자]

철도·도로 계획 그리고 개통은 한국 정치에서 몇 안 되는 '협치와 화합'의 자리다. 아무리 정치 논리가 개입한다 한들 주민 입장에선 '필요한 것을 가져온 것'이고, '우리 집 앞에서 외출하는 길이 한결 나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교통을 대하는 정치권의 인식은 '정치적 치적'을 쌓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야가 없는 사업'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여야가 손발을 맞춰야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고 유권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보이는 착공식·개통식은 서로 으르렁대던 여야도 덕담을 나누고 활짝 웃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화합과 협치'가 정쟁에 휘말려 본질이 흐려진 사건이 약 일주일 사이에 두 건이나 터졌다. '서해선 대곡소사선 개통식'과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 얘기다.

철도 '누더기' 개통식, '숙원 고속도로' 백지화... 두 번 터진 폭탄
 
 윤석열 대통령이 6월 30일 경기 고양시 어울림누리 별무리경기장에서 열린 '서해선 대곡-소사 복선전철' 개통 기념식을 마친 뒤 이동하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주민들이 바라던 SOC(Social Overhead Capital, 사회 기반 시설) 사업을 정부여당이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데 있다. 대곡소사선 개통식에선 정부가 야당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배제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은 대통령 배우자 일가와 관련한 의혹이 제기되자 정부가 수 년간 추진됐던 고속도로 사업을 돌연 백지화했다.

지난 6월 30일 경기 고양에서 열린 서해선 대곡소사 구간 개통식에선 고양시에 지역구를 둔 야당 국회의원들이 초대받지 못했다가 번복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반면 몇몇 유튜버나 여당 당협위원장 등의 인사는 초청장을 받고 고양시 개통식에 참석해 논란이 일었다. 국토교통부의 행사 초청 기준이 오락가락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대곡소사 구간의 또다른 축인 부천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부천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개통식 야당 배제 논란 발생 얼마 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의 입에서 '폭탄'이 튀어나왔다. 수도권 동부의 정체 해결을 위해 건설되는 서울-양평 고속도로와 관련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일가 수혜 논란이 불거지자, 주무부처 장관인 원희룡은 고속도로 건설 사업 백지화를 선언했다.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 나선 원 장관은 "인사책임을 각오한 독자적 결단"이라며 그 원인으로 '민주당발 가짜뉴스, 날파리 선동'을 들었다. 

백 번 양보해 개통식에서의 촌극은 시민들에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야당 인사가 개통식에 배제됐다고 해서 철도의 성능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서해선은 오늘도 많은 승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 건설 백지화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지역 정치인은 물론, 지역주민들 역시 추진을 위해 오랜 기간 힘을 모았던 사업이다. 어디 인력뿐일까. 추진 과정에서 건설 타당성을 조사하고, 환경과 노선에 대한 평가를 이어가는 등 수많은 예산이 삽을 뜨기도 전에 쓰였다.

철도·고속도로 건설 계획은 본격 착공 이전부터 수많은 세금을 먹고 자라난다. 수천억 원, 많게는 수조 원에 이르는 사업을 위해 검토하고 거쳐야 할 단계가 많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실시하는 예비타당성조사, 환경부가 참여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 등은 다른 부처에서도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다.

하지만 장관의 '백지화' 한 마디에 조사와 평가의 이유가 사라졌다. SOC 사업 건설에 앞서 사용된 세금이 공염불이 되게 생겼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 생명을 걸겠다던 원희룡 장관은 추진되던 사업이 갑자기 동력을 소실했을 때 매몰되는 혈세에 대한 책임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고속도로 백지화 선언에 가려진 '백지화된 사회적 비용'
 
▲ "서울-양평 고속도로 전면 백지화" 밝힌 원희룡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실무 당정협의회를 가진 뒤 소통관에서 브리핑 하던 중 "서울-양평 고속도로 전면 백지화, 정치 생명 걸겠다"고 밝힌 후 이동고 있다. 왼쪽은 김정재 국민의힘 국토위 간사.
ⓒ 남소연
 
고속도로나 철도 건설 과정에서의 '특혜'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과거엔 논란이 불거지면 당사자가 토지를 매각하거나 노선을 변경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더라도 사업 자체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번엔 주민들에게서 사업을 빼앗는, 당혹스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SOC 사업의 기본은 협치다. 예산 분배의 문제는 언제나 큰 진통을 야기하고, 한 당 안에서도 의견이 갈리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SOC 예산은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도 없고, 야당이 아무리 크고 목소리가 하나가 된들 여당의 협조가 없으면 예산을 어떻게 할 수도 없다.

특히 예비타당성조사 및 그에 대한 정부의 면제가 본격적으로 정착된 이후에는 어려움을 딛고 예타를 통과해 진행이 확정된 사업은 문제가 발생해도 깨지 않는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었다. 사업 추진을 위해 지역주민 그리고 지역 정치권이 치른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불문율이 '여사님 일가 논란' 한 방에 깨졌다. 정부가 노선을 원안대로 돌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특혜가 아니란 것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면 될 일인데 말이다. 이건 나쁜 선례다. 정권을 누가 잡든 간에 '계속 그러면 사업을 날려버리겠다'는 일종의 협박 사례를 만들어서다.
 
 서울-양평 고속국도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초안) 요약문 상 자료. 지도상 빨간색인 '대안1'의 종점 부근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 지도상 검은색인 '대안2'는 2021년 4월 예타 통과 당시의 노선이다.
ⓒ 국토교통부
 
일주일 사이 벌어진 두 사건을 통해 정부여당이 보여준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곡소사선 개통식 논란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그리고 정의당까지 여러 정당이 함께 만든 성과를 정부여당이 홀로 차지하려던 시도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다. 고속도로 백지화 논란 역시 여러 진영이 함께 추진한 사업을 정부여당이 존폐를 손아귀에 움켜쥐고 협박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우려가 크다.

정부여당이 정치 논리에 매몰되기보다는 민생에 신경쓰는 SOC 사업을 추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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