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파쇄하던 박상원, 이제는 한화 수호신으로
2년 전 폐기문서를 파쇄하던 사회복무요원은 이제 한화 이글스의 든든한 수호신이 됐다. 한화 마무리 박상원(29)이 화려한 날갯짓을 하고 있다.
프로야구 한화는 지난달 21일부터 7월 1일까지 8연승을 달렸다. 2005년 이후 무려 18년만이었다. 최하위에서 벗어난 한화는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 8일 현재 공동 4위인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와는 4경기 차. 압도적인 꼴찌였던 지난 세 시즌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화 뒷문을 지킨 건 우완 박상원이었다. 시속 150㎞가 넘는 빠른 공, 스플리터, 슬라이더 조합을 활용해 타자들을 요리했다. 올 시즌 27경기에서 거둔 성적은 4승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7. 구원 실패는 2번 뿐이었고, 그 경기도 동점 이후엔 실점을 내주지 않고 승리를 챙겼다. 특히 6월부터는 소방수 역할을 맡았고, 연승 기간엔 1점도 내주지 않는 철벽투를 펼쳤다. 덕분에 올스타전 추천선수로도 선정됐다.
박상원은 "마무리에 대한 압박감은 받지 않는다. 똑같이 나가서 던지려 한다. 스스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끝날 때까지 모르는 게 야구다. 몇 점 차든, 3아웃이 될 때까지 집중하려고 한다. 9회에 나오는 투수도 압박받지만, 타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던져야 경기가 진행되니까, 공격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화는 전통적으로 마무리가 강한 팀이었다. 90~2000년대엔 송진우와 구대성이 있었고, 2010년대엔 FA 영입한 정우람이 활약했다. 최근 1~2년 사이엔 고정 마무리가 없었지만, 지난달부턴 박상원이 자리를 꿰찼다. 박상원은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선발보다는 뒤에 나와 몇 이닝을 던지면서 경기를 끝내는 걸 선호했다. '내려오라'고 할 때까지 던졌다. 매일 경기를 하는 프로와는 다르지만, 지금이 좋다"고 했다.
박상원은 2017년 연세대를 졸업하고, 2차 3라운드 전체 25순위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2년차인 2018년엔 69경기에 나서 4승 2패 9홀드 평균자책점 2.10을 기록했고, 2020년까지 3년 연속 60경기 이상 등판했다. 2020시즌 막판 구속 저하를 겪었던 박상원은 "사실 8월에 습한 날씨에 던지다 손가락이 찢어졌다. 아물지 않아서 그런지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갔다. 프로니까 그 정도는 감수하고 던져야 했다"고 설명했다.
박상원은 그해 12월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박상원은 "상무를 갈 수도 있었지만, 최대한 빨리 군복무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인천 송도의 한 관공서에 배치된 박상원은 다른 사회복무요원들과 똑같이 근무했다. 낮에는 공무원들을 보조하는 업무를 했고, 밤에는 운동을 했다. 박상원은 "하루에 몇 시간씩 폐기문서를 문서파쇄기에 넣을 때도 있었다. 멍하니 앉아서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란 생각을 했다. 야구에 대한 생각이 더 간절해진 것 같다"고 했다.
박상원에게 힘을 실어준 사람은 좌완 정우람이었다. 박상원은 한화 입단 후 정우람 특유의 가슴 앞에 손을 모으는 투구폼을 익혔다. 키킹과 릴리스 동작은 다르지만, 투구 준비 동작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똑같다.
군복를 할 때도 정우람이 도움을 줬다. 박상원이 퇴근한 뒤 운동할 수 있게 과거 동료였던 엄정욱의 야구 아카데미를 소개해줬다. 박상원은 이 곳에서 엄정욱과 윤희상의 도움을 받아 복귀를 준비했다. 소집해제 6개월을 앞두고는 근무지를 2군 연습장이 있는 서산으로 바꿔 훈련했다. 덕분에 소집해제 하루 만에 150㎞ 강속구를 뿌릴 수 있었고, 일주일도 안 돼 1군에 올라왔다.
박상원은 "가족도 있고, 신경쓸 일도 많은데 우람 선배가 정말 많이 도와줬다. 우람이 형이 2군에 내려와 있을 때도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했다. 정우람은 통산 197세이브를 거둔 자신의 노하우도 전했다. 박상원은 "우람이 형이 '네가 던지던 모습으로 던지면 된다. 다른 걸 더 하려고 할 필요없이, 방심하지 않고 던지면 된다'고 조언했다. 많은 지도자들이 도와주셨지만, 우람이 형 덕분에 지금까지 야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박상원이 제일 야구를 잘 했던 2018년, 한화는 가을 야구를 했다. 그리고 박상원이 살아난 올해, 5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살아났다. 박상원은 "잘 했던 모습은 지우고, 다음 경기만 신경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선수라면 누구나 똑같지 않나.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그걸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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