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전쟁사]프리고진도 '푸틴의 홍차' 받을까…인류사와 함께한 독극물
사극과 달리 약효 느렸던 '사약'
러 정계 독살될 인물 더 늘어날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에 대한 암살 지령을 내렸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프리고진이 독살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러시아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푸틴 대통령의 정적 중 상당수가 독살됐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과거 이렇게 독살당한 사람 중에는 푸틴 대통령이 보낸 홍차를 마시고 2주 만에 사망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안팎에서는 아예 '푸틴의 홍차'가 독극물을 지칭하는 용어로까지 굳어졌는데요. 러시아는 실제 옛 소련 시절부터 다양한 생화학무기들을 개발해 독극물 제조에는 상당히 앞선 국가로 알려져 있고, 실제 암살 작전에도 많은 독극물이 사용됐다고 하죠.
하지만 이 독극물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먹고 곧바로 즉사하는 것은 아니고, 근대 시기 이전의 독극물들은 의외로 효능이 낮아 독살 작전이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안고 있는 독극물과 암살용 생화학무기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뉴스(News) : "푸틴, 프리고진 암살 지령"…독살 가능성 제기먼저 뉴스부터 살펴보죠. 지난 2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 국장은 미국 온라인 매체인 워존(The War Zone)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이 러시아 연방정보국(FSB)에 프리고진의 암살 지령을 내렸다"며 "FSB가 암살계획을 세우고 이행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임무의 성공 여부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군사 반란 실패 이후 행적이 묘연해진 프리고진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음성메시지만 공개하면서 그가 이미 암살당한 것이 아니냐는 설도 확산했는데요. 일각에서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고, 몰수됐던 자금을 직접 받아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그의 행방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 내에서도 푸틴 대통령이 당장 그를 제거하진 않더라도 결국에는 독살시킬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죠. 러시아 현지 매체인 모스크바타임스는 러시아 고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프리고진은 결국 신경작용제 노비촉에 의해 독살될 것"이라며 러시아 당국이 그의 독살을 계획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가 독살될 것이란 이야기가 도는 이유는 푸틴 대통령의 정적 중 상당수가 독살당했기 때문인데요. 지난 2020년 러시아 야권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시베리아의 한 공항에 갑자기 쓰러진 뒤, 독일로 이송됐는데 몸에서 독극물인 노비촉(Novichok)이 검출돼 국제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죠.
이보다 앞서 지난 2006년에는 과거 푸틴 대통령과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동료이자 정치적 숙적이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독살되기도 했습니다. 이때 리트비넨코는 푸틴 대통령이 보낸 홍차를 마시고 사망했는데, 사후 몸에서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Polonium)이 검출됐다고 하죠. 이후 '푸틴의 홍차'는 러시아에서 독극물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역사(History)1 : 즉사 어려웠던 고대 독극물…사약 16사발 마신 사람도이러한 독극물의 역사는 상당히 긴 편인데요. 특히 전쟁터에서 전황을 뒤집기 위해 고위 지휘관, 혹은 왕을 암살하기 위한 도구로 많이 활용됐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독극물의 대명사가 된 '비소(Arsenic)'의 생산이 어려웠던 중세시대 초반까지는 독극물의 위력이 약해 독살 성공률이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영어로 독극물 전반을 뜻하는 '포이즌(poison)'이란 단어는 고대 로마 라틴어의 '포시오(posio)'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요. 이 말은 원래 "한모금 마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당시 포도주에 독극물을 많이 탔기 때문에 이 단어가 아예 독극물을 의미하는 말로 굳어졌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왕실에 기미상궁이 있었듯이 로마시대에 귀족들도 먼저 포도주를 마셔보는 노예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부 왕족들은 일부러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기 위해 독극물을 소량씩 먹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기원전 1세기경 오늘날 튀르키예 일대 그리스계 국가였던 폰투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 6세라는 인물은 어릴 때부터 각종 독극물을 조금씩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네요. 소량으로 치명상을 주는 독극물은 고대에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독극물의 대명사로 알려진 '사약'도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극적인 죽음으로 연결되진 않았다고 하는데요. 일부 사약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리 마셔도 죽지 않아 교수형에 처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명종 재임 시절인 1547년, 문신인 임형수(林亨秀)라는 사람이 사약을 16사발 마시고, 이후 독주를 2잔이나 마셨는데도 죽지를 않아 결국 교수형에 처해 숨졌다고 합니다. 체질에 따라 사약의 독 기운이 아예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죠.
고대부터 중세까지 대부분의 독극물은 화학약품이 아닌 식물이나 동물에게서 채취한 독을 주로 사용했는데요. 중남미에 서식하는 '독화살개구리'의 경우에는 실제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독을 채취해 독화살을 만드는 데 많이 사용해 이름까지 이렇게 붙어버렸죠. 화학약품을 이용한 독극물은 연금술이 발전하기 시작한 13세기 말, 비소가 처음으로 생산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역사(History)2 : 1970년대 소련서 '노비촉' 개발…생화학무기로 발전'비소(Arsenic)'는 무색무취해 음식물에 넣었을 때 맛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에 독극물로 많이 이용됐는데요. 수많은 왕실, 귀족 가문에서는 유산상속 싸움이 발생할 때마다 비소로 독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상속 가루(Powder of succession)'란 별칭까지 붙었습니다.
원래 비소는 대기 중에선 산소와 결합한 형태의 산화비소, 혹은 구리나 니켈, 코발트 등 광물과 결합해 있는 형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구리 광산 및 청동 등 합금을 대장간에서 만들 때 노동자들이 많이 중독되기도 했는데요. 그리스 신화에서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장애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이유도 고대 대장장이들이 비소중독에 걸리기 쉬워 그 후유증에 시달렸기 때문이란 설도 나온 바 있습니다.
이후 독극물 제조기술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염소가스나 겨자가스와 같은 독가스가 생화학무기로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처음 전쟁에 도입된 비행기와 결합하면서 특히 광범위한 지역에 생화학무기를 살포하며 대량학살을 유도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1차대전 때만 독가스 무기로 약 9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이때의 끔찍했던 기억으로 2차대전 때는 오히려 생화학무기의 사용이 각국에서 엄격히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적군뿐만 아니라 아군도 피해가 커지는 데다, 당시까지 전선에서 보급을 담당하던 말과 같은 동물들의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죠.
2차대전 이후 생화학무기가 대규모로 활용된 것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어졌던 이란-이라크 전쟁에서였습니다. 당시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란과의 전쟁 이후 자국 내 쿠르드족 반군과의 전투에서도 강한 독성으로 악명이 높은 사린가스를 무차별 살포해 수천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암살용 독극물로 유명한 노비촉도 1970년대 소련에서 개발된 생화학무기였죠. 2017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사건에 사용된 VX보다 5배 이상 강력한 독극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사점(Implication) : 전쟁 장기화 속 더욱 늘어날 '푸틴의 홍차'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푸틴 정권의 안정성이 계속해서 흔들리면서 독극물을 통한 암살 시도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프리고진의 반란 이후 러시아 군부 및 정계 내에서 그와 연계됐던 인물들에 대한 색출작업이 이어지면서 독살 위협에 시달릴 인물들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무차별적인 독살이 오히려 러시아 엘리트층의 반감을 키워 정권을 더 위협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영국 데일리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에서 러시아 내 엘리트 집단들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독살 계획을 세웠다가 들통이 나 대규모 숙청작업이 있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죠.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해도 암살과 숙청에 의한 공포정치는 늘 한계에 봉착했던 만큼, 러시아에서도 '푸틴의 홍차'가 더 늘어나질 않길 바랍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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