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범죄단체조직죄 확대 적용 이유는?… 전세사기 이어 리딩투자까지
수원지검은 지난 6일 고수익을 보장해주겠다는 리딩투자 사기 문자를 발송하는 방법으로 거액을 편취한 총책 1 명과 조직원 7명 등 8명에게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주식·코인 종목을 선정해 투자, 매일 거래금의 2% 수익 보장' 등 문자를 발송해 투자자를 유인, 12명의 피해자로부터 약 12억5000만원을 뜯어냈다.
앞서 경찰은 이들에 대해 사기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지만 검찰은 범죄단체조직 관련 혐의를 추가해 입건한 뒤 수사했고, 공소사실에도 포함시켰다.
사건 수사를 지휘한 국상우 수원지검 형사4부 부장검사는 "5명의 피해자에 대한 사기 혐의와 불특정 다수 피해자를 대상으로 사기나 정보통신망법 위반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분리해 기소한 사안"이라며 "애초 송치될 당시에는 사기 혐의로만 송치가 됐지만 수사 과정에서 범죄단체 관련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해 총책은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나머지 구성원들은 범죄단체 가입·활동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인천지검은 지난달 말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2700채의 소규모 주택을 보유하면서 372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약 305억원을 편취한 속칭 건축왕 A씨와 범행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등을 기소하면서 범죄집단조직·가입·활동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이 전세사기 조직에 '범죄집단'죄 법리를 적용해 기소한 첫 사례다.
A씨는 여러 개의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이를 총괄하는 '중개팀'을 두고, 총괄팀장, 실장, 팀장 등 직급과 역할을 나눈 후, 실적에 따른 성과급 지급 등 체계적인 조직관리를 통해 전세사기 범행을 반복적으로 저질렀다.
형법상 범죄단체 내지 범죄집단… 폭처법상 범죄단체보다 요건 완화범죄단체조직죄는 형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에 규정돼 있다. 과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절도를 목적으로 단체 또는 집단을 구성한 경우를 가중처벌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2013년 법 개정 때 삭제됐다.
집단폭행이나 상습폭행 등을 목적으로 하는 폭력조직에는 폭력행위처벌법이 적용된다. 서울 도심의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난동을 부린 혐의 등으로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이 39명의 조직원을 기소한 '수노아파' 사건 같은 경우다.
폭력행위처벌법 제4조는 폭력단체의 수괴의 경우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간부의 경우 '7년 이상의 징역', 그 밖의 조직원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이 무거운 만큼 법원도 조직의 '강령'이나 '지휘·통솔체계' 등 엄격한 요건을 따진다.
이에 반해 형법상 범죄단체나 범죄집단은 애초 조직을 만들 때 목적했던 범죄의 법정형으로 처벌된다.
형법 제114조(범죄단체 등의 조직)는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은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 다만,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가령 사기죄를 목적으로 한 범죄단체를 만들었을 경우 사기죄를 저지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게 된다.
이처럼 범죄단체조직죄는 실제 목적으로 한 범죄를 저지르기 전 단계에서 처벌이 가능하도록 만든 범죄 유형인 데다가 그 형량도 실제 범죄를 저질렀을 때와 같거나 오히려 무겁기 때문에 범죄의 예비나 음모를 기수처럼 처벌해 위헌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하는 경우 각 구성원의 개인적인 억제요소가 제거되고, 단체의 조직적 구조 때문에 범죄의 계획과 실행이 용이해진다는 점에서 형사정책적으로 조직범죄의 특수한 위험성을 사전에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2017년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사기 조직에 대해 형법상 범죄단체조직죄 성립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을 확정했다.
당시 1심과 2심은 ▲사기 범행을 범할 공동의 목적이 분명했던 점 ▲총책으로부터 중간관리자인 이사, 실장, 팀장 및 단순가입자인 각 팀의 상담원 등으로 구성원의 지위가 상하관계로 구분돼 있었던 점 ▲조직원들의 지위에 따른 지휘 또는 명령과 복종체계가 갖춰져 있는 점 ▲총책, 중간관리자인 이사, 실장, 팀장 및 단순가입자인 상담원 등으로 그 지위가 나뉘어져 있고, 그 지위에 따라 각자 그 역할이 효율적으로 분담돼 있었던 점 ▲비록 폭력범죄단체에서 볼 수 있는 강령이라고 볼 수 있는 명시적인 내부규정이 존재하지는 않으나, 범죄단체는 다양한 형태로 성립·존속할 수 있고 정형을 요하지 아니하므로 그 구성이나 가입에 있어 반드시 단체의 강령이 명확하게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닌 바(대법원 판례 인용), 사기 범행의 수행과 관련해 각 상담원들의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고, 각 상담원들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지시받은 범행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하며, 그 실적 등에 따라 보수를 지급받는 형태로 운영된 점 등에 비춰 그 구성원을 구속하는 내부적인 규율이 있었다고 보이고, 그와 같은 경제적 이익 추구를 기반으로 해 구성원간에 통솔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일시적으로 사기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구성된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해 지속적으로 사기 범행을 수행하는 조직으로서 실제로 2013년말 조직되기 시작해 2014년 여름 무렵부터 2015년 12월경까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지되는 등 시간적 계속성도 갖고 있었던 점 ▲기소된 조직원들만 하더라도 78명에 이르는 등 단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규모와 체제를 갖추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범죄단체조직 및 가입·활동 혐의 유죄를 인정했다.
한편 법원은 형이 가중되는 폭력행위처벌법상 범죄단체에 비해 형법상 범죄단체 성립은 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 판단하고 있다. 특히 2013년 법 개정으로 형법에 범죄단체 외에 범죄집단 개념이 도입됐는데, 범죄집단의 경우 '범죄수행의 공동목적', '범죄를 반복 실행할 수 있는 체계', '조직적 구조' 등 요건만 갖춰지면 그 설립이 인정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0년 12월13일 '국제연합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에 우리나라가 가입한 뒤 2013년 형법상 범죄단체조직죄 규정을 개정했다"라며 "'범죄단체'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 위험성이 큰 '범죄집단'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단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내부 규율과 통솔체계에 따른 조직적, 집단적 의사 결정에 기초한 범죄단체 유지 행위가 요구되고, 이러한 구조를 갖춰야 하지만 범죄집단은 내부 규율, 통솔체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다수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그들 사이의 역할 분담이 있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목적한 범죄와 실체적 경합… 장기 2분의 1까지 형 가중돼애초 조폭 사건에 주로 적용됐던 범죄단체조직죄는 2010년대 보이스피싱 조직에 처음 적용된 이후 마약, 전세사기, 리딩투자 사기 등으로 점점 적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확대하는 건 무엇보다도 죄질이 나쁜 중범죄자들에게 대한 무거운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일당을 들 수 있다.
형법상 복수의 죄를 범한 경우 중에는 1개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해당되는 '상상적 경합'의 경우와 각각 별개의 행위로 여러 개의 죄를 저지르는 '실체적 경합' 두 경우가 있다.
상상적 경합은 가령 음주 상태에서 무면허 운전을 했을 때 운전이라는 1개의 행위가 각각 도로교통법상 주취운전죄와 무면허 운전이라는 2개의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경우인데, 형법은 이 경우 가장 무거운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반면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훔치고 성범죄까지 저지른 경우 절도죄와 성범죄는 실체적 경합 관계로 평가되는데, 이 경우 형법은 경합 관계에 있는 여러 죄 중 가장 무거운 죄의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가 아닌 이상 가장 무거운 죄에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댜액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도록 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기죄의 법정형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인데, 사기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범죄단체조직이나 가입·활동 혐의가 추가될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까지 처벌할 수 있게 된다.
부패재산몰수 및 회복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 피해자에 피해 재산 환부 가능더 무거운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 외에도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확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피해자의 피해 구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승재현 선임연구위원은 "범죄집단조직으로 인정되면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범죄수익을 피해자에게 환부해 줄 수 있다"라며 "가령 전세사기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려는 것은 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한 이유 외에도 청년들에게 피해를 입은 전세자금을 되돌려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범죄수익은 몰수돼 국고에 귀속된다. 하지만 부패재산몰수법 제6조(범죄피해재산의 특례) 2항은 '이 법에 따라 몰수·추징된 범죄피해재산은 피해자에게 환부(還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부패재산몰수법 제2조(정의) 3호는 피해자에게 되돌려주는 '범죄피해재산'의 개념을 부패재산몰수법 별표에서 정한 죄 중 각목의 범죄행위로 피해자로부터 취득한 재산 또는 그 재산의 보유·처분에 의하여 얻은 재산'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가목에서 '형법 제114조에 따른 범죄단체를 조직하여 범행한 경우'를 그 중 한 유형으로 열거하고 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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