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타자기]OECD도 예외는 아니다…이미 시작된 식량위기
아프리카 등 빈곤국부터 고통…선진국도 예외아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식량위기의 방아쇠였다.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세계 경제가 즉각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가와 곡물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가 오르고 일상생활이 빠듯해졌다. 쌀이 주식인 아시아 지역은 그나마 피해가 적은 편이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식탁도 위협을 받고 있다.
루안 웨이 일본 농림중금종합연구소 이사 연구원은 책 '식량위기, 이미 시작된 미래'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더는 식량 위기가 아프리카 등 일부 지역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 지구 차원의 식량 위기가 시작되면서 식량 자원은 세계 경제 질서를 재편하는 무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강대국 논리에 한 번, 전쟁에 두 번 희생
저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침공의 식량 위기의 커다란 전환점으로 봤다. 세계 각국에 미친 영향을 각종 통계와 직접 탐방한 내용을 근거로 촘촘하게 톺아봤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은 아프리카다. 전쟁은 늘 약자를 첫 희생자로 삼는다. 2020년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수입 밀에 의존하는 비율은 이집트가 70%가 넘고 레바논도 60%에 달한다. 튀니지는 곡물 전체의 8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한다. 개발도상국 약 50개국이 수입하는 밀의 30%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기대고 있다.
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싸기 때문이다. 수확지부터 수송거리가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 등보다 가깝고 가격도 20~40%가량 저렴하다. 그래도 아프리카는 광활한 토지가 있다. 그럼에도 왜 곡물의 자급자족에 실패했을까. 우선 환경적 차이가 있다. 역사적으로 크게 보면 아시아는 쌀, 유럽은 밀, 미주는 옥수수라는 주요 곡물이 정착됐다. 반면 아프리카는 넓은 건조 지대와 식생의 차이로 곡물이 하나로 묶이지 못했다.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는 밀, 농촌은 카사바 같은 전통 곡물로 식생활이 양분됐다. 도시인구 비중은 1961년 19.1%에서 2018년 42.9%로 아시아(49.7%)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늘었다. 도시 인구에 맞춰 증가한 곡물의 신규 수요 증가분은 아프리카 농가의 생산이 아니라 대부분 수입으로 조달됐다.
자국 농민을 보호하고 국산 작물을 우선시하는 정책은 부재했다. 아프리카의 정치인과 고위 관료는 미국과 유럽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유엔 기구에서 일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선진국의 원조 조직과의 소통이 중요했고 그런 풍조에서 승진했다.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육박하는 외부 공적개발원조(ODA)에 만족하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아프리카 도시 성장은 아프리카 농민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농민을 윤택하게 했다.
국제사회는 아프리카 외면…세계 식량위기 확대될 수도저자는 국제사회가 아프리카나 중동 등 빈곤국의 기아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꼬집는다. 유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원조는 목표액의 약 80%인 17억6350만달러가량이 모였지만, 남수단 지원에는 약 4억7200만달러만 모금됐다. 요청액의 28% 수준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최근 타이태닉호 탐사 잠수정 '타이탄' 사건에 대해 "잠수정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서도 "(그리스 앞바다에서 침몰한 난민선에 탔던) 700명의 죽음보다 (타이탄 실종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다"고 쓴소리를 남긴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저자는 나아가 '강대국 논리'가 지구적 식량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러시아 제재를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면서 세계 농업이 생산 여력이 있어도 강대국 논리에 따라 시장이 움직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주요 비료들도 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 주로 공급하는 만큼 앞으로 식량 균형이 더욱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기록적인 폭염과 적은 강수량 같은 기상 이후로 곡물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국가 차원의 '식량안보'는 필수라고 주장한다. "농업 생산의 열쇠는 안정적 수요"라며 "농민, 축산가가 안심하고 계속 투자하는 환경 정비가 식량 안보를 향상시키는 길이다."
식량위기, 이미 시작된 미래 | 루안 웨이 지음 | 정지영 옮김 | 미래의창 | 248쪽 | 1만7000원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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