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발 담그고 식사…평상 못 펴는 식당들 계곡물 끌어올린다

이영근 2023. 7.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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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경기도 양주시 장흥계곡. 3.8㎞ 길이 계곡을 따라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닭 백숙, 파전 등을 파는 평범한 계곡 식당이었지만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손님들이 가게를 가득 채웠다. 주차장이 꽉 차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운전대를 돌릴 정도로 붐비는 식당도 있었다.
지난 8일 경기도 양주시 장흥계곡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손님들이 인공폭포로 조성된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식사를 즐기고 있다. 이영근 기자


계곡물 끌어다 인공 폭포…경기 특사경 “불법 소지 점검 나설 것”


결정적인 차이는 손님들이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담그고 평상에서 음식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강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29)씨는 “계곡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백숙을 먹기 싫어 이곳을 찾았다”며 “분위기가 훨씬 ‘핫’하다”고 말했다.

물이 흘러나오는 곳은 식당 내 설치된 인공폭포였다. 물가엔 과자봉지 등 오물이 떠다녔다. 식당 관계자에게 물을 어디서 취수하냐고 물으니 “계곡물을 펌프로 끌어 올린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근 식당 사장 A씨는 “얼마 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영업 방식”이라며 “단속이 심해져 하천에 평상을 펴지 못하니 고안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천법 50조에 따르면 생활·공업·농업·환경개선·발전·주운(舟運) 등의 용도로 하천수를 사용하려는 자는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영리 목적은 따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8일 경기도 양주시 장흥계곡의 한 음식점이 분수대를 설치하고 계곡에서 물을 끌어다 사용하고 있다. 이영근 기자

분수대를 설치해 계곡물을 끌어다 쓰는 업소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하천에 분수대를 설치하려면 정부에 공유수면 점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분수를 설치한 음식점 사장 B씨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당국은 아직 단속에 나서지는 않은 상황이다. 경기도 민생특별사법경찰단 관계자는 “하천수를 업장 내로 취수하는 행위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신종 사례”라며 “영리 목적 사용으로 보이는 만큼 불법 소지가 있는지 이달 중순부터 집중 단속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내 계곡하천 불법행위 적발 건수는 2019년 142건, 2020년 74건, 2021년 47건 등 매년 감소세였으나 지난해 68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과거보다 개선된 부분도 있었다. 우선 하천을 평상으로 뒤덮고 ‘배짱 영업’을 하는 업소가 사라졌다. 하천 진입로 곳곳에는 ‘모두의 계단’이라고 적힌 팻말이 적힌 보였다. 양주시가 무허가 식당을 철거하고 설치한 계단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시민들도 계단을 통해 계곡을 자유로이 오갔다.

다만 ‘모두의 계단’이 있는지 몰랐다는 반응도 있었다. 친구들과 계곡을 찾은 직장인 김모(31)씨는 “계곡에 오면 당연히 식당에서 ‘자릿세’ 개념으로 음식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8만원이나 하는 백숙을 굳이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거 반대 상인, 든든한 ‘계곡 지킴이’ 변신


계곡 전체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곳도 있었다. 수락산 줄기에 형성된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계곡. 상인들의 ‘바가지요금’으로 수십 년 동안 몸살을 앓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모두의 계곡’으로 탈바꿈했다. 2018년 남양주시가 전국 최초로 음식점을 모두 철거한 뒤 공원화해 시민들에게 돌려줬기 때문이다.

8일 오전 찾은 청학계곡은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시민들은 계곡 옆에 텐트를 펴고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하나둘 꺼내 상을 차렸다. 판매 시설이라곤 푸드트럭 2대가 전부였다. 준비한 음식이 부족한 시민들은 주차장 한쪽에 설치된 ‘배달존’을 이용했다. 가족과 함께 청학계곡을 찾은 최나리(38)씨는 “철거 전에는 비싼 음식값이 부담돼 찾지 않았다”며 “아이들도 너무 좋아해서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8일 경기도 남양주시 청학계곡에서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영근 기자

‘계곡 지킴이’가 된 상인들도 적지 않았다. 청학계곡에서 음식점을 운영한 상인 6명 등 총 21명으로 구성된 청학밸리협동조합 회원들은 이날 교통안내와 안전관리에 여념이 없었다. 계곡 수질 관리와 청소도 도맡아 한다. 36년 동안 청학계곡에서 장사를 한 유도근 협동조합 이사장은 “나도 생계 때문에 반대를 한 적이 있는데 지난 시간이 오히려 죄송스럽다”며 “시민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고 했다.


안전 사각지대 무허가 캠핑장, “단속 강화해야”


하천변을 점령한 채 우후죽순 성업 중인 무허가 캠핑장도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의 한 캠핑장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계곡 뷰 1열 명당자리”라며 각광받고 있었다. 그런데 해당 업체는 전국의 등록 캠핑장 정보를 제공하는 한국관광공사의 웹사이트 ‘고 캠핑’에 등록되지 않은 곳이었다. 고 캠핑 관계자는 “지자체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돼 곧바로 등록 여부가 홈페이지에 반영되기 때문에 고 캠핑 미등록 업체는 무허가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미등록 야영업 영업행위를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한 철 장사로 버는 수익이 벌금을 상회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5월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무허가 캠핑장을 양성화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호준 경기도의회 의원은 “무허가 캠핑장은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안전이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강력한 단속이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근 기자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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