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토크]AI가 꿈을 꾸게 되면 어떻게 될까
'자각몽'으로 학습 능력 끌어올리는 AI
인간과 기계의 학습, 갈수록 닮아가
우리가 잘 때 꾸는 꿈은 지각을 갖춘 고등 생물의 전유물로 여겨집니다. 개, 고양이 등 포유류, 문어 등 일부 고지능을 갖춘 생물도 꿈을 꾸긴 하지만, 길고 선명한 꿈을 꾸는 종은 인간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AI)도 꿈을 꿀 수 있을까요. 또 만일 AI가 꿈을 꿀 수 있게 된다면, 기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1인칭 꿈꾸듯 영상 만들 수 있는 월드 모델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영국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스타트업 '웨이브(Wayve)'는 '월드 모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AI를 내놨습니다. 웨이브의 월드 모델은 '가이아(GAIA)'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이용자가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 내용을 비디오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능을 합니다.
얼핏 가이아는 최근 유행하는 생성 AI와 크게 달라 보일 게 없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가이아 자체는 다양한 이미지, 영상 생성 AI들을 접목해 만든 AI입니다.
다만 가이아는 자율주행 자동차에 특화된 모델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또 명령어를 매우 구체적인 영상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마치 운전자 1인칭 시점으로 생생한 꿈을 꾸듯이 말입니다. 심지어 명령어에 따라 영상 시간대의 낮과 밤을 바꾸거나, 주변 풍경을 둘러보거나, 같은 영상의 시점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꿈 꾸는 AI, 현실 변수 대처에 유리
가이아 모델의 시연을 접한 사람들은 이를 두고 "AI가 꾸는 꿈"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용자 스스로 꿈의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자각몽'에 가까울 겁니다.
웨이브의 창업자이자 컴퓨터 비전 AI의 권위자로 유명한 알렉스 켄달 또한 가이아 모델을 통해 AI의 성능이 다시 한번 진일보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꿈꾸는 AI'는 왜 중요할까요. 켄달은 가이아를 통해 AI가 끊임없이 여러 상황을 스스로 학습하고, 시뮬레이션하고, 자기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기능은 자율주행처럼 다양한 '현실 변수'가 개입되는 상황을 통제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자율주행 기술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안전 문제입니다. 인간과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는 온갖 변수가 발생하는 공간이며, 지금의 AI는 예측 불허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힘듭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운전 시나리오를 데이터화해 학습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기계 학습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이아 모델을 통해 AI가 여러 상황을 '가상으로' 마주하며 다양한 상황 패턴을 익힐 수 있다면 훈련에 드는 비용과 시간은 크게 단축될 겁니다.
인간도 렘(REM)수면으로 뇌 부하 해소
이런 점에서 가이아 모델은 실제 인간이 꾸는 꿈과 흡사한 기능을 합니다. 아직 우리는 인간을 비롯한 여러 고등 척추 생물이 '왜' 꿈을 꾸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꿈이 생물의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꿈을 꾸기 시작하는 '렘(REM)수면' 단계에서 인간의 몸은 거의 모든 기능을 정지하지만, 두뇌는 훨씬 활성화됩니다. 이 때문에 학계 일각에선 꿈에 대해 '휴식을 취하는 인간이 무의식중에 뇌 기능을 조정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2021년 미 터프츠대 연구진은 렘수면이 '뇌의 과최적화(overfitting) 상태'를 복구하는 작업일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놨습니다. 우리 인간은 깨어 있는 내내 수많은 자극을 받아들이며, 이 자극은 두뇌에 '데이터'로 남습니다.
하지만 특정 데이터의 양이 너무 방대하거나 너무 적은 '과최적화' 상태가 되면 뇌의 기능에 이상이 생깁니다. 꿈은 현실에서 받아들인 자극을 무작위로 재합성해 뇌에 보여줌으로써 과최적화를 해소하는 겁니다.
놀랍게도 과최적화는 AI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특정 데이터를 너무 많이 받아들이면 AI가 특정 패턴을 '과신'하게 되고, 너무 적게 받아들이면 상황을 혼동합니다. 웨이브의 가이아 모델은 AI가 기존에 학습한 여러 데이터를 혼합한 가상을 보여줘 자율주행 AI의 행동을 조정합니다.
점차 닮아가는 인간과 기계의 학습
월드 모델 개발 경쟁에 나선 기업은 웨이브뿐만이 아닙니다. 자율주행 서비스인 'FSD'를 개발 중인 테슬라도 가이아와 유사한 모델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또한 켄달은 월드 모델이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로봇 분야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거라고 예견합니다. 그동안 로봇 개발의 고질적 문제였던 시각적 인지 문제, 즉 컴퓨터비전 데이터를 월드 모델로 합성함으로써 더욱 빠르고 저렴한 AI 훈련이 가능할 테니까요.
이런 발전 양상을 보면, AI 기계 학습과 인간 지능은 점점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꿈을 통해 뇌가 받아들인 자극 데이터를 정리하듯이, 컴퓨터도 다양한 생성 모델을 통해 스스로 성능을 최적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겁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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