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반영과 조롱 사이…‘사회 비판’ 드라마 속 ‘위험한’ 대사들 [기자수첩-연예]
메시지와 비하 사이 필요한 고민
“너 같은 애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그 천한 신분에서 절대 못 벗어나. 그러니까 주제 파악 좀 해.”
웨이브,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청담국제고등학교’에서 ‘금수저’ 제나가 기회균등전형으로 입학한 혜인을 무시하며 던진 대사다.
‘청담국제고등학교’는 모두가 선망하는, 일명 ‘귀족학교’ 청담국제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치열한 권력 게임과 심리 싸움을 다룬 드라마다. 여고생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흙수저 전학생 혜인과 유력한 용의자이자 교내 최고 권력자 제나의 대결 통해 긴장감 조성하는 한편, 돈이 곧 권력이 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녹아있다. 가상의 학교인 청담국제고등학교를 우리 사회를 은유하는 배경으로 설정, 계급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학생들 행태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는 혜인의 팍팍한 현실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강조하기 위해 가난을 향한 조롱과 비하의 대사들이 꾸준히 이어진다. ‘청담국제고등학교’의 이 같은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노골적인 대사들이 캐릭터의 입을 빌려 전달이 되곤 하는 것. 물론 학교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에서 이 같은 설정들이 흔하게 활용되곤 했지만, 드라마들이 장르적 재미 강조하기 위해 수위 높이는 사이, 대사의 적나라함 또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tvN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가 방영됐었다.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맞서는 과정 통해 쾌감 선사하는 동시에, ‘돈’에 대한 ‘작은 아씨들’의 시선을 담아냈었다.
이에 이 드라마에서도 세 자매의 어려운 환경에 대한 여러 표현들이 담겼는데, 일부 네티즌들은 ‘작은 아씨들’이 담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에 씁쓸함을 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주인공 인주(김고은 분)가 “돈 있으면 뭐 사고 싶었어요?”라는 질문에 “겨울 코트? 가난은 겨울옷으로 티가 나요”라고 답하는 장면이었다. 회사 동료에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참는 걸 잘하길래”라는 지적을 받는 인주의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현실적이다’, ‘날카롭다’라는 반응과 함께 ‘가난에 대한 지나친 조롱’이라는 부정적 반응도 이어진 것이다.
물론 ‘작은 아씨들’이 이렇듯 현실적 표현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이에 세 자매를 향한 공감과 몰입을 바탕으로 후반부 반격에 대한 쾌감을 극대화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도 ‘돈’이라는 물질적인 것 앞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는 인물들 통해 메시지를 더욱 뚜렷하게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이것이 드라마 전체의 주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임을 잘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데, 최근 드라마들이 수위를 높여 자극적인 재미를 선사하는데 집중하면서 작품 전체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더욱이 ‘청담국제고등학교’의 경우 10대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만큼, 이 작품에 10대들이 더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 세심하게 접근했어야 할 작품이지만, ‘청담국제고등학교’는 후반부 추락 사건의 범인 찾기에 방점을 찍으면서 메시지 또한 흐릿해진 것이 사실이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크론병 환자 성규(김현목 분)를 향해 장인, 장모가 “이 병 유전도 된다면서 자네가 포기해 줘. 시작부터 남편 병 수발들게 만드는 꼴 못 본다”라는 막말을 쏟아내는 장면이 담겨 논란이 된 바 있다. 인물들 간의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인, 장모의 무례함을 다소 극적으로 보여준 것인데, 시청자 게시판 등을 통해 “크론병이 유전이라는 건 확실하지 않은 정보”, “크론병 환자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 것. 결국 제작진이 상처받았을 환자, 가족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닥터 차정숙’의 제작진이 “설명이 미흡했다”고 부족함을 인정한 것처럼, 의도가 나쁘지 않더라도 충분한 설명 통해 이를 설득해 내지 못하면 상처받는 시청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이 사례가 보여준 셈이다. 요즘의 드라마들이 자극의 정도를 높여가는 사이, 적나라한 표현들이 단지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창작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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