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처럼 한국도 ‘바이오클러스터’ 만들 수 있을까

신대현 2023. 7. 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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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인천 송도·경기 시흥…지자체 유치 경쟁 치열
정부 “바이오 생산 인력 교육 확대, 교육과정 개선”
“선진국처럼 ‘산·학·연’ 선순환 상호작용 원활해야”
쿠키뉴스 자료사진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제약바이오 선진국들은 이전부터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블록버스터 신약을 내놓으며 일찌감치 세계 시장을 선점했다. 그 바탕에는 우수한 연구진, 차별화된 기술력, 정부의 관심과 지원 등 여러 여건이 있었겠지만 제약바이오 업계는 ‘바이오클러스터’가 제약 강국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도 클러스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역·특성별로 다른 양상을 띤 채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특화된 한국형 바이오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을까. 업계와 전문가는 각각의 클러스터 특징에 맞게 발전시키되 경계를 허물고 교류하며 유기적인 관계를 다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5개 지역 ‘글로벌 바이오 캠퍼스’ 조성…송도캠퍼스 ‘컨트롤 타워’

바이오클러스터는 바이오기술을 중점으로 특정 지역에 관련 기업과 연구소, 대학, 투자자, 기관이 한 데 모인 산업 집적지를 말한다. 주요 산업 아이템들이 연결돼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바이오클러스터가 있는 곳은 미국 보스턴이다.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에는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와 하버드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연구소, 병원, 1000개 이상의 기업, 창업 연계 기관, 벤처캐피털(VC) 등은 물론 편의시설과 주거지들이 몰려 있다. 이곳에서는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도 이뤄진다. 메사추세츠 주정부는 상주 기업들에 조세 특례와 자금 융자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바이오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팔을 걷었다. 정부는 제약바이오 부문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오는 2030년까지 100조원에 달하는 생산 규모로 키워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클러스터 활성화 및 세제 혜택 확대 방안도 내놨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은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를 방문하면서 벤치마킹을 통한 한국형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클러스터를 육성하던 것에서 탈피해 입주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등을 강화하고, 각종 규제를 푸는 등 국가 차원의 종합 전략을 수립해 운영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정부가 방침을 보이자 지자체들도 발 빠르게 나섰다. 신흥 바이오클러스터로 떠오른 경기 시흥과 과천, 충북 오송, 인천 송도를 비롯해 경북 포항, 강원 홍천, 전남 화순 등 여러 지자체가 ‘세계보건기구(WHO) 글로벌 바이오 캠퍼스’ 유치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사업은 지난해 2월 WHO가 대한민국을 ‘글로벌 바이오 인력 양성 허브’로 단독 선정하면서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공모 사업이다. 글로벌 바이오 캠퍼스는 중·저소득 국가 바이오 생산 인력에 대한 교육훈련을 수행하는 교육시설이다.

공모 결과 인천 송도, 경기 시흥, 충북 오송, 전남 화순, 경북 안동 등 5개 지역이 최종 후보지로 확정됐다. 앞으로 이들 5개 지역 캠퍼스가 협업해 바이오 인력 양성 허브 운영에 참여하고, 연간 2000여명의 교육 수요를 분담한다. 5개 캠퍼스 모두 올해 내 조성 부지 결정과 운영 주체 구성을 완료한 뒤 내년부터 구축에 들어간다. 5개 캠퍼스의 컨트롤 타워 역할은 송도 캠퍼스가 맡는데 이 때문에 송도에 이목이 쏠린다.

송도에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집결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양대 산맥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을 필두로 SK바이오사이언스와 롯데바이오로직스가 둥지를 틀 준비를 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송도에 글로벌 연구·공정 개발(R&PD)센터를 오는 2025년 상반기 완공할 계획이다. R&PD센터가 완공되면 현재 경기 판교에 위치한 본사와 연구소 등을 모두 송도로 이전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지난달 20일 롯데지주, 인천광역시,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4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30억 달러(한화 약 3조8600억원)를 투자해 송도에 36만 리터의 위탁개발생산(CDMO) 기반을 마련한다.

송도와 더불어 시흥시도 떠오르는 별이다. 시흥시는 배곧신도시에 들어설 예정인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교병원을 중심으로 배곧지구의 대규모 가용 부지를 활용한 의료바이오 혁신생태계를 조성하는 청사진을 그렸다. 

배곧은 경제자유구역(기업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는 지역)에 포함돼 있어 산업 활용도가 높고, 시흥스마트허브의 스마트기술과 바이오산업의 연계도 가능하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또 KTX 광명역, 신안산선 등 철도교통과 촘촘한 고속도로망을 들며 접근성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정부는 글로벌 바이오 캠퍼스를 중심으로 지역별 바이오클러스터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황승현 복지부 글로벌백신허브화추진단장은 “이번에 구축되는 글로벌 바이오 캠퍼스가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WHO와도 협의하겠다”며 “대한민국이 백신, 치료제 등 바이오 제품의 공평한 접근성 보장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생산 인력의 교육을 확대하고, 교육 과정을 개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각기 다른 클러스터 연계 과제…“‘산·학·연·정’ 관계 강화돼야”

업계도 기대감에 부풀었다. ‘산·학·연·정’(기업·대학·연구기관·정부)이 함께 협력하는 바이오클러스터가 제약바이오 산업을 이끌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지역·특성별 클러스터를 어떻게 연계할지는 과제로 지목했다.

업계 핵심 관계자는 “단일 기업이 독자적인 투자와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저물었다”며 “산·학·연·정의 경계를 허무는 바이오클러스터 구축은 바이오 혁신 생태계 조성에 필수적인 상황이 됐다”고 했다.

이어 “경기 판교는 IT산업, 대전 대덕은 연구단지, 강원 원주는 의료기기, 인천 송도는 대규모 생산시설 등 현재 우리나라 클러스터는 지역·특성별로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인다”며 “각 클러스터 특징에 맞게 발전시키고 앞으로 산·학·연·정의 융합이 강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국내 기관과 보스턴의 장점을 합쳐 바이오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라며 “연구개발, 제품 상업화, 창업, 투자 등에 있어 지속가능한 지역별 클러스터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클러스터가 완벽히 자리 잡은 선진국처럼 국내 클러스터가 성공하려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등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은 물론 지역 내 관계 기관들 간 선순환 구조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짚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선진국들의 바이오클러스터는 인허가, 전임상시험, 상업화 등 전 과정의 생태계가 잘 조성돼 있다”며 “보스턴 클러스터의 경우 지난 1980년대부터 MIT, 하버드대, 지역 명문대 등에 바이오 전공 인재들이 모이고 제약사들이 이들을 고용해 신약 개발에 이어갔다. 지역 내 병원들은 임상실험 인프라를 제공하고, 수익을 다시 연구소와 의료기관에 지급해 선순환 구조가 일어나는 산·학·연 상호작용이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은 사업하기 좋은 곳에 몰리기 마련이다. 산업 집적지로 자리를 잡으려면 유통이 원활한 입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전문 인력을 수급할 수 있는 교육기관 등 인프라 조성이 수반돼야 한다”며 “기업들은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협력)에 대한 전향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며, 정부는 클러스터 내에서 선순환이 일어나도록 기업들 간 소통 하에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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