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출입 안되는 분기점이 특혜?…팩트 외면한 '양평고속道' 논란 [현장에서]

강갑생 2023. 7.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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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원희룡 국토부장관(가운데)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의 중단을 발표했다. 뉴스1
서울~양평고속도로의 노선 변경안을 둘러싼 정부·여당과 야당 간 충돌이 점입가경이다. 명백한 특혜니, 오염된 진실이니, 선동 프레임이니, 백지화니 자극적 언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여권에선 재추진 논의까지 조심스레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가장 중요한 팩트 확인과 객관적 판단을 근거로 한 건전한 논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제기된 특혜 의혹이 신빙성이 있는지를 꼼꼼히 가려내야만 애꿎은 주민들이 어이없는 피해를 보는 걸 막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우선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이후에 노선이 바뀌는 사례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야당의 주장은 맞는 걸까.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예타에 제시된 노선이 이후 추진과정에서 바뀌는 경우는 많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백지화한다고 오염된 진실이 사라지겠느냐"고 말했다. 연합뉴스


유 교수는 예타와 타당성 조사에 경험이 많은 데다 야권의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교통공약 수립에도 관여한 전문가다. 유 교수는 “예타 노선은 대략적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타당성조사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치면서 보다 효율적인 노선으로 수정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도 유사한 설명을 내놓고 있다. 1999년 이후 신설이 추진된 고속도로의 타당성 완료 건수는 24건이며, 이 가운데 14개 노선의 시·종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60% 가까이 타당성 조사 때 노선 변경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관련 자료가 공개돼 있으니 야당 등에서 이를 검증하기는 어렵지 않을 듯싶다.

게다가 노선 변경도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예타 이후에 노선 변경 등 여러 이유로 수요가 크게 줄거나 당초 계획 대비 사업비가 20% 이상 증가할 가능성이 생기면 기획재정부의 타당성 재조사를 거쳐야만 한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 추진이 안 된다.

서울~앙평고속도로 예타안과 대안 비교. 자료 국토교통부


예타안과 국토부가 마련했다는 대안 중 어느 노선이 더 효율적일지도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예타안은 하남시~양평군 양서면을 잇는 길이 27㎞의 왕복 4차로로 사업비는 1조 7695억원이다. 분기점(JC) 3개와 나들목(IC) 3개가 생기는 데 양평군에는 IC가 설치되지 않는다. 한강을 건너는 다리는 2개다.

하남시~양평군 강상면을 연결하는 대안은 길이 29㎞의 왕복 4차로로 사업비는 960억원 늘어난 1조 8661억원이다. 분기점은 3개로 같지만, 나들목은 강하IC (양평군) 신설이 포함돼 4개로 늘어난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1개로 줄었다.


얼핏 수치로만 보면 대안이 길이가 2㎞ 늘어나고 사업비도 1000억원 가까이 증가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상 교통량을 보면 예타안은 하루 평균 1만 5834대지만 대안은 2만 2357대로 6000대가량 더 많다. 교통량 흡수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또 종점 변경에 따른 추가 사업비는 140억원이고, 나머지 820억원은 시점부의 터널 연장과 IC 위치 변경에 들어가는 돈이라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게다가 대안 노선은 상수원 보호구역과 철새도래지 등을 지나는 구간이 짧고 한강 교량도 1개여서 상대적으로 환경보호에 더 유용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면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종점 변경은 특혜가 맞는 걸까. 이를 판단하려면 정치권에선 ‘종점’이란 말로 뭉뚱그려서 표현하지만, 종점에 들어서는 게 IC인지 분기점인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의혹이 제기된 김건희 여사 일가의 토지와 종점부 위치. 자료 국토교통부


흔히 종점 하면 승객이 타고 내리거나, 차량이 들고 날 수 있는 시설이 있는 지점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선 상황이 전혀 다르다. IC는 차량이 진·출입할 수 있는 곳으로 철도로 치면 기차역과 마찬가지다. 버스라면 정거장인 셈으로 인근 주민들로선 환영할 시설이다.

반면 분기점은 고속도로와 고속도로가 서로 만나고 통과하는 곳으로 고속도로 안팎으로는 진·출입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주변 지역에선 소음과 분진 피해만 심해질 수 있다. 수도권에 있는 호법분기점과 신갈분기점을 떠올리면 된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라도 종점이 변경되면서 IC가 설치된다면 주변에 땅을 가진 특정인을 위한 특혜를 준거라는 주장이 나올 만 하다.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훨씬 편리해진다면 분명 땅값 상승 등 혜택을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속도로 진·출입이 안 되는 데다 소음만 더 커지는 분기점이 들어서는 걸 특혜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철도로 치면 두 세 개 노선이 만나는 탓에 열차 운행량이 크게 증가해 더 시끄러워졌지만 정작 열차를 타고 내릴 역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면 민원 대상이 되기에 십상이다.

나들목과 분기점 비교. 자료 국토교통부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관료는 “국토부 혼자서 하는 사업도 아니고 서울시, 하남시, 광주시, 양평군 등 많은 지자체가 얽힌 사업에서 국토부가 특정인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노선을 바꾸는 게 가능하겠느냐”고도 했다.

앞서 열거한 쟁점들만 제대로 검증하고 따져봐도 특혜설의 신빙성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야당은 정치적 셈법으로 무조건 특혜설만 외칠 게 아니라 다시 한번 객관적인 사실을 살펴봐야 한다. 정부와 여당 역시 정치적 반격 만을 노려서 섣부른 사업 백지화나 중단을 밀어붙여선 곤란하다.

서울~양평고속도로는 2008년 민간에서 처음 건설을 제안했을 때부터 따지면 15년 가까이 이어져 온, 지역주민들에겐 오랜 숙원사업이다. 이런 사업을 팩트를 외면한 정치판 이전투구로 망가뜨려선 정말 곤란하다.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은 팩트로 말하고 팩트로 따져야 한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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