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것이 최고?! 랜선 집사가 랜선 동물을 사랑하는 법
이윽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랜선 집사’들은 ‘랜선 동물’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걸까. 갑수목장>
귀여운 것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것은 자명한 명제다. 1초 만에 시선을 끌어야 하는 숏폼의 세상에서 귀여움만큼 내세우기 좋은 게 또 있을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릴스의 홍수 속에서 눈에 자주 띄는 것은 아이돌과 동물 릴스다. 그중에서 가장 호불호 없이, 부담 없이 가볍게 잘 팔리는 것이 동물 콘텐츠다. 왱알왱알 말대답하는 고양이, 사고 치고 눈알을 도르르 굴리는 강아지, 대나무를 질겅질겅 터프하게 씹는 판다…. ‘랜선 집사’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직접 키우는 부담을 덜며 정기적으로 오래 한 동물을 지켜볼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물은 말을 할 수 없다. 즉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매개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인간은 그렇게 자신의 반려동물 감정을 해석하고 캐릭터를 만들며 대변한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쇼츠 속에 이 ‘펫플루언서’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영특한 동물일까, 귀엽고 사랑스럽고 영특함을 연출하는 인간일까? 동물들에겐 카메라가 무엇인지, 어떻게 연출되고 편집되는지에 대한 인식이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채널 혹은 계정들은 늘 아슬아슬하게 윤리의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돈이 끼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백호를 팔로하지 않아도 SNS를 한다면 누구나 백호를 알았을 것이다. 백호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지에서 팔로어 86만을 거느린 스타였다. 잘생기고 똑똑한 순종 웰시코기 백호는 팬미팅을 개최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유려한 문장력과 능숙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진 백호의 반려인, 일명 백호 누나는 백호를 모델로 한 달력이나 치약 등 다양한 MD 상품을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유기견 단체에 기부 혹은 후원을 하며 선행의 이미지를 쌓았다. 설마 그런 백호 누나에게 앞선 펫플루언서들의 몰락이 겹쳐질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시작은 다발성 골수종에 걸린 백호의 치료비를 위해 백호 누나가 직접 제작한 MD 상품이라며 옷과 가방 등 잡화를 팔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랜 세월 백호를 지켜보며 호감을 지녔던 수많은 이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병을 이기지 못한 백호는 곧 세상을 떠났고, 백호 누나는 백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백호가 동생을 물어다주는 꿈을 꾸었다며 새끼 순혈 웰시코기인 태풍이를 입양해 왔다.
문제는 태풍이를 데려온 과정에서 터졌다. 백호 누나는 태풍이가 유기된 웰시코기의 새끼라고 했지만 모견은 짖음 방지 장치를 끼고 있었고, 울타리에 갇혀 있었으며, 어떤 정황에서 봐도 전문 브리더에게 순혈 웰시코기를 분양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서막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직접 제작했다는 MD 제품이 다른 플랫폼에서 먼저 판매된 기성품이라는 것, 보호소에 기부한 용품들이 품질이 낮은 저가 제품에 불과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MD 수익금이 얼마였고 백호 치료비로 얼마나 쓰였는지는 오리무중이었다. 엎친 데 덮쳐, 백호가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난 뒤 브랜드와 함께 하는 팬미팅을 했으며, 개복수술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유튜브에 샴푸 광고차 목욕하는 영상을 업로드했고, 투병 중이던 와중 ‘이웃집 백호’의 상표권을 출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그리고 백호의 모든 계정은 사라졌다.
여기서 떠오르는 또 다른 펫플루언서가 있다. 택배 기사와 함께 다니는 몰티즈로 유명했던 경태다. 택배 차에 동승해 다니던 경태는 한 아파트 주민의 괴롭힘을 받으며 화제가 됐고, 유명세를 탄 뒤에는 CJ대한통운 명예 택배 기사 1호가 됐다. 일명 경태 아빠는 각종 예쁜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경태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쏠쏠한 인기몰이를 했는데, 어느 날 경태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태 아빠와 그의 여자 친구는 6억원 넘는 후원금을 갈취한 후 도피했고, 각각 징역 2년과 7년을 선고받았다(여자 친구가 SNS를 관리하고 자신의 계좌로 후원금을 입금받았기에 더 무거운 형을 받았다). 그토록 많은 랜선 집사의 사랑을 듬뿍 받던 경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런 논란에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었던 건 약 30만 명의 구독자를 지녔던 유튜브 채널 〈갑수목장〉이다. 수의대생이 운영하는 채널로 알려졌던 이 유튜브엔 수많은 고양이와 강아지, 햄스터가 출연했는데 채널 운영자가 주장한 대로 유기된 고양이를 구한 것이 아닌, 유튜브용 새끼 고양이들을 구매했다는 게 밝혀졌다. 후원금을 사적으로 운용한 것은 당연하고, 지속적으로 학대하고 사망에 이르게까지 한 동물들이 있음이 드러났다. 〈갑수목장〉에게 후원금을 보냈던 네티즌은 사기 및 횡령을 이유로 〈갑수목장〉 측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인플루언서는 자신을 내세워 돈을 번다. 그러나 펫플루언서는 동물을 내세워 돈을 번다. 그런데 어떤 펫플루언서는 그 달콤함에 못 이겨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기도 한다. 이런 비극에 희생되는 것은 우리의 후원금에 앞서 이용당하는 동물들이다.
펫플루언서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랜선 집사의 시선으로 돌아오자. 카메라 앞에 선 동물의 사랑스러움을 간편하고 편리하게 소비하는 우리에겐 아무 책무가 없을까? 그저 몇 초간의, 몇 분간의 귀여움을 누리기만 하면 될까? 만드는 이에게도 윤리가 있다면 보는 이에게도 윤리가 있다. 소비를 지양해야 할 펫플루언서의 몇 가지 옵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로, 작위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펫플루언서를 피할 것. 흰자위를 보이며 눈치 보는 푸들이나, 작은 위협에도 쌀알만 한 이빨을 드러내며 그르렁거리는 치와와, 마구 짖어대는 몰티즈를 웃기고 귀엽다며 소비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선 소형견의 ‘귀염뽀짝’한 사나움을 보여주기 위해, 인간에겐 우스워 보일지라도 분명 그 개에게는 이빨을 드러낼 정도의 스트레스를 준 것이다. 그 밖에도 어떤 동물의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작위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유튜브들은 특히 피하는 게 좋다. 이런 유튜브는 아주 교묘하게 포장돼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일견 귀여워 보이지만 내가 지금 어떤 동물의 스트레스 상황을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볼 것. 두 번째로, 성견이 아닌 새끼만을 들이거나 품종견과 품종묘만을 보여주는 채널은 피하자. 동물권만 낮추는 인간이다. 마지막으로, MD 상품을 자주 판매해 기부하거나 후원금을 받아 병원비로 썼다고 하는데, 정산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펫플루언서를 당장 구독 취소하자. 당신의 돈이 동물의 간식값으로라도 쓰였으리란 보장이 없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나아가 이건 아기에게도, 때론 미성년 아이돌에게도 통용되는 윤리이기도 하다. 말 못 하는 아기에게 촬영 동의를 받을 수 있을까? 사실 모든 베이비 콘텐츠는 동의받지 않은 콘텐츠다. 아직 성인만큼의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한 미성년 아이돌 또한 그런 상황을 겪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만드는 사람들과 보는 사람들 모두에게는 윤리가 필요하다. 동물권이 높아지면 인권이 높아지고, 인권이 높아지면 동물권이 높아지는 인지상정의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때 그 귀엽던 경태는 어디에 있을까? 랜선 집사들에겐 지금도 또 다른 경태들이 있음을, 그들을 지켜주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클릭 한 번일 수도 있음을 잊지 않고 오늘도 유튜브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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