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국립묘지 기록 삭제한다는 윤석열 정부, 수상하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지난 5일 백선엽씨의 동상이 세워졌다. 동상은 2분30초 간격으로 360도 회전하도록 제작됐다. |
ⓒ 조정훈 |
백선엽 동상 건립에 국비를 투입하고 동상 제막식을 거행한 윤석열 정부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백선엽을 전쟁영웅으로 띄우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그의 친일을 지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동상 제막식이 거행된 지난 5일,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은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 기록에서 친일 행위 부분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그는 6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도 동일한 계획을 재차 언급했다. "마무리 수순"이라며 "곧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발언했다.
▲ 본문에 인용된 백선엽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 |
ⓒ 국립현충원 |
박민식 장관은 이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며 백선엽의 죄과가 별것 아닌 듯이 발언했다. 그는 "공무원이 국립묘지 사이트에 기재를 하려면, 자기 재미로 자기 취미로 기재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럼 사회주의 활동한 사람은 왜 사회주의 활동했다고 기재를 안 하고, 또 나아가서 음주운전 전과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독립운동을 했거나 또 전쟁영웅이다 하지만 음주운전 전과로 감옥에 간 적이 있다고 칩시다. 왜 그러면 기재를 안 합니까?"
또한 박 장관은 백선엽이 친일을 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분은 친일파가 아니에요"라면서 "제가 제 직을 걸고 이야기를 할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보증했다.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1월 발간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 제4-7권 백선엽 편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협력하였고",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고 백선엽의 범죄사실을 적시했다.
보고서는 백선엽의 활동 범위가 만주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베이징 인근인 러허성(열하성)을 넘어 중국 대륙을 관통하는 작전에까지 투입됐다고 말한다. "간도특설대원으로 일본군의 대륙타통작전의 일환으로 열하성 넘어 이른바 기동(冀東)지구에 파견되어 토벌 활동에 종사"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백선엽의 이러한 행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0호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 이상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한다"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대통령 소속 위원회가 법률에 근거해 친일파로 규정한 인물을 두고 박민식 장관은 장관직까지 걸면서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소규모이면서도 군기가 잡혀 있는 부대였기에 게릴라를 상대로 커다란 전과를 올렸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 대전현충원에서 찍은 백선엽의 묘. |
ⓒ 김종성 |
지난 5월 18일 <한겨레> 인터뷰에선 "보훈처장이 되고 나서 많은 자료를 보고 학자들과 토론도 하면서 내가 이승만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이승만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한 박 장관은,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는 백선엽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가 공부를 해보면 해볼수록 이분은 친일파가 아니에요"라며 백선엽에 관한 깨달음을 소개했다.
그런 깨달음을 근거로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백선엽 자신이 회고록에서 밝힌 사실까지 뒤엎기는 힘들다. 회고록 집필 당시의 정신 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었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백선엽이 자인한 사실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현충원 안장 기록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부분을 삭제하려면, 회고록이 허위라는 점부터 입증해야 한다.
이승만과 백선엽 띄우기... 윤석열 정권의 의도는 무엇일까
윤석열 정부가 백선엽과 함께 적극 띄우는 이승만 정권 때도 지금과 유사한 장면이 있었다. 윤 정권이 친일 군인 백선엽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듯이, 이승만 정권 역시 친일 경찰 노덕술(1899~1968)을 거리낌 없이 비호했다.
백선엽처럼 노덕술도 항일 투사를 잡으러 다녔다.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악질 경찰로 이름을 날렸다. 부산제2상업학교 재학 중에 독립운동을 했던 김규직(1909~1929)은 그에게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20세 나이로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노덕술은 해방 후에는 친일 청산 기구인 국회 반민특위 관계자들뿐 아니라 저명한 독립운동가들까지 암살하려 했다. 그중에는 신익희, 지청천과 더불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조부인 김병로도 끼어 있었다.
그런 노덕술이 1949년 1월 25일 반민특위에 체포되자, 이승만 정권은 구명운동에 신속히 착수해 성과를 거뒀다. 그를 감옥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육군본부 제1사단 헌병대장, 제2육군범죄수사단 대장, 제15육군범죄수사단 대장 등의 공직에도 앉혔다. 면죄부 부여를 통해 노덕술의 친일 혐의를 지워주려 했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노덕술을 구명한 것은 친일청산을 두려워하는 보수세력과 경찰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이 정권은 노골적이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노덕술 체포 다음날에는 김상덕 위원장을 비롯한 반민특위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노덕술 석방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뒤이은 2월 2일에는 대통령 담화까지 발표했다. 친일 청산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담화였다. 1949년 2월 3일자 <동아일보> 1면 하단에 실린 담화문에 따르면, 이승만은 "왕사(往事)를 먼저 징계하기 위하여 목전의 난국을 만든다면, 이것은 정부에서나 민중이 허락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거지사인 친일행위를 처벌하려고 경찰 출신들을 잡아가면 난국이 조성될 것이라고 위협했던 것이다.
그해 2월 19일 자 <조선일보> 2면 우상단에 보도된 대통령 기자회견 내용에 따르면, 기자가 "어제 국회에서 론의된 바에 의하면 대통령이 노덕술을 내주라 하였다니 그것은 사실인가?"라고 묻자 이승만은 "사실이다"라고 답했다. 대통령이 친일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월권을 행사한 게 사실이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말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추가 질문에 대해 그는 "나중에 서면으로 발표하겠다"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정권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친일파를 옹호하는 것은 위험한 신호였다. 1948년 하반기부터 진행된 친일 청산 작업이 위태해지리라는 신호이자 친일 보수세력의 대반격이 개시되리라는 조짐이었다.
거듭되는 담화로 반민특위를 위축시키는 동시에 친일 보수진영을 고무시키던 이승만 정권은 극우 시위대가 반민특위 본부를 공격한 지 3일 뒤인 1949년 6월 6일 경찰 병력을 파견해 반민특위를 습격했다. 반민특위 활동은 그해 8월 사실상 중단됐다. 이승만 정권의 노덕술 비호가 보수세력을 결집시키고 친일 청산 추진 세력을 공격하는 단계로 연결됐던 것이다.
박 장관은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개인적 학습과 깨달음의 결과임을 강조하지만, 그가 이승만을 띄우고 백선엽을 부각시키는 것이 정권 차원의 기획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국가보훈부가 띄우는 이승만은 친일 청산을 훼방했고 백선엽은 친일을 했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사람들을 집요하게 띄우는 것이 단순히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친일 청산 등 과거사 청산 작업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새로운 단계를 밟아나갈 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련 기사]
이런 사람이 현충원에 묻혀 있습니다 https://omn.kr/22srf
윤석열 정부가 이순신·강감찬 장군 얼굴에 먹칠 하고 있다 https://omn.kr/24o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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