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을 대하는 언론의 '이중적 태도'

김홍규 2023. 7. 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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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 사태를 지켜보는 불편함

[김홍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발언으로 갑자기 수능과 사교육이 '공공의 적'이 됐다. 대형 학원들은 세무조사도 받았다. 현직 교사와 사교육 유명 강사들이 연계된 '사교육 카르텔' 관련 기사가 언론 지면을 채운다.

그런데 궁금하다. 언론은 윤 대통령과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킬러 문항' '사교육 폐해'를 말하기 전까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아래 그래프는 2022년 7월 8일부터 2023년 7월 8일까지 1년 동안 '킬러 문항 사교육'이라는 단어로 검색한 언론 기사량이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BigKinds)를 이용했다. 11개 중앙일간지를 대상으로 했으며, 모두 695건이 검색됐다.  
 
▲ 킬러 문항 사교육 관련 언론 보도 건수 2022년 7월 8일부터 2023년 7월 8일까지 1년 동안 ‘킬러 문항 사교육’이라는 단어로 '빅카인즈'(BigKinds)에서 검색한 결과이다. 기사의 절대 다수가 6월 15일 이후 쏟아졌다.
ⓒ 빅카인즈
 
그 가운데 올해 6월 15일부터 7월 8일 사이 기사가 673건을 차지했다. 96.83%다. 보도량에만 차이가 있을 뿐 '사교육'이라는 단어로 검색한 결과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여러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윤 대통령의 이른바 '킬러 문항' 관련 공식 언급은 6월 15일 이주호 교육부장관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시작됐다. 사교육과 '킬러 문항' 관련 언론 보도가 갑자기 늘어난 시점도 6월 15일부터다.

'교육 경쟁'을 오랫동안 강조했던 한 신문은 지난 6월 사설에서 '대학 서열화 해소'를 언급하기까지 했다. '사회 병리 현상 치유' 같은 단어나 유체이탈 화법, 교육과 저출생의 연결 등이 걸리기는 한다. 그러나, 이 신문의 기존 태도를 생각하면 이 사설의 주장은 제법 파격적이다.
 
"지난 3월 나온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들이 1년간 학원이나 과외, 인터넷 강의 등에 쓴 돈이 무려 26조원에 육박했다. (중략) 사교육 지옥은 너무나 지나친 입시 경쟁이 낳은 것이기도 하다.

(중략) 외국에서 한국의 이런 교육 현실을 '압력 밥솥'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학생 학부모를 압력 밥솥에 넣고 찌는 것 같다는 것이다. (중략) 학생들 역량이나 우리나라 학문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도 없다. 사교육은 치유 불가능한 질병이 아니다.

(중략)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강력히 추진하는 한편으로 지나친 대학 서열화의 해소 등 교육 혁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들도 과감하게 문호를 열어 사회 병리 현상 치유에 동참해야 한다." - <조선일보> 2023년 6월 17일 인터넷판 사설, '교육 지옥' 해소 못하면 저출생 극복 불가능하다 )
 
이 신문은 7월 8일 염재호 태재대 총장을 인터뷰한 기사 <염재호 "미 명문대는 SAT 만점도 떨어뜨려... 수능 체제 바꿔야">도 실었다. 점수 1점 차이가 '능력' 차이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기사 제목은 무척 자극적이다.
 
▲ 조선일보 염재호 총장 인터뷰 기사 조선일보는 7월 8일 염재호 태재대 총장을 인터뷰한 기사 <염재호 “미 명문대는 SAT 만점도 떨어뜨려...수능 체제 바꿔야”>를 실었다.
ⓒ 조선일보
우리 언론이 언제부터 입시 경쟁과 '학벌 지상주의'로 고통받는 대한민국 교육 문제에 이렇게 관심을 보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치열한' 관심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제는 지긋지긋한 우리나라 대학 입시 경쟁을 완화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나는 비관적이다. 대통령이 또 다른 지시를 하거나 새로운 사회적 이슈가 생기고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면 관심은 차갑게 식을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다음은 지난 6월 수능 모의평가 바로 뒤 언론 기사다. 6월과 9월 두 번에 걸쳐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치르는 모의평가는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담당한다. 최근 정부가 문제 삼은 시험도 바로 6월 수능 모의평가다.
  
▲ 6월 모의 평가 직후 언론 보도 6월 수능 모의평가 직후에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에 실린 관련 기사다. 공통으로 학원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다른 언론들도 비슷한 보도를 했다.
ⓒ 중앙일보 경향신문
 
이런 기사는 매년 반복됐다. 수능 전후나 모의평가 이후에는 어김없이 대다수 언론이 무슨 무슨 학원 원장이나 관계자를 인터뷰한 기사를 싣는다. 이른바 진보, 보수 가릴 것 없다. 사교육을 바라보는 언론의 기본 태도다.

모든 제도와 정책은 바꿀 수 있다. 특히 교육 분야는 완전히 뜯어고쳐야 하는 문제들이 쌓여 있다. 그러나 대통령 말 한 마디에 국가 정책이나 주요 제도가 흔들리고, 온 나라가 들썩이는 현상은 국가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바람직하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난 정부들도 이런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고교학점제를 추진하면서 수능 비율을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교사들 가운데 대형 입시 학원으로 가는 이들이 종종 있다. 유명 입시 학원이 아니어도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학원을 차리는 사례도 있다. 일부 교사들은 출발부터 대학원 파견, 교과서 집필, 수능 출제 참여, EBS 강의, 대형 입시 학원 진출 등 구체적 로드맵을 짜고 스펙을 쌓기도 한다.

개인의 선택이다. 그들을 공교육 밖으로 내모는 교육부와 사학 재단의 책임도 있다. 그런데 돈과 명성, 드러난 스펙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효율성으로 교육 효과를 재단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우리 언론이 일정 부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래는 2009년 교사를 그만두고 대형 학원으로 간 문제풀이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조선일보> 기사다. <조선일보>는 그리고 많은 언론은 자신들이 과거에 내보냈던 기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 교사 출신 학원 강사 인터뷰 기사 조선일보는 2009년 7월 8일 교사를 그만두고 대형 학원으로 간 강사를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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