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아기 품은 베이비박스가 묻는다…"왜 엄마만 처벌 받나요?"

이지영 2023. 7. 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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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주사랑교회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외부. 베이비박스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벨이 울리고, 24시간 돌아가며 상주하는 보육사와 사회복지사·상담사·자원봉사자 등이 뛰어나가 아이와 부모를 만난다. 김정민 기자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는 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영아’ 수사 의뢰 대상 중 ‘베이비박스 유기’가 상당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과연 아이를 맡긴 걸까, 버린 걸까.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따르면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영아’ 사건이 5일 오후 2시 기준 전국 시·도청에 664건이 접수됐다. 이중 598건(사망 10건, 소재 확인 48건, 소재 불명 540건)을 수사 중이다.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540명의 생사 여부 확인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경찰은 이 중 상당수 유령 영아를 베이비박스 유기로 확인했다.

경찰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통보받은 사례 중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경우, 일단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유기죄나 영아유기죄 등 혐의를 선별해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유기 과정에서 베이비박스 설치 기관과 상담한 사실이 확인되면 입건하지 않기로 했다.

국내 최초 베이비박스가 있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주사랑공동체. 김정민 기자


‘베이비박스 유기’ 대부분 집행유예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놓고 오는 건 원칙적으로 형법상 유기죄와 영아유기죄를 적용할 수 있다.

친부모가 아이를 충분히 양육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놓고 갔다면 유기죄가 성립한다.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그러나 정상을 참작할만한 이유가 있다면 유기죄보다 처벌이 가벼운 영아유기죄가 적용된다.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수위가 낮아진다.

주로 성범죄로 인해 임신·출산한 경우나 10대 미혼모, 극심한 생계 곤란으로 양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유기죄 대신 영아유기죄를 통상적으로 적용한다.

최근 법원 판례를 보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사례 중 대부분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다만 아이가 숨지지 않았다면 대체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2년 형이 선고됐다. 법원은 생모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을 꼼꼼히 살폈고, 베이비박스를 ‘도움의 손길이 닿는 곳’이라고 판단해 이곳을 선택한 것은 정상 참작 사유로 봤다.

무죄를 선고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7월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두 아이를 잇달아 맡긴 20대 친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베이비박스에 두고 갔다는 건 아동에 대해 보호를 의뢰한 것이고 담당자와 상담을 거쳐 아이를 맡긴 건 ‘유기’가 아니라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긴 것과 다름없다는 취지다.

주사랑공동체에서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들을 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 나운채 기자


베이비박스, ‘유기’아니라 ‘보호’

유령 영아에 대한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둔 경우까지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양육을 할 수 없는 부모가 아이를 두고 떠난 것에 대해 범죄 여부를 따지기 전에 베이비박스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수사로 베이비박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지면 자칫 불법 입양이나 영아 살해 등 극단적인 범죄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 양승원 사무국장은 “많은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맡겨져 시설에 있거나 입양됐다. 즉 베이비박스로 인해 아이들이 보호되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이라며 “아이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환경에 유기하지 않고, 불법입양이라는 선택도 하지 않은 엄마들이 죄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엄마들은 생명을 살린 것”이라며 “처벌에 앞서 베이비박스에 맡길 수밖에 없던 엄마들의 사정을 좀 더 고려해서 영아가 유기돼 죽었거나 불법 입양을 한 경우에만 경찰 수사를 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양 사무국장은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여성들에 대한 경찰 수사로 많은 분들이 불안해하고 재단으로 연락을 주신 분도 있다”며 “수사 중인 경찰이 여성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집까지 찾아가기도 한다. 실제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던 여성에게 찾아와 ‘아이가 어디있냐’고 묻는 건 그분들에게 죽으라는 것과 다름 없다”고 했다.

또 양 사무국장은 엄마 혼자 책임지게 되는 상황을 중요한 문제로 짚었다. “아이를 여성 혼자 낳는 게 아닌데 출생신고와 유기죄 모두 여성이 책임진다. 아이를 낳게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 아빠도 똑같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부모가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보호출산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계속 될 전망이다.

병원에서 출산한 아이를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출생 신고하는 내용의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기 위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보호출산제’ 관련 특별법안은 아직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1년 뒤 출생통보제가 시행될 예정이지만 보호출산제가 함께 시행되지 못할 경우 출산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경우 병원 밖에서 위험하게 아이를 출산하거나 신생아 유기 등 학대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근본적으로는 미혼모 등 아이를 낳아 기르기를 망설이는 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는 지난 6일 이기일 복지부 1차관 주재로 ‘출생 미등록 아동 보호체계 개선 추진단’ 첫 회의를 열고 위기 임산부가 임신, 출산, 양육 전 과정에서 주거, 소득,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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