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스럽고 불편하지만…LP의 ‘맛’은 확실하죠” [없어서 못사는, LP③]
"케이팝 넘은 K-바이닐의 세계화 목표"
“(국내를 제외하고) LP 시장은 한 번도 죽었던 적이 없습니다.”
28년간 음반기획 및 제작으로 한 우물을 파온 최성철 대표는 2009년부터 LP(바이닐) 제작에 손을 걷어붙였다. 혹자는 ‘LP 시장은 죽었다’고 말했지만 학창시절부터 LP를 컬렉션 하던 많은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최 대표는 오랜 기간 이 업계에 몸담으면서 오히려 LP의 매력에 더 깊게 빠졌다. 흔히 최근의 LP 성장세를 두고 ‘LP의 부활’이라는 말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제가 메이저 음반사 업무를 시작했을 때, 전국의 도‧소매상에서 LP를 다 거둬들이고 CD가 처음 발매되는 시점이었어요. 그 어마어마한 양의 반품 LP를 수거하는 동시에 CD가 발매됐던 거죠. 그런데 저는 편리하지만 CD 규격에는 담아낼 수 없는 LP의 재킷 아트웍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 라이브러리로 차곡차곡 컬렉션을 늘려가며 수고스럽고 다소 불편한, 그 맛에 빠져있었죠. 사실 LP는 한 번도 죽었던 적이 없어요. 적은 발매 수량이지만 조금씩 신보들이 발매되곤 했으니까요.”
미국 닐슨 사운드스캔 시장동향 조사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2019년 LP가 1800만장 이상이 팔렸다. 판매량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래 최고 수치였다. 이후엔 LP와 CD의 매출이 비슷해지는 현상이 나타나더니 지난해에는 LP가 CD의 매출을 앞지르기까지 했다. 이와 함께 나타난 공급 부족의 문제는 최 대표를 움직이게 했다. 올해 1월 LP 전문 ‘제작소 화수분’을 설립한 것이다.
“‘화수분’의 사전적 의미는 ‘금은보화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단지’라는 뜻입니다. 케이팝을 포함한 LP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작해 내놓겠다는 의지가 포함된 네이밍이죠. 그간 LP를 해외에서 제작해오면서 전 세계적인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제작 리드 타임이 늘어지는 것을 경험했고, 소규모 레이블을 운영하는 저로서는 너무 힘들었던 이 상황을 타개할 방안이 필요했어요. 물론 시장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요.”
문제는 LP 제작소를 만들기 위해선 고가의 장비와 기술력을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초기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최근 제작소 화수분이 주주를 모집하는 지분참여형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크라우디에서 진행된 이 펀딩은 목표금액(약 9000만원)의 101%를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LP 제작 공장 설립은 진입 장벽이 높아요. 50만 유로가 넘는 장비 도입비용은 물론이고, 시설 임대차 및 인테리어 비용 등의 자금적인 부분도 만만치 않고요. 보다 중요한 것은 관련 제작 프로세스 경험이 풍부한 팀 전문 인력, 그리고 업계 네트워크도 중요합니다. 그간 적지 않은 시도가 있었고. 번번이 무산되었거나, 낙후된 프레스 머신으로 시작했던 곳은 망할 수밖에 없었죠. 제작소 화수분의 시드는 7억으로 시작했습니다.”
국내 시장에 LP 제작에 한계가 분명하다 보니 많은 가수들이 해외 제작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최 대표는 국내 연간 최소 200만장 이상의 LP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파악했고, 자체 추산으로 지난해 케이팝 LP 수요의 약 90% 가량이 해외 제작으로 빠져나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 LP 제작 시장의 한계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해외 발주 후 6~8개월, 혹은 그 이상까지도 걸리는 제작 리드 타임과 제작 초도수량이 많지 않다 보니 이를 감내야해 했죠. 제작소 화수분을 통해 제작 리드타임을 최소화하고, 고품질 소량 생산도 가능해짐에 따라 다양한 LP 콘텐츠로 시장을 선도해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기존 업체의 노후화된 시설‧장비로 인한 Q.C(Quality Control) 문제는 국내 LP 산업의 추가적인 성장에 큰 장애 요소이자, 극복해야 할 문제로 꼽았다. 이에 따라 제작소 화수분은 체코의 최신 LP 더블 프레스 머신을 도입해 일일 최대 2000장, 연간 30여만장 가량의 생산물량을 소화할 수 있고, 기존 6개월이 걸리는 제작 리드 타임을 최대 1.5개월로 줄이겠다는 각오다.
뿐만 아니라 파울러 어쿠스틱(DMM 커팅 스튜디오)과 블랙벨트 스튜디오(래커 커팅 스튜디오) 등 해외 최고 커팅 스튜디오와의 협업을 통한 커팅 및 스템퍼 제작, 제작소 화수분의 CTO인 백성호 이사의 독자적인 ‘프리즘 사운드’ 마스터링을 통한 아날로그 전문 마스터링과 릴 테이프(Reel-tape) 마스터링 서비스 등으로 최상의 퀄리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제작소 화수분 설립 첫 해인 올해는 계획된 방송사와의 협업 콘텐츠를 최대 6만여장 발매할 예정입니다. 축적된 노하우와 최신 설비를 통해 독자적인 품질로 시장에 어필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웃음). 내년부터는 제작소 화수분만의 네트워크로 엔터사들과의 본격적인 협업을 진행하려 합니다. 단순 외주 제작 및 라이센스 비즈니스 등 다양한 형태로 타진 중이기도 하고요.”
화수분의 이름 앞에 ‘LP 공장’이 아니라 ‘LP 제작소’의 이름이 붙은 건 이들의 신념을 보여준다. LP를 만듦에 있어서 단순히 ‘찍어낸다’는 개념이 아닌, 물건이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제작소’라는 네이밍을 사용한 것이다.
“케이팝을 넘어 ‘K-바이닐’의 세계화를 목표로 제작소 화수분을 설립했고, 긴 여정을 이제 시작하려고 하는 단계라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위 아 게임 체인저!’(We're Game Ghanger) 저희의 신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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