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저 사실 너무 더워서 반삭했습니다
전국에 폭염 특보가 발령되는 날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덥고, 습하고, 지치는 여름. 생업을 위해 땡볕에 나가 몸을 움직이거나, 무더위를 견뎌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박성우 기자]
▲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은 정말 덥다. |
ⓒ unsplash |
식당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어언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고깃집에서 단순 홀 서빙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간단한 요리와 설거지도 함께 해줄 수 있냐는 사장의 권유를 받고 단번에 주방에 들어섰다. 제대로 된 요리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내가 갖가지 사이드 메뉴들을 만들어 손님상에 내보내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주방에 들어섰던 10월에도 주방의 열기는 뜨거웠다. 각종 찌개와 요리를 조리하기 위해 분주한 화구는 물론이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식기에 묻은 양념과 기름을 지우기 위해 온수를 이용하기에 주방의 모든 공간에 열기가 가득했다.
당시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보며 사장은 "여름이 되면 고생깨나 하겠다"며 웃었다. 그때는 속으로 '과연 내가 여름까지 이 일을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나는 여전히 주 6일 식당 일을 하고 있고 지난 3월에는 사장이 고깃집 바로 옆에 우동집을 차리면서 알바생에서 매니저로 승격까지 됐다.
▲ 고깃집에서는 화구가, 우동집에서는 면 삶는 솥이 계속해서 열기를 내뿜는다. |
ⓒ 박성우 |
하지만 더위는 내가 알바생인지 매니저인지 아무 관심이 없다. 한여름의 고깃집 주방은 그야말로 찜통이다. 열기에 익숙할 베트남인 동료도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여름이 되니 곁들여 먹는 냉면의 주문이 많아졌는데 조리하면서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냉면 육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우동집 주방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면을 삶는 대형 솥에서 나오는 열기, 돈가스 등 튀김요리를 조리하는 튀김기에서 나오는 열기, 만두 찜기에서 나오는 열기 등 사방에서 열기가 나를 공략해 온다. 고깃집보다 훨씬 좁은 주방의 면적을 생각하면 오히려 고깃집보다도 더 더운 느낌이다.
주방의 무더위 앞에서는 머리카락도 골칫덩이에 불과하다. 지난주에 참다못해 반삭을 하고 출근하니 사장은 머리카락이 음식에 들어갈까봐 머리까지 밀고 왔냐며 추켜세웠다. 차마 더워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할 수 있는 나름의 자구책이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사장이 이 글을 못보길 바랄 뿐이다.
더위를 식히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주방을 나와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홀 공간으로 가는 것이다. 불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총 4대의 에어컨이 설정상 최저 온도로 억누른다. 불판의 열기가 없다면 되려 한여름의 냉골인 셈이다.
주방에서 나와 천국과도 같은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며 찬물 한잔으로 더위를 추스르고 있으면 본디 한여름에는 더운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그 이치를 피하고자 에어컨을 트니 자연이 망가지는 것도 당연지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나를 포함해 당장 더위를 피하고픈 사람들의 욕망 앞에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나마 눈치껏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나의 이런 푸념은 배부른 소리에 가깝다. 에어컨 바람은커녕 무더위에 완전히 노출된 채 일하는 실외 노동자들에게 더위는 곧 위험이다.
오늘도 더위와 함께 하는 일터로 가는 이들
지난다 6월 19일 경기도 코스트코 하남점 주차장에서 노동자 한 명이 근무중 쓰러져 숨졌다. 해당 마트의 주차장은 냉방 시스템이 열악하고 벽면 일부가 뚫려 있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됐다. 사망한 노동자는 주차장에서 카트를 옮기는 업무중이었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동료 직원들은 "마트가 냉방비 절약을 위해 에어컨 가동 시간을 정해놨으며 실외 공기순환장치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서울,경기 등 중부지방에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인 19일 서울 여의대로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
ⓒ 연합뉴스 |
어릴 적에 '공부 안 하면 더운 날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운 날 추운 데서 일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내가 지금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까닭이 공부를 안 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더운 날 더운 데서 일한다고 해서 사람이 쓰러지는 일을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자신의 저서 <폭염 사회>에서 폭염이 취약 계층에게 더욱 위험했다는 사실을 철저히 논증하며 폭염으로 인한 죽음은 기실 자연에 의한 것이 아닌 사회에 의한 것임을 규명했다. 어쩌면 '공부 안 하면 더운 날 더운 데서 일한다'는 말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더위 취약 계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확연히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더운 날 더운 곳에서 일해야만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여름의 시원한 일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다른 수많은 이들처럼 더위와 함께 하는 일터로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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