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김강우 "연기 지긋지긋하고 어려워도 사랑해"
박훈정 영화 '귀공자' 한이사役
21년 외길 원동력은 진정성
배우 김강우(44)는 한 때 사랑꾼이었다. 아내와 아이들 사랑이 지극해서 얻은 별명이었다. 사실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내 최고 미남으로 불릴 만큼 빼어난 외모와 연기력을 갖춘 유망주였다. 영화 '해안선'(2002)으로 데뷔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으면서 21년 동안 걸어왔다. 변주도 탁월했다. 멜로에서 액션으로, 선인에서 악역으로 다양한 배역을 갈아입었다.
김강우를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21일 개봉한 영화 '귀공자'(감독 박훈정)에서 마르코(김선호 분)를 집요하게 쫓는 재벌 2세 한이사로 분해 무시무시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시나리오가 단순해서 좋았다. 욕망의 지향점이 확실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를 꼬지 않으면서 속도감 있게 달려간다. 마지막에 각 인간의 욕망이 붙어서 충돌하는 재미도 있다. 박훈정 감독님 영화 중 가장 명쾌하고 재밌고 등장인물이 귀여웠다"고 말했다.
박훈정 '귀공자'에서 '폭군'으로…토양 된 신뢰
김강우는 박 감독과 '귀공자'에 이어 신작 '폭군'도 함께하고 있다. 그 이유로 '신뢰'를 꼽았다. 그는 "쉬지 않고 연이어 같은 연출자의 작품을 하는 건 위험부담이 있지만, 다른 느낌의 캐릭터를 연출하실 거라는 믿음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대본을 보고 걱정되지 않았다. 전작과 차별성을 두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한이사는 자신의 욕망 앞에 눈먼 캐릭터다. 오로지 직진이다. 죄책감 따윈 없다. 장애가 되는 건 무엇이든 손쉽게 제거한다. 마치 인간을 사냥하듯 가지고 노는 장면에서 악랄함이 극대화 된다.
김강우는 "한이사의 인물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다"고 했다. 이어 "이후 필리핀에서 또 다른 액션, 인물들과 만나면 어떨지 기대를 끌어올리고 긴장감을 조성해야 하는 장면이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제가 어색하거나 주저하면 안 되는 장면이라서 즐기는 마음으로 촬영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남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은 소시오패스"라고 바라봤다. 이어 "내 말이 곧 법이고,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어떤 일이든 쉽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 손까지 오니까 그저 골치 아프다, 똥파리가 끼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강우는 캐릭터 디자인 과정에서 동물을 대입해 분석한다고 했다. 이는 연기 이미지 트레이닝의 일종이다. 영화 '간신'(2015)에서는 늑대에서 착안했다.
그는 "한이사는 사자다. 갈퀴가 많이 달린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느낌,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이어 "어디서 봤을 법한 인물이나 캐릭터를 단순하게 만들지는 않는 편이다. 사적인 상황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에게서 착안하거나 동물에서 많이 따오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관객들은 영화가 재미없다고 말한다. 영화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가 더 무시무시해서다. 영화가 현실을 뛰어넘는 아이러니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이를 언급하자 김강우는 크게 공감하며 말을 이었다.
김강우는 "영화에서 소개할 만한 악당은 다 나왔다. 이를 현실이 뛰어넘는다. 10여년 전만 해도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새로웠는데 이제는 너무나 많지 않냐. 연기자로서도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악역에서 또 새로운 걸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기에 만족은 없다
만날 때마다 차분하고 조곤조곤한 모습이 한결같다. 그러다 연기나 작품 이야기에는 한 톤 높아지면서 말이 많아지는 김강우다. 작품 속 그는 한없이 착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악독해진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이를 묻자 그는 "배우에게 실제로는 어떤 성격이냐, 어떤 사람이냐고 물을 때가 가장 힘들다"며 웃었다. 이어 "예전에는 내 성격을 잘 몰랐다. 그런데 배우로 살면서 스스로 규정짓지 않고 싶은거다. 그러는 순간 어느 쪽으로 쏠려서 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강우는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다"며 웃었다. 이어 "개인사도 별거 없고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라며 재차 웃었다.
강산이 2번 바뀔 동안 연기를 업으로 삼으면서 다양한 얼굴을 오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선택받기 위해 연기를 쉬어선 안 된다고. 인기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배우로서 김강우의 길이 굴곡지지는 않았지만, 호수에 떠 있는 백조처럼 물 밑에서 발길질을 쉬지 않은 덕분에 오늘날에 이르렀다.
걸어온 길을 어떻게 느끼는지 묻자 그는 "썩 나쁘지 않게 하니까 20년을 했겠지만, 연기를 하면서 '배우로서 내가 잘하고 있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몰라서 용감하지만,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운 게 연기"라고 했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노력하는 과정에 비해 정상에 서 있는 순간이 짧다. 배우는 산봉우리는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반복한다. 그게 참 외롭다. 더 개선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벽에 부딪히는 순간도 온다. 연기가 지긋지긋하게 꼴 보기 싫다가도 내가 사실은 연기를, 배우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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