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떠나보낸 여자가 낯선 도시로 떠난 이유
[조영준 기자]
▲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스틸컷 |
ⓒ (주)디스테이션 |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지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김희정 감독의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마지막으로 폐막했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이야기 중 하나인 동명의 소설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갑작스레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의 아내 명지를 통해 남겨진 사람의 모습을 그려낸다.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명지의 시선으로만 꾸며져 있는 소설의 내용을 조금 더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완성할 수 있도록 각색했고, 영국 에든버러로 지정되어 있는 공간(명지가 회복을 위해 떠나는 장소)을 폴란드의 바르샤바라는 도시로 옮겨왔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바르샤바 곳곳에 애도를 위한 공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도시이기에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한다.
▲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스틸컷 |
ⓒ (주)디스테이션 |
사람의 목숨에 경중을 따질 수는 없는 일이지만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극 중 명지와 지은의 슬픔은 동일하면서도 조금 다른 무게를 갖는다. 동생을 원해서 잃은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사고에 가까웠다는 점에 놓여있는 지은의 슬픔과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개인의 선택에 놓여있는 명지의 슬픔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있어서다. 실제로 이 부분은 같은 유가족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지은이 명지에 대해 평생의 부채 의식을 갖게 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게 되긴 했지만 동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손을 건넨 사람.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그 선택으로 인해 평생의 슬픔을 얻게 된 명지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조그맣게 제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이 지은이다.
황망한 상실 이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침대에 누워 있는 신체적 모양으로 동일하게 그려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적어도 영화적으로는 두 사람의 감정이 다르지 않음을 시각적으로 먼저 제시하고 표현하는 방식이자, 슬픔의 모양이라는 것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그림이기 때문이다(지은의 경우에는 동생의 사고로 인한 충격 때문에 일어난 편마비 증상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회복에 대한 의지를 잃고 침대 위에서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모습도 오래 표현된다). 물론 두 사람이 누워있는 장면의 의미가 긍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과거의 시간 속에 여전히 발이 묶인 채로 슬픔과 고통을 계속해서 묻어가는 과정이며 이제 사라져 버린 존재만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시간에 더 가깝다.
03.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조금 다르다. 한 사람은 낯선 도시에서의 경험과 장면들을 통해, 또 한 사람은 곁에 남은 다른 사람의 애정과 도움으로 조금씩 회복해 간다. 명지 또한 자신이 향했던 도시에서 오래된 친구 현석(김남희 분)을 만나게 되지만 그를 통해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존재에 의한 회복은 아니라고 해야겠다. 동생의 친구인 혜수(문우진 분)의 적극적인 보살핌과 도움을 받게 되는 지은의 경우가 곁의 누군가로 인해 새로운 의지와 희망을 얻게 되는 쪽이다. 함께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세 사람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난 것도, 보육원에서 곧 내쫓길 상황에 놓인 지은을 혜수가 살뜰히 보살피는 것도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어느 쪽이든 이 모두는 누구에게나 과거의 상실이나 아픔이 있을 수 있고,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이를 딛고 나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고자 함이다.
▲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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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다음엔 뭐가 있을까?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남편 도경의 죽음을 바라보는 명지의 마음을 쇼팽의 심장에 얽힌 이야기와 도시가 2차 세계대전 속 바르샤바 봉기일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마음의 동일선상에 두고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는 지금 곁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순간적인 말과 행동이 아니라 시대를 거듭하는 세월 속에서도 잊히지 않고 기억된 존재에 의한 위로와도 같다. 그곳에 슬픔이 이제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나아가면서도 먼저 떠난 이들을 열렬히 기억하고 추억하는 장면에서 명지도 자신의 슬픔을 조금은 놓을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유서 깊은 애도와 기억의 공간 속에서, 실제로 마주한 도시의 추모 앞에서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내내 닿지 않던 지은의 연락이 이제야 명지에게 닿을 수 있게 되는 것 또한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명지가 자신의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는 동안 식음도 전폐하며 동생의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던 지은 또한 혜수의 보살핌 속에서 마음을 되찾기 시작한다. 재활을 시작한 지은의 마음이 담긴 편지가 명지에게 전해진다는 것의 의미는 두 사람이 이제 새로운 날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분간은 같은 어려움이 지은과 명지를 불현듯 찾아올지도 모른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에 여겨지는 자신의 모습이 항상 같을 수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명지가 마주했던 도시 전체의 추모 장면이 오래 마음 속에 남는다. 영화와 원작 소설 속에 동일하게 쓰인 문구,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떠나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의 표현처럼 이 작품은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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