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까지 터진 '조선 나이키'…힙한 MZ, 왜 이 운동화 꽂혔나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갑은 얇지만 사고 싶은 것은 넘치는 박영민입니다. 얼마 전 서울 홍대 거리를 걷다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신은 스니커즈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큼직한 F자 모양의 로고, 한물간 운동화인 줄 알았는데 돌고 돌아 다시 유행하리라곤 생각을 못 했거든요.
창립 이래 40여년간 한 번도 생산을 멈춘 적이 없었고, 젠Z 세대가 가지고 싶어 하는 힙한 운동화로 변모했습니다. 국산 스포츠화 브랜드 프로스펙스 이야기입니다. 오늘 비크닉에선 프로스펙스가 나이키와 아디다스 틈바구니에서 잊히지 않고 끈질기게 버틴 비결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조선 나이키, 미제 스니커즈를 인수하다
1992~2006년 만화 잡지 소년 챔프가 연재한 검정 고무신엔 60년대 전후 한국인의 생활상이 나옵니다. 구한말 수입된 고무신은 운동화가 유통되기 시작한 70~80년대까지 국민 신발의 지위를 지켰어요. 메이커 운동화를 가지지 못해 한이 맺힌 학생들이 하얀 고무신에 나이키 마크를 새긴 '조선 나이키'가 유행하던 시절이죠.
국내 고무신 연간 생산량은 1950년(16만 켤레)부터 1960년(1542만 켤레)까지 10년 만에 9548% 성장했어요. 한국전쟁으로 전국에서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노동력이 집중됐고, 원료를 확보하기에도 유리한 항구 도시 부산에서 고무신 공장들이 쑥쑥 큽니다. '왕자표' 고무신을 만들던 국제고무공업사도 그중 하나였어요.
1970년 후반부터 미국·유럽에서 유행하던 운동화가 수입되면서 고무신의 시대가 서서히 저뭅니다. 고무신 기업들은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세계적인 신발 업체의 OEM(주문자생산방식) 기업으로 탈바꿈했죠. 국제고무공업사도 국제화학, 국제상사로 사명을 바꾸고 포니·수페르가 등 운동화 생산에 뛰어들었어요.
프로스펙스와의 인연이 시작된 건 이때입니다. 위탁 생산하던 미국 운동화 브랜드 '스펙스(Specs)'를 인수해 리브랜딩했어요. 브랜드명에 프로(Pro)를 붙여 '프로 규격(Pro-Specs)'이란 새로운 제품을 직접 생산하기 시작한 거죠.
중국·대만·인니로…신발 산업 축이 바뀌다
호시절은 길지 않았습니다. 90년대부터 국내 신발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기 시작했거든요.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1953년 67달러 수준이었던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90년 약 886% 성장한 6601달러를 기록해요. 임금 수준이 높아지면서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이란 승부수가 사라졌죠. 60년대 주요 신발 생산국 일본의 인건비가 상승하자 한국이 대안으로 부상했듯, 중국·대만·베트남·인도네시아로 신발 산업의 축이 이동합니다.
회사 내부적으로 부침도 여러 차례 겪습니다. 1986년엔 모기업인 국제그룹이 강제로 해체되면서 한일합섬에 매각돼요. IMF 시기엔 한일합섬이 부도나면서 무려 8년간이나 법정 관리에 들어간 끝에 2007년 LS그룹에 인수됩니다.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뀐 것이죠.
진짜 위기는 따로 있었어요. 저가 국산 운동화 이미지에 사람들이 프로스펙스를 외면하기 시작한 거예요. '프로스펙스 살 바에 돈 좀 더 들여 나이키·아디다스 사겠다', '신고 다니기 부끄럽다'는 인식도 생겨요.
'프로스펙스 오픈런', 말이 돼?
11월 서울 여의도 더현대에 오픈한 팝업스토어에도 70년대풍 운동화 한정 판매에 5000여 명이 몰렸어요. 신발을 사기 위한 오픈런 행렬도 이어졌죠. 국산 운동화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이 이례적이란 평가도 나왔어요.
소비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지난달 21일 서울의 모 직영점을 찾았어요. 마침 신발을 사는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더니 "(프로스펙스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가성비도 좋고 신어 보니 편해서 샀다(김의진, 22세)"고 했어요. 또 다른 소비자도 "가격도 괜찮고, 레트로한 느낌이 평소에 즐겨 입는 스포티한 트레이닝 룩과도 가볍게 잘 매칭할 수 있을 것 같아 샀다(이사라·가명, 25세)"고 했어요.
오래된 것이 신선하다, 레트로의 역설
젊은 층에 42년 된 레트로 브랜드는 새로워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감성이 재밌거든요. 오히려 그 시절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신선하죠. LP 레코드, 아케이드 게임 등 슬로우 테크에 열광하는 트렌드와도 연관이 있어요.
프로스펙스는 2018년 젊은 층의 레트로 취향을 잡기 위해 과거 인기 제품을 복각한 오리지널 라인을 선보입니다. 2020년부턴 13년 만에 'F' 로고를 다시 쓰고 있죠.
운동화 시장의 복고 열풍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아디다스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4% 증가한 204억 달러(약 26조6000억원)를 기록했는데, 복고풍 운동화 '스탠스미스'와 '슈퍼스타'가 역주행한 것이 보탬이 됐다는 평가예요.
가성비를 추구하는 가치 소비가 늘어난 점도 프로스펙스 같은 레트로 운동화의 인기 요인이에요. 홈페이지에서 제일 판매율이 높은 신발들의 가격은 대체로 5만원에서 10만원 사이예요. 경기 불황으로 소비 심리가 쪼그라든 틈에 '가성비 운동화' 시장을 잘 공략한 것이죠.
예전엔 브랜드명만 보고 제품을 샀다면, 이젠 질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사는 시대가 온 겁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공격적 투자를 하는 명품과 가방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는 스트릿 캐주얼복 시장, 그리고 신소비를 진작하는 운동화 시장이 성장을 주도할 전망"이라고 내다봤어요.
레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단 프로스펙스 하면 떠오르는 대표 상품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나이키는 조던·에어포스·에어맥스, 아디다스는 슈퍼스타·삼바·가젤이 떠오르지만, '프로스펙스=이것'이 아직 없어요. 나이키가 조던 운동화를 열심히 키워서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했듯, 프로스펙스도 대표 제품을 키우는 게 시급해요.
주인이 두 번 바뀌는 와중에도 40여년을 꾸준히 명맥을 이어 온 참을성, 꺾이지 않는 마음만큼은 인정합니다. 최근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지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어요. 프로스펙스의 40년 역사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담은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이름의 브랜드북을 출시했죠.
"프로스펙스가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포츠 브랜드라는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십 년 동안 한국 대표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유지해온 전통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중에서
국산 운동화의 마지막 자존심, 프로스펙스의 부활을 한 번 기대해 봐도 좋을까요?
뱀발🐊: 한국인 발의 평균
한국인의 평균 발 길이는 몇 mm일까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인체 표준정보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을 통해 5~6년 주기로 이를 조사합니다. 사이즈 코리아(Size Korea)에서 자세한 데이터를 볼 수 있죠. 2020~2021년 8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세 이상 한국 성인의 평균 발 길이는 240mm로 집계됐어요. (남성 253.73mm, 여성 232.18mm) 남녀를 통틀어 모집단 9595명 중 최댓값은 297.1mm, 최솟값은 187mm로 나타났죠.
눈여겨볼 점은 양발의 길이가 다르다는 거예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 남성의 발 크기는 247.4mm(오른발)·247.6mm(왼발), 여성은 229.6mm(오른발)·228.1mm(왼발)로 나타났어요. 이 통계가 맞는다면 남성은 평균적으로 미세하게 왼발이 더 크고, 여자는 오른발이 더 크대요. 재밌는 사실이죠?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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