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낙법의 달인

2023. 7. 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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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두 다리로 설 수 있다. 그런데 요가원에만 가면 멀쩡한 다리는 내버려 두고 자꾸만 머리로 서라고 한다. “자, 이제 매트 뒤쪽으로 가셔서 머리 서기 3분 부동 유지해 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차마 거스를 수 없어 정수리를 바닥에 대고 두 팔을 지지대 삼아 공중으로 다리를 들어 올려 보지만 3분은커녕 1초도 채 버티지 못하고 꽈당 넘어지고야 만다. 선생님은 이런 내가 다치기라도 할 새라 잘 넘어지는 방법을 알려 주고 또 알려 주신다. 여기는 요가원인가 낙법 학원인가. 머리로 잘만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 보면 등허리는 물론 얼굴까지 빨개져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요가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천근만근 무겁게 하는 요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내향적인 우리 선생님은 열심히 가르칠 줄만 알 뿐 수강생에게 살갑게 대할 줄은 모른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 싫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수강생이 하나둘 요가원을 그만둘수록 나 혼자서만 수업을 받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간다. 적막한 요가원에 내 거친 숨소리와, 꽈당 넘어지는 소리와, 옷 비벼지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면 ‘이 부끄러움을 왜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아 요가에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요가원 문 앞에만 서면 과외받기 싫어하는 초등학생처럼 나도 모르게 울상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됐다. 그건 바로 선생님 역시 요가원에 오기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선생님이 나에게 귓속말로 고백한 건 아니다. 부동산 앱으로 동네 매물을 구경하며 눈요기를 하던 중 선생님이 요가원을 내놓았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우리 요가원 수업료에 수강생 머릿수를 곱해 보았다. 월세는 겨우 낼 수 있겠지만 선생님이 가져가는 건 거의 없겠다 싶었다. 요가원을 얼마나 빨리 정리하고 싶었으면 권리금도 헐값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매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사장님이 미쳤어요! 오늘부터 파격 할인! 권리금이 반값! 안 그래도 저렴한 권리금을 절반으로 낮춘 기록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 엄마가 전 재산을 긁어모아 자그마한 분식집을 차리셨단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이 오질 않았단다. 전기세가 아까워 에어컨도 틀지 못하고 찜통처럼 푹푹 찌는 가게에 엄마와 둘이서 앉아 있는데 그 시간이 지옥과도 같았다며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생님도 나와 단둘이 수업하는 동안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썰렁한 학원에서 홀로 수업받는 나를 대할 면목이 없어 어쩌면 나보다 더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막상 선생님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서운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고통뿐인 이곳을 벗어나 천국으로 가시겠다면 기꺼이 보내 드리리.

며칠 후, 한동안 방치돼 있던 요가원 SNS에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작별 인사일 거라 생각하며 아련한 눈으로 글을 읽는데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수록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운영에 서툰 제가 이곳에서 수련하며 배운 것을 나눌 수 있는 이유는 꾸준히 함께해 주시는 여러분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의 일상에 요가가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쭉 함께해요, 우리!’ 소상공인을 위한 컨설팅이라도 받았나. 아님, 건물주가 월세를 깎아 주기라도 했나. 그것도 아니라면 로또에라도 당첨된 건가! 이유야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일어서는 선생님을 보니 내 마음이 다 좋았다.

그런 선생님을 본받아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또 일어서며 머리 서기 맹연습에 돌입했다. 그렇게 수백 번쯤 넘어지고 거듭 일어서다 보니 어느새 두 발끝이 공중으로 향해 있었다. 비록 10초밖에 버티지 못했지만 1초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발전 아닌가. 선생님 앞에서 솜씨를 뽐낼 생각에 신이 난 나는 요가원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러나 오늘도 요가원에는 선생님과 나, 두 사람뿐이다. 게다가 나 역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머리 서기를 해 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당탕 넘어지고야 만다. 선생님도 나도 아직은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또다시 넘어진대도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제일가는 낙법의 달인이니까 말이다.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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