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하나하나, 장애인 부모님 떠올리며 정성다해 개발하죠”
지난달 28일 경기도 안산의 한 사무실. 청년 네 사람이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그중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토론을 이끄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휠체어에 앉게 됐다는 비장애인 영쎄오, 김강(32) 캥스터즈 대표였다.
캥스터즈의 공식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문장은 이 회사의 DNA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에이블 테크 기업’. 막연하게 대표 이름에 ‘강(kang)’이 있다는 점이 브랜드 네이밍으로 이어졌을 것이란 생각도 짤막한 기업 소개에서부터 깨졌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회사 이름을 고민하고 있을 때 미국 유학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찾아보니 유행어처럼 쓰이는 용어 중에 캥스터의 정의를 ‘기꺼이 무엇이든 시도하고 소중한 사람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내리고 있더군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훤칠한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이는 김 대표의 유년 시절 성장 환경은 훤하기보단 어두웠고 또렷하기보단 불투명했다. 청각장애인 아버지와 소아마비 지체장애인 어머니의 외동아들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적 불편함이 견고했던 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진 못했다. 자동차 생산 업체에서 40년여간 비장애인들과 차이 없이 자신의 직무를 소화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심사에 늘 지지를 아끼지 않으며 사랑을 주셨던 어머니 덕분이다. 이후 부모님께 더 아늑하고 편한 삶을 선물하겠노라며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나 신앙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험을 했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태권도 사범으로 생계를 유지했어요. 어느 날 격파 시범을 하다가 공중에서 추락하며 디스크를 다쳐 2개월 넘게 입원을 하게 됐죠. 그 후 1년을 재활에 쏟아야 했습니다.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돈도 빽도 없이 가진 거라곤 건강한 몸 하나인 인생인데 어떻게 그 하나를 뺏어가나 싶었습니다.”
납득되지 않던 고난의 시기에 전환점이 찾아온 건 김 대표가 부모님의 삶을 되뇌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나는 고작 몇 달 입원하고 재활하면서도 이렇게 불편한데 부모님은 어떻게 평생을 저렇게 의연하게 사셨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날 이 땅에 보낸 이유가 돈 많이 벌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처럼 몸이 불편한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깨달음은 새로운 소명으로 이어졌다. 기술과 비즈니스를 활용해 장애를 가진 이들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어 더 나은 권리와 기회를 얻는 것이다. 자유로운 신체 활용에 제약이 따르는 장애인, 특히 수술 후 재활이 필요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에 비해 운동 필요도가 높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김 대표는 “당장 어머니만 봐도 비장애인인 나보다 철저한 건강관리가 필요하지만 동네 피트니스센터에 갈 때마다 등록을 거절당하곤 했다. 장애인들이 눈치 보지 않고 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하려는 고민의 결과가 캥스터즈 창립이었다”고 회상했다.
스타트업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을 고객으로 한다는 점은 투자 유치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캥스터즈는 창업 초기부터 수요층을 해외로 설정하며 마이너스 요인을 플러스로 전환했다. 제품과 서비스 설계 프레젠테이션만으로 창립 6개월여 만에 20건 넘는 창업 공모전 수상 실적과 투자 유치를 올렸다.
이후 장애인이 휠체어에 탄 채로 운동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헬스케어 장치 ‘휠리 엑스(Wheely X)’를 제작했다. 양팔로 바퀴를 굴리며 유산소 운동을 할 수 있다. 자체 개발한 앱을 함께 쓰면 운동량과 칼로리 소모량, 지구력 등을 확인하고 트레이너가 구성한 코스에서 단계적으로 운동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위기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제품을 공개하던 날 날벼락이 떨어졌다. 제품은 제대로 작동하는데 정작 휠체어 장애인이 휠리 엑스에 스스로 올라가기에 경사각이 높아 도움 없이는 이용할 수가 없었던 것. 비장애인에 비해 상체 근력이 약한 장애인이 이용할 때의 상황 변수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캥스터즈는 그길로 장애인 체험단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제품 사용을 원하는 기관과 개인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200차례 넘는 테스트를 통해 부품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교체한 끝에 8번 만에 나온 제품이 합격점을 받았다. 지난 4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2023 에디슨 어워드’에는 고객 중심 디자인 부문 금상을 받으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해 9월엔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국제 재활 및 복지산업박람회 레하케어에 참가해 유럽과 중동 바이어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캥스터즈의 직원 절반은 장애인 가족이다. 일상에서 장애인과 생활하며 실질적 불편과 필요를 마주하다 보니 제품의 활용도와 보완해야 할 점들을 바라보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캥스터즈가 꿈꾸는 청사진에는 무장애 피트니스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자유롭고 건강하게 몸과 마음을 가꿀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것이다.
김 대표에게 평소 묵상하는 성경 구절을 물었다. 그는 시편 23편을 암송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떤 인간적 부족함도 하나님의 손길로 채워주실 것이란 믿음이 가장 중요한 동력입니다.”
안산=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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