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얼라이브] “욕심 많아 목회도, 섬 선교도, 섬 탐사도 다 했죠”

윤중식 2023. 7. 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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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섬 시리즈 출간한 ‘섬 박사’ 이재언 광운대 해양섬정보연구소장
이재언 광운대학교 해양섬정보연구소장이 지난 3일 서울시의회 본관 중앙홀 전시실에서 이달 초 펴낸 ‘북한의 섬’ 1, 2권을 펼쳐 보이고 있다.


섬 탐험가 이재언(71) 광운대학교 해양섬정보연구소장은 ‘섬 박사’로 통한다. 목포 만나교회(조광표 목사) 협동목사로도 사역 중인 이 소장은 1989년 바나바선교회 선교사로 섬에 파송돼 선교와 복지 사업을 하던 중 섬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국 유인도 446개를 세 번씩이나 탐방했다. 그 결과 2016년부터 3년간 ‘한국의 섬’(이어도) 시리즈 13권을 펴냈다. 초등학교 외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이 소장은 50세가 넘어 검정고시로 대학원까지 졸업한 만학도이다.

이달 초에는 1045개에 달하는 북한의 섬 가운데 128개 유인도에 관한 각종 기록을 토대로 ‘북한의 섬’(1, 2권)을 펴냈다. 왜 이 소장은 남북한 섬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을까. 그는 1952년 6·25전쟁 당시 전남 완도군 노화도 섬에서 태어나 낚시와 수영을 즐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난생처음으로 초등학교 6학년 당시 부친을 따라 목포에 갔다가 커다란 문화 충격을 받았다. 전기 기차 자동차 건물 등을 보면서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그래서 전기도 없고 가난한 섬에서 살기가 싫어 가출했다.

전국 446개 섬 탐사의 꿈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에서 만난 이 소장은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아브라함처럼 불러서 우리 가족을 구원시키고 우리나라 최초의 섬 탐험 전문가가 되라고 불러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특히 점쟁이 노릇을 하시던 어머니가 구원을 받고 나중에 기도의 어머니가 되셨다. 그 결과 오늘날 6남 1녀 중 3명이 목사가 됐다”고 간증했다.

이 소장은 한참 동안 회상에 잠겼다가 말문을 열었다. 무작정 상경할 당시는 철부지 15살 시골뜨기였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낯설기만 했던 서울 한복판에서 구두를 닦고, 신문을 배달하면서 서대문 순복음중앙교회(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닌 얘기를 들려줬다. 이 교회에 조용기 목사를 만난 것은 이 소장의 일생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BC(그리스도 이전)와 AD(주님의 해)가 갈라지는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했다.

이 소장은 서울에서 미션스쿨이었던 비정규 고등학교(해동상업전수학교)를 다니다가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졸업도 못 했다. 제대 후 결혼하고 신학교를 다니면서 1989년 12월 만 39세 때 서울 바나바선교회에서 낙도 오지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고향 완도군 노화도로 내려갔다. 90년 7월엔 선교선(船) ‘등대 1호’ 선장 겸 항해사가 돼 노화도 주위 14개 무교회 섬을 다니면서 선교와 복지 사업을 했다.

이재언 소장이 2014년 전남 완도 장도 근해에서 드론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이 소장 제공


1년이 지난 다음 이 소장은 전국 유인도 섬 446개를 탐방하겠다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결심한 동기는 뭘까. 그는 첫 번째 이유로 사도행전 27장 말씀으로 대신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종교 문제 때문에 유대인 동족에게 고발을 당해 로마 황제에게 배를 타고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배를 타고 가는 도중 거대한 풍랑과 파도를 만나 2주일간 표류하면서 지중해 멜리데(몰타)에 도착합니다. 당시 승선했던 276명 가운데 한 명도 죽지 않았고 배만 파선됐습니다. 저는 이 기록을 여러 번 읽어보면서 전국 446개 섬 탐사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 이 소장은 대항해 시대에 지리상 발견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15세기 대항해 시대 탐험가들은 풍선을 가지고도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했는데 동력선을 가지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유인도를 탐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을 했고 그것이 바로 96년 출간한 ‘낙도선교’라는 책과 한국의 섬 시리즈 13권이다.

전 재산 270만원 들고 여수 화양반도 끝으로 이주

이 소장은 낙도 오지 선교사로 파송된 지 2년 만인 91년 어렵게 바나바선교회 허락을 받고 마침내 섬 탐사를 시작했다. 기간은 일주일을 예상했지만 열흘 정도 걸리는 여정이었다. 그다음은 여수와 경남, 다음에는 목포 앞바다 신안군과 전북 충남의 섬, 그리고 인천 경기 섬들을 순회한 다음 ‘낙도선교’를 출간해 섬 교회에 한 권씩 기증했다. 이 책을 만든 이유는 낙도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들에게 목회를 잘 할 수 있도록 막혀 있는 담을 헐고, 소통을 위한 자료를 제공함이었다. 책엔 섬 역사와 문화, 주업, 우상숭배가 많은 이유 등 다양한 정보를 담았다.

3년 뒤에는 바나바선교회에서 여수 백야교회로 파송을 받았다. 93년 2월 25일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이었다. 그에겐 단돈 270만원이 전 재산이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하던 이 소장의 아내는 남편을 따라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여수 시내도 아니고 화양반도 끝머리인 세포로 이사를 왔다. 그때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너무나 미안하고 안쓰러웠다고 이 소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 소장은 당시 등대 1호를 타고서 15개 무교회 섬들을 순회하며 완도에서처럼 선교와 복지 사업을 동시에 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면 소재지 교회인 백야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해 15년을 시무했다.

담임 목사, 섬 선교, 섬 복지, 섬 탐사 1인 4역

그는 욕심이 많아 목회를 비롯해 섬 복지와 섬 선교, 그리고 전국 섬을 답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등대 2호 침몰 사고 등 무수한 역경을 겪었지만 그의 집념은 더 불타오르기만 했다. 이런 가운데 이 소장은 자신이 목회보다도 섬 선교와 섬 연구가 그에게 맞는 재능인 것을 알고 2010년 목포대 도서(섬)문화연구원 초빙으로 받고 목사직을 사임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섬에 빠져 섬 탐험을 전문적으로 한 결과 ‘한국의 섬’ 시리즈를 완성할 수 있었다.

39세 때 섬 선교에 나섰던 이 소장은 섬 복지와 섬 탐험을 하면서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처럼 조금씩 빛을 보게 되었다. 네이버의 후원으로 한국의 섬 시리즈를 완간했고 마침내 북한의 섬 책 2권을 출간하게 됐다. 이 소장은 너무나 위험이 따르는 일, 후원자도 지원자도 없는 고독한 일, 돈도 안 되는 일, 정부에서도 관심조차 없는 일을 감행하면서 미친 사람이라는 말도 숱하게 들었다.

‘북한의 섬’은 2021년부터 꼬박 2년을 매달린 끝에 지난달 초 빛을 보게 됐다. 이 책에는 북한 기독교인들이 6·25전쟁 당시 유격 전사로 활동한 이야기 등 한국 현대사에 중요한 사료가 될만한 자료가 수두룩하다. 당시 크리스천 리더들이 나라를 구한 이야기와 그들이 구월산에 들어가 후방 교란 작전을 벌인 결과 중공군과 북한군 1개 사단을 후방으로 빼는 바람에 한국전쟁의 양상이 달라졌고 결과적으로 휴전을 앞당기게 했다는 것이 이 소장의 분석이다.

당시 대표적 기독교인은 혁혁한 전과를 세운 전설의 김종벽 대위와 밥퍼 최일도 목사의 부친인 김희화 유격전사다. 대단한 역할을 했던 그들 기록이 사진과 함께 책에 수록했다고 전했다. 이 소장은 “북한에 있는 수많은 섬의 역할은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국군과 유격전사들이 섬을 근거지로 북한 후방을 침투,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것”이라면서 “또 다른 섬의 역할은 북한의 수많은 피난민이 섬으로 1차 피란을 나왔다가 남한으로 다시 와 터를 잡고 영락교회나 해방촌교회 등에 정착해 경제 대국과 신앙 국가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잇고 싶다
2011년 호주 시드니에서 가족과 함께한 기념사진. 오른쪽 두 번째가 올 초 별세한 임향숙 사모. 이 소장 제공

이 소장은 책을 펴내기 위해 출판사 ‘이어도’를 설립했다. 제주 근방 전설의 섬이 아니다. 이어도라고 이름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짧은 시가 있지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시 말입니다. 경색된 남북 관계에도 화해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교회와 세상을 이어주는 이어도가 되고 싶습니다.”

이 소장이 쓴 섬 이야기는 정 시인의 시처럼 외롭게 홀로 떨어져 있는 섬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섬, 교회와 세상을 잇는 섬, 비록 아직도 남과 북으로 갈려져 있지만 언젠간 두 동강 난 한반도를 잇는 가교 같은 것이다. 언젠가는 북한의 섬도 방문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이 소장의 마지막 소원은 두 가지다. 외교관 아들이 근무하게 될 나라의 섬을 탐방하며 선교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소원을 말할 때는 말을 잇지 못했다. 65세를 일기로 심근경색으로 별세한 한평생 동반자였던 아내를 천국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다.

글·사진=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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