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전 완패…그래도 굳건한 중·꺾·마
대 T1전 8연패. 젠지와 T1 상대로 17연패. 디플러스 기아는 지난달 30일 T1과의 2023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시즌 정규 리그 1라운드 경기 패배로 많은 것을 잃을 뻔했다. 아마 팀에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선수가 없었다면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베테랑 ‘데프트’ 김혁규가 있는 디플 기아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T1전 이후 5일 광동 프릭스전, 7일 DRX전을 모두 2대 0 승리로 끝내면서 분위기 반등에 성공했다. 전보다 정교해진 설계, 상체로의 무게중심 이동 등이 빚어낸 결과다. 이들은 6승4패(+5)의 성적으로 정규 리그 2라운드를 시작했다.
7개월 만에 서로의 진심이 닿았다. 디플 기아 선수단은 T1전 패배 이후 전력 재정비를 위해 날을 잡았다. 마우스를 내려놓고, 술잔을 부딪치며 속마음을 터놨다. 김혁규는 7일 국민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저녁 스크림도 취소하고 감독·코치 허락하에 술을 마셨다. ‘연습실로도 오지 말고 술로 쌓인 걸 풀어라’라고 하시더라”라면서 “경기 내외적으로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선수들은 속마음을 터놓는 자리를 통해서 마인드셋에 변화가 필요하단 걸 느꼈다. 김혁규는 “사실 선수들은 게임에서 지면 문제점이 무엇인지 바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T1전 이후 팀원끼리 터놓고 얘기를 나눴더니 답답함이 해소됐다. 선수단이 마음가짐에 변화를 준다면 충분히 고쳐질 만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첨언했다.
김혁규는 “그동안 우리 팀을 표현하는 단어는 ‘허술함’이었다”면서 “T1에 완패한 뒤로 이 단어와 멀어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게임 초반부터 빡빡하게 설계하고, 실수 없이 마무리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 DRX전에서 우리의 노력이 잘 드러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선수단이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터놓은 뒤 내놓은 결론은 크게 2가지다. 김혁규는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설계된 게임을 하는 것이 우리 팀의 첫 번째 목표다. 중간에 설계를 놓치는 부분이 있어선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또 “유리한 게임에선 역전을 당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덧붙였다.
“강팀은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 설계에 빈틈이 없다. 유리한 게임을 놓치지 않는다. 메타 파악이 빨라서 밴픽을 철저하게 준비할 줄 안다. 젠지나 KT, T1같은 강팀들을 잡으려면 우리도 그 3가지를 잘할 수 있어야 한다. 당할 수밖에 없는 설계를 하고, 유리한 고지에 섰을 때 역전당하지 않는 단단한 운영을 선보여야 한다.”
김혁규는 이날 DRX 상대로 두 세트 연속 인베이드를 통해 득점한 것을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게임의 시작은 라인전이 아닌 인베이드부터”라면서 “인베이드에서부터 강팀과 약팀의 차이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디플 기아는 인베이드 설계가 적고 부족했다. 최근에는 밴픽 단계부터 미리 인베이드 설계를 해서 조금이라도 게임을 유리하게 시작하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디플 기아는 스프링 시즌에도 한 차례 이 같은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김혁규는 “스프링 시즌에도 팀원들끼리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번만큼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이제 정규 리그 2라운드와 플레이오프가 끝나면 더는 같이 게임을 못 할 수도 있다. 벼랑 끝에 몰리니까 다들 전보다 더 솔직하게 생각들을 말하더라”라고 귀띔했다.
김혁규는 “사람은 위기에 몰렸을 때 진짜 능력이 발휘된다”면서 “당장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우리의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팀들 상대로 상대 전적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 팀을 이기면 그 다음 팀을 잡기는 수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T1과 젠지 상대로 맥을 못 추리는 디플 기아. 그러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과거 KT 롤스터 ‘슈퍼 팀’에서 대 SK텔레콤 T1(現 T1)전 연패 기록을 깼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김혁규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김혁규는 “나는 2019년 이후 여러 번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 봤다. 어떻게 행동해야 도움이 되는지를 이미 충분히 배웠다”고 말했다.
김혁규는 “지금부터가 디플 기아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우승을 하거나, 2023시즌의 끝까지 남아 생존한다면 굉장히 멋질 것”이라면서 “우리는 여전히 저력이 있는 팀이고, 여전히 가장 잘하는 팀으로 발전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 팀이다. 선수단과 코치진이 의기투합해서 반드시 그렇게 되겠다”고 덧붙였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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