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우리는 얼마든지 치열한 동시에 우아하게 일할 수 있다
우아하게 일한다는 것
‘우아하다’는 단어를 들으면 특정 연예인이나 연륜 있는 예술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 없는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는 우아하다는 것의 의미를 외향이나 분위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들. 조용한 목소리, 크지 않은 제스처, 어쩐지 일의 고단함이 묻어 있지 않은 표정. 어떤 연유로 이런 고정관념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미 생겨버린 생각 때문에 누군가에게 ‘우아하게 일하고 싶다’는 얘길 들었을 때 나도 그러고 싶다고 대답하면서 “그게 가능할까?” 되물었다. 매일매일 선택의 문제에 부딪히면서 우당탕탕 일하는 일터에서는 결코 그런 이미지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우아함’의 정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장면이 있었다. 후배 여성 골퍼들을 위해 대회를 준비하는 박세리 선수의 모습이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그는 후배 여성 골퍼들이 더 많은 대회 경험과 글로벌 감각을 쌓아 세계 무대로 커리어를 쌓아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 여성 프로골프 투어를 미국에서 개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대회를 치를 골프장을 찾아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과정이 나왔고, 잔디 상태나 지형을 꼼꼼히 따지면서 현장 점검을 하는 모습이 든든하고 멋졌다. 그리고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숙박할 시설을 둘러볼 때는 침대 상태와 화장실 크기까지 확인하는 게 아닌가. 흰 시트가 깔린 큰 침대를 손으로 꾹꾹 눌러보고, 흐뭇해하는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우아, 너무 우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놀랐다. 저 모습이 우아하다고?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에 비춰봤을 때, 편안한 차림에 그을린 피부 그리고 협상하기 위해 상대방의 이야기에 몰입한 표정은 우아함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 이미지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무엇이 그를 우아하게 느꼈을까를 생각해 보면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태도인 것 같다. ‘좋은 환경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주고, 그들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리딩 그룹으로 키워내기’라는 선한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작은 것까지 일일이 확인하며 일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자세, 이 두 가지. 누군가는 ‘박세리처럼 돈이 많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가볍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돈이라는 게 가진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쓰임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우리는 거의 매일 경험하면서 살고 있으니깐.
어느새 10년 훌쩍 넘게 일하면서도 일이라는 게 뭘까, 나아가 좋은 일이라는 게 있을까에 대해 매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만나는 장면에 따라 적용되는 생각이 다르긴 하지만, 일을 할수록 전문성만큼 중요한 것이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태도는 일의 장면에서 많이 드러나는데, 그렇기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일을 더 나아가게 하기도, 망치기도 한다. 태도는 흔히 생각하는 기분이나 감정과는 다르다. 나와 연결돼 있는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나 관점이 곧 태도이기 때문에 일할 때의 내 태도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의 태도가 곧 일의 과정이 된다. 협업할 때 각자가 가진 전문성으로 성과의 50%를 담보한다면 함께 일하는 과정이 나머지 50%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태도가 중요하다. 단순히 일할 때 편안함을 주거나 서로 예의를 챙기는 수준을 넘어서는 요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세리 선수는 우아하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것을 주려는 마음, 그걸 위해서라면 크든 작든 해야 할 일을 하는 모습에서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 보였다. 한 사람이 가지는 좋은 마음이 진짜 영향력을 가지려면 이런 태도로 일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로 일한다면 나 역시 뭘 입고 어디서 일하든 우아하게 일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더워서 그냥 대충 일하고 싶을 때 박세리 선수를 생각해야지. 우아하게 일하는 여름을 보내고 싶다.
홍진아
카카오 임팩트 매니저이자 프로N잡러. 책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를 펴냈고,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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